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수선화가 피었다가 졌습니다. 
산기슭의 낙엽 사이에서 복수초(福壽草)가 피었고 
토끼풀이며 패랭이, 쑥이며 바랭이 그리고 달래며 
온갖 종류의 이름 모를 잡초들이 
지난겨울의 흙을 뚫고 새싹을 내밀고 있습니다. 
이제 며칠만 지나면 온 세상이 초록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무성한 사랑으로 서 있고 싶다. 
미서 당신이 내게 보낸 문정희의 시 “찔레”의 한 구절입니다. 
감사히 받아 여러 번 읽었습니다. 
‘무성한 사랑’이란 얼마나 어려울 것인지…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냥 서 있기만 하는 것으로 사랑이 무성해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영혼의 격투를 치러내듯이 
사랑을 해야 겨우 무성해질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하였습니다. 
미서 지난 한 해 동안 나는 먼 곳을 여행하고 돌아왔습니다. 
어쩌면 먼 곳이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 
여행지는 ‘미륵의 서쪽’이었습니다. 
미서, 당신이 살고 있는 곳이지요. 
미륵의 서쪽은 이 세상의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습니다. 
마치 사랑이 그러하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나는 신앙하고 있습니다. 
미륵의 서쪽은 우리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요. 
미륵의 서쪽은 마음이 지어내고 마음이 허물어뜨리는 그런 곳입니다. 
허공법계이기도 하고, 법신불사은의 영토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나는, 미륵의 서쪽을 여행한 것이 아니라 미서 당신을 따라 먼 길을 걷고 또 걷고 걸어야 했던, 
기나긴 순례를 하고 돌아온 것이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행이든 순례든 행복한 여정이었습니다. 
여행지에서 미서 당신에게 편지를 썼고, 당신은 내게 답장을 보내오기도 했었죠. 
“마음의 허망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할 것이요, 
마음의 실체를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무언가를 얻을 것입니다.”(<대종경> 인도품 10) 
당신이 보내온 답장의 일부입니다. 
답장을 다시 읽으며 혹여나 마음의 허망을 갈구하지 않았는지 다시금 돌아봅니다. 
마음의 허망을 쫓아 미륵의 서쪽을 떠돌지 않았는지… 
그랬다고 하더라도 미륵의 서쪽을 향해 떠돈 것만으로 
나는 그만큼 공부를 한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를 해봅니다. 
미서, 이제 마지막 문장을 쓸 때가 왔습니다. 
‘그곳이 어디든 미서 당신 곁에 고요한 나무로 서 있고 싶습니다. 그러면 이만 안녕.’ 

2018년 3월 27일 
익산 오룡마을에서 
정도상 두손모음

이 글은 소태산마음학교와 공동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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