법회가 시작되고 허성도 교무가 대표로 기도문을 낭독하는 가운데 교도들은 다함께 일심으로 감사를 올리며 다음 일주일의 소망을 축원하고 있다.

 '좋은 농사꾼에게는 나쁜 땅이 없다'


[원불교신문=정성헌 기자] 충청북도 증평읍 송산로 4길 9번지에 위치한 증평교당. 

읍에 들어서자 신도시 개발이 한창이다. 인연이 있어 십여년 전 찾았던 시골 읍내의 정겨운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새 아스팔트와 도로 구간마다 들어선 아파트 단지들이 퍽 질서있는 느낌이다. 한쪽에서는 여전히 신 아파트 건설이 한창 진행 중인지 휴일인 일요일 오전에는 거대한 크레인과 건축현장이 조용히 쉬고 있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교당에 도착하니 5년 전 신축봉불한 건물이 반긴다. '증평교당' 간판과 일원상 심볼이 아니었으면 읍내에 새로 지었을 법한 도서관으로 생각하고 지나칠 뻔 했을 정도다. 한창 들어서고 있는 신도시 속에 자리잡은 증평교당은 그렇게 지역교화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빛나는 표창장
현관에 들어서자 처음 마주한 곳은 교당 카페였다. 여기저기 앉아서 편히 커피와 차를 마실 수 있는 책상과 공간들, 프론트 데스크가 여느 카페 못지 않았다. 한쪽에는 대중 음식 공양을 하기 위한 조리실과 교당 사무실이 들어서 있었다.

미리 와있던 교도들이 반갑게 반긴다. 법회를 시작하기 전 교도들은 미리 카페에 모여 커피를 마시며 일주일만에 만나는 법동지들과 법담을 나누는 게 소박한 행복이란다.

이곳은 교당을 찾는 손님들을 응접하거나, 법회 후 교무와 교도들이 모여 점심공양하는 장소로도 쓰인다. 그리고 3개월씩 진행되는 교도들을 위한 교리공부나 교수 초청 강연도 이곳에서 이뤄진다. 물론 교리공부나 강연 요청은 교무가 아닌 교도들의 자발적인 요청에 의해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법회 시작 전, 허성도 교무의 법문 봉독이 울려퍼진다. 교당 구석마다 설치된 스피커는 자연스레 교도들에게 전달되고 경건한 마음을 챙겨 법당으로 하나둘 모여 함께 법문 봉독을 올리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법회가 시작되고 허 교무의 나즈막한 기도문이 법신불 일원상을 향해 올려진다. 증평교당이 있기까지 한마음으로 동참했던 인연들, 지금 이 자리에 함께한 교도들, 앞으로 만나게 될 인연들 모두에게 올리는 감사가 절절하게 묻어나왔다. 법당 한쪽에는 증평교당 신축봉불의 공로를 축하하는 표창장이 유난히 빛난다.

지역 주민들은 깔끔한 교당 외관에 호기심을 가지다가 이를 계기로 교당 카페에 들리는 경우가 많다.

십수 년 드린 불공
허 교무가 주임교무로 첫 발령받았던 증평교당은 인적이 드문 시골 변두리 구석(증평군 용강리)에 위치해 도무지 교화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나 좋은 농사꾼에게는 나쁜 땅이 없다고 했던가. 아무 연고도 없던 충청북도 증평군에서 허 교무는 십수 년을 포기하지 않고 불공들인 끝에 하나둘 인연들을 모아오다가 원기98년 현재 위치에 새 교당을 지어 이전했다.

허 교무는 회상했다. "내가 처음 왔을 때에는 주변이 대부분 논밖에 없었다. 돈도 없고, 교도도 부족한 상황이었지만 교화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중심지로 나와야겠다는 염원을 하게 됐다."
당시 충북교화의 모태라 할 수 있는 괴산교당이 문을 닫을 만큼 충청북도 교화상황은 열악했다. 그러나 발전 가능성이 높은 지역으로 음성, 증평, 오창 등이 신도시 거점지역으로 꼽히고 있는 상황에서 허 교무는 증평교당의 미래를 포기할 수 없었다.

"어느 날 택지개발한다는 소식을 뉴스에서 들었다. 그 가운데 종교용지 한 곳이 분양된다는 소식에 기회임을 알고 3년간 천일기도를 올렸다. 그때 교구 교무들과 동창들, 교도들 모두가 합력해 준 덕분에 종교용지 분양에 당첨됐다"고 말했다.

초대 교도회장이자 현 교도회장인 남성인 교도 역시 당시 상황을 생각하자니 구구절절한 사연에 눈물을 글썽인다.

"증평교당이 처음 위치한 곳은 버스도 잘 안 다닐 정도로 외진 곳이라 일반교도들이 다니기가 만만치 않았고 눈에 띄지도 않았다. 또 법회가 있을 때마다 교무는 어르신 모시러 다니기 바빴다. 우리는 신입교도 1명이라도 더 오게 하려면 여기서 나와야 한다는 염원을 가지며 어떻게 해서든지 부지라도 매입하려고 교무님과 함께 무작정 애썼던 기억이 난다."

당시 웰빙도시로 떠오르고 있는 증평 송산지구에서 단 한 곳뿐이었던 종교용지 매입은 하늘의 별따기 같았다. 이곳을 탐내는 교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일이 잘풀렸지만 그 공덕은 모두 교무가 애써서 그랬다는 남 회장. 그러나 천일기도 회향식 때에 많은 교무들이 찾아와 함께 기도해주고 격려해 주었던 고마운 일은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남 회장에게 소망이 무엇인지 물어봤더니 두 가지란다. 현재 십수 명이 보는 법회 출석수가 30~50명으로 늘어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증평교당을 건축한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빨리 부채탕감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증평교당의 새로운 주인들
'초창은 지키는 게 교화니라'고 한 정산종사의 말씀이 증명되는 것일까. 신축봉불을 한 이후 교당의 새로운 주인들이 시절을 만난 듯 모여들었다. 입교한 지 2년밖에 안됐지만 봉공회장으로 교당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박보주 교도가 그랬다.

그는 "서울에 살다가 이곳에 귀촌한 지는 6년째인데, 이곳을 지나다니면서 건물이 참 예쁘다 하면서 호감을 가졌다. 지인 소개로 교무를 직접 뵈면서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원불교는 참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종교임을 알아가면서 이전에 믿었던 성공회와 닮은 점들을 많이 느꼈다"고 입교 동기를 설명했다.

윤진경 충북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도 입교한지 3년이 되어간다. 그는 "기존에 천주교 신앙을 하고 있었다. 교무님과 개인적으로 알게 된 것은 십년즈음 된다"며 "입교하기 전에 교당에서 아침마다 백일기도와 저녁에는 108배를 하면서 법문을 가까이 하게 됐다. 실생활에 바로 연결되는 교리 자체가 나와 맞다고 생각하던 차에 교무님께서 입교 말씀을 꺼내시자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됐다"고 말했다.

김상전 교도는 지난해 입교해 <정전> 참회문을 백번 사경했다. 그는 "지난해 안좋은 일로 마음을 못잡고 있을때 문득 교당 카페에서 커피를 대접해주셨던 교무님이 떠올라 상담하게 됐다"며 "교무님 말씀대로 참회문을 사경하면서 나름대로 굉장히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종교가 처음이지만 매우 편안하다"고 체험을 소개했다.

예조고건축 대표 신지언 교도도 교무님이 특별하다. 그는 "지난해 윤진경 교수 소개로 입교했다. 당시 안좋은 일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교당과 교무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아이랑 행복하게 살지 못했을 것이다"며 "교무님께서 어린이집 근무하신 경력이 있으셔서 상담을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아 아이와 관계가 좋아졌다. 내가 중심을 잡고 있으면 다시 되돌아오게 된다는 이치를 알았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교당 카페에 호기심으로 오는 사람도 부쩍 늘었다. 카페는 지역주민들에게 언제나 열려 있는데다가 커피 맛도 일품이기에 첫 발걸음이 어렵지 한번 오면 다시 생각나는 그런 곳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증평교당은 교화의 새바람이 서서히 불어오고 있었다.  

남성인 교도회장(좌)과 윤진경 교도(우)가 교당 카페에서 커피를 만들고 있다.

[2018년 3월 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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