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민소연 기자]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세계는 또 한번 벅찬 감동으로 울고 웃었다. 신체장애인들의 올림픽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은 매 장면, 선수 한 사람 한 사람의 눈물과 땀방울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국적을 넘어 내편 네편을 넘어 모든 경기는 드라마였고, 신년법문 '내가 나를 이기자'가 아로새겨지는 산 경전이었다. 우리 곁에 이렇게 많은 장애인이 있는지, 이렇게 운동을 많이 하고 잘하는지 알게 해준 평창 동계패럴림픽. 이제야 우리는 장애인들의 체육대회 스페셜올림픽, 데플림픽도 알게 됐고, 우리사회 장애인 체육활동의 현주소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취미가 아닌 건강을 넘어 생명에 필수적인 체육활동은 국가나 지자체가 준 것이 아닌, 장애인들이 목소리를 높여 쟁취해낸 결실이다. 턱없이 부족한 가운데서도 조금씩 지평을 넓혀가고 있는 장애인 체육활동 현장을 찾았다. 
동계패럴림픽 역사상 첫 금메달을 안겨준 크로스컨트리스키 부문 신의현 선수. 사진=패럴림픽 홈페이지

원광장애인종합복지관 배드민턴 클럽
잘맞은 셔틀콕은 소리도 내지 않고 매서운 속도를 낸다. 라켓이 바람을 가르는 '붕붕' 소리와 네트위를 넘나드는 셔틀콕 그득한 강당. 서울 중랑구 신내동 원광장애인종합복지관의 평범한 금요일 저녁 풍경이다. 월수금 저녁 6시~9시30분 진행되는 원광장애인 배드민턴 클럽의 현장에는 20명에 가까운 회원들이 함께하며, 거의 빠지는 법도 없다. 한쪽은 경기를, 다른 한쪽은 연습을 하다보니 조금 붐벼도 함께 라켓을 든다.

동계패럴림픽 중 가장 인기있었던 컬링이나 아이스하키처럼, 배드민턴 역시 휠체어 외에는 비장애인 경기와 똑같은 방식이다. 다만 휠체어 기준이라, 단식이나 복식 경기보다는 최소한으로 움직일 수 있는 4:4 경기가 주를 이룬다. 설 수 있는 참가자들에게는 1/4로 줄어든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이 쉽지 않지만, 다양한 장애를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차원에서 서로 배려한다. 

장애인들에게 체육활동이란 취미를 넘어 건강한 삶 그 자체다. 원광장애인종합복지관 배드민턴 클럽 15년 역사를 함께해 온 참가자는 "운동을 안하면 관절이 빠르게 굳는다. 하루라도 빠지면 며칠이 더 힘드니 어떻게든 복지관에 나와 라켓을 든다"며 "이 클럽이 없었으면, 병원에 가서 재활치료를 따로 받아야 한다"고 귀띔한다.

또한 50대만 되도 복부비만에서 비롯한 고혈압, 당뇨 등 성인병에 노출될만큼 움직임 자체가 적다보니 체육활동이 너무나 소중하다. 스스로 몸을 움직이면서 느끼는 보람과 기쁨 역시 비길 데 없으며, 인간관계나 우정을 만들고 지켜가는 중요한 곳이다.

4:4 경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한쪽에서는 전동휠체어를 탄 회원들이 코치와 연습 삼매다. 전동휠체어는 대부분의 장애인들이 이용하는 튼튼하고 높은 휠체어로, 회원들은 그대로 라켓만 들거나 운동용 휠체어로 갈아타기도 한다. 아래가 넓은 운동용 휠체어는 두 팔이 자유로워야 하고, 280~400만원이라는 가격도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운동을 하려해도 할 곳이 없는 실정
쉬는 시간이면 커피로 당을 충전하는 회원들은 "중랑구에서 유일하게 원광복지관에만 이런 체육공간이 있다"며 "더 다양한 장소와 프로그램이 있으면 장애인들이 더 많이 나올 텐데 아쉽다"고 말했다.

원광장애인종합복지관 한인규 관장은 "사실 장애인만을 위한 체육관은 전무하다고 봐야하며, 일반 체육관에서 일부 시간을 빌려 따로 하는 제한적인 상황이다"며 "장애인복지나 인식제고를 위해서는 통합활동을 추구해야 하는데, 아직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생활체육을 하는 경우는 없다"고 짚었다. 배드민턴 외에도 농구, 축구, 탁구 등 장애인 체육활동 인기종목은 이미 세계적으로 장애인·비장애인이 어릴 때부터 함께 하고 있음에도 우리나라는 요원한 실정이다. 

"10년 전, 20년 전에 비해 확연히 나아졌으나, 장애인들이 당연한 권리를 요구해 얻어낸 것이지 주어진 것이 아니다"고 힘줘 말하는 한 관장.

그는 "장애인들이 운동을 하고 싶다해도 언제 어디서 하는지, 어떻게 알아봐야 하는지, 알아보기 힘들어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며 "장애인들이 동네 체육관이나 주민센터 등 가까운 곳에서 더 많이 운동한다면, 국민 건강 수준뿐 아니라 의료보험공단도 재정부담이 줄어들 것이다. 후처방보다는 선예방이 중요한데, 아직도 장애인은 감싸거나 숨겨야 되는 대상으로 생각하는 의식수준이 아쉽다"고 밝혔다.  

"나와보니 승리도 있고 패배도 있더라"
늦은 밤까지 땀을 흘린 회원들 주변에 셔틀콕이 수북하다. 이 셔틀콕을 줍거나 경기 심판을 보고 네트를 움직이는 일은 자원봉사자들이 맡는다. 더러는 선수가 되어 함께 치기도 하는데, 봐주는 법없이 전력을 다해야 겨우 따라갈 수 있단다. 

함께한 조재준 사회복지사의 말이 여운을 남긴다. 수십년 동안 집에만 있던 한 장애인이 체육활동에 나와 말했다. "나와보니, 세상에는 승리도 있고 패배도 있고 의욕이라는 것도 있더라. 무엇보다도 상대를 이기고 싶다는 마음이 처음 들었다." 장애인이라면 늘 약하고 져야한다고 생각해왔는데, 그는 체육활동으로 용기를 갖게 됐다. 언젠가 그를 패럴림픽, 가장 아름다운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만날지도 모르겠다. 낙원은 그렇게 개척되는 것 아닐까.  

15년 역사의 원광장애인종합복지관 배드민턴 클럽은 매주 월수금 저녁마다 열기를 띤다.

 

패럴림픽 아이스하키에서 동메달을 딴 한국대표팀이 행복한 순간을 나누고 있다. 사진=패럴림픽 홈페이지

 ▣ 패럴림픽·스페셜올림픽·데플림픽
18일 폐막한 평창 동계패럴림픽은 동계올림픽에 이어 사상 최대 규모, 뛰어난 안정성 등으로 국내외 찬사를 받았다. 앞서 원불교를 비롯한 국내 종단과 시민사회계에서 관람권 구매 캠페인에 힘을 모으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개막할 즈음엔, 사전예약율이 동계올림픽을 상회하는 저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영부인 김정숙 여사가 자주 경기장을 찾아 화제가 됐고, 생방송 요구 여론이 높아짐에 따라 대회 후반에는 경기를 라이브로 볼 수 있었다.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은 88 서울올림픽과 2002 한일월드컵, 그리고 2018 평창 동계올림픽과 함께 대한민국의 가장 뿌듯한 장면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다소 생소했던 '장애인들의 국제경기대회'라는 개념을 깊이 각인시켰던 계기다.

패럴림픽(Paralympic)은 '나란히'라는 뜻의 그리스어 'Para'와 올림픽 'Olympic'이 합쳐진 말이다. 1948년 런던의 척추 상해센터에서 하반신 마비 환자의 재활치료를 위해 시작된 경기가 그 시초로, 이후 많은 관심와 격려 속에 1960년부터 올림픽 개최지에서 올림픽이 끝난 뒤 2주 이내에 개최된다. 

패럴림픽이 신체장애인들의 경기라면, 지적·자폐성 장애인들이 참가하는 스페셜 올림픽도 있다. 1968년 시작, 4년마다 하계대회와 동계대회로 열리는 스페셜 올림픽은 신체에 장애가 있는 선수들이 순위 경쟁을 벌이는 패럴림픽과는 달리, 선수들의 도전과 노력에 의의를 둔다. 이 때문에 1~3위 입상자에게는 메달을, 참가자 전원에게 리본을 달아준다. 

패럴림픽과 스페셜올림픽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또 하나의 장애인 올림픽은 데플림픽이다. 청각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 대회로, 시작은 두 대회보다 앞선 1924년이다. 데플림픽에서는 출발용 화약총, 호루라기, 마이크 대신 깃발을 흔들거나 빛을 쏘아 경기 시작을 알린다. '침묵'을 의미하는 단어를 이용해 '월드 사일런트 게임'이라고도 불리는데, 관중이 함성 대신 조용한 파도타기를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2018년 3월 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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