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생활로 원망 놓을 때 비로소 환경도 변해
가족교화 위한 기도와 헌공, 공부로 살아가고 싶어

"천도재 인연, 신앙의 터전 됐지요" 


교법을 만나기 전에는 매순간이 괴로움이었고 원망생활이었다. "나는 왜 이런 가정에 시집왔을까. 왜 내 아들이 이런 방황을 하는가. 내 삶은 왜 이렇게 어려운 고난이 많은 걸까." 그렇게 원망 속에 살다가 대종사의 법에서 감사생활을 찾아 삶을 변화시켰다고 한다. 

평생을 남편과 아들, 시어머니를 원망하다가 새 삶을 만나게 된 보성교당 순타원 박종덕(72·順陀圓 朴宗德) 교도. 그의 감사생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봤다. 

원기76년 보성교당을 찾은 그는 당시 정경원 교도와 김효선 교도의 인도로 원불교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본래 종교가 불교라서 큰 거부감은 없었지만 그는 너무 고달픈 삶을 마주해 오는동안 무속인들을 찾아 굿을 11번이나 하고 마지막이다라는 생각으로 보성교당을 찾아오게 됐으며, 죽을 각오까지 하고 있었다. 

"둘째아들 때문에 사는 게 무척이나 고달펐어요. 돈을 얼마를 주든 일주일만에 다 쓰고 들어와 다시 달라고 아우성하고 행패를 부렸죠. 50만원을 주든 100만원을 주든 일주일이면 다 써요. 돈을 주면 올바르게 쓰는 것도 아니고…. 그렇지 않아도 결혼생활에 빚이 많았는데, 시아재와 둘째 아들 때문에 금전문제로 빚이 더 많아지고 생활이 갈수록 힘들었어요."

박 교도는 그동안 겪었던 시련을 토로했다. 

"자식이 속을 썩이니 시어머니는 제가 아들을 잘못 나서 그렇다고 저에게 원망을 많이 했고, 남편하고도 힘들었죠. 시누하고 머리채 잡고 싸움도 해봤고, 시집살이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습니다." 그런 생활 속에서 그는 무속신앙을 만나게 되고, 무속인들은 남편 할머니 천도재를 거론하며 굿하기를 권유했다.

그러나 열한 번의 굿도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었다. "그런데 어떤 교도님이 자기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교당에서 천도재를 지내보자고 권했어요. 그때 보성교당 김명기 교무님은 '천도재를 지내고 효과가 없으면 재비를 돌려 줄 테니 한번 해보라'고 말하셨어요. 그때 마지막으로 한번 해보자는 심경이었고, 만약에 여기서도 해결 못하면 둘째아들하고 함께 죽으려고 했어요." 

그렇게 천도재까지 지냈지만 아들은 쉽게 변하지 않았고, 입교한 지 2년 되던 해에 박 교도는 건강마저 좋지 않게 돼 몸져누웠다. "허리가 아파서 한 20여 일을 반듯이 눕질 못했어요. 그때 교무님이 '다시 굿을 할 생각은 하지 말고 대종사님 법을 믿는 마음으로 일어나라'고 말해줬죠.

그런데 그렇게 누워서 고생하고 있어도 둘째아들은 돈 달라는 말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때까지도 '너도 없고 나도 없으면 그만인 것인데. 같이 죽자'하는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때 교무님이 '내가 있어야 자식도 남편도 있는 것이다. 죽을 생각을 말아라.

또 둘째아들하고 죽는다 한들 그 과보가 풀리는 것이 아니다. 자식에 대한 원망도 시어머니에 대한 원망도 다 놓으라'고 말해줬어요." 그 말에 박 교도는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어떻게 내가 이 원망도 놓고 아들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됐다. 

"교무님이 조석으로 심고하고 좌선과 기도를 올리라고 가르쳐 주셨어요. 교무님은 '일단 좌선과 기도로 그 원망하는 마음부터 벗어야 된다. 시어머니에 대한 원망도 자식에 대한 원망도 다 놓아라'고 말씀해줬지요." 

그렇게 좌선과 기도를 시작해 조금씩 그 원망심을 놓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원망심을 놓기까지 10년의 세월이 걸렸다. 박 교도는 10년의 시간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선을 하고 기도를 올렸다. "10여 년 기도와 좌선을 하면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어요. 교당에 오기 전에는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나 하며 원망생활을 하니까 더 미웠었는데, 원망을 놓으니 가정이 화목해지기 시작했어요. 다 놓아버리고 감사생활이 될 때 비로소 삶의 변화가 되더군요."

그렇게 기도생활 속에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집안도 화목하며, 박 교도의 건강도 좋아졌다. 나중에 둘째아들이 나이가 들면서 택시 한대를 사게 돼 현재 원만한 사회생활을 하고 있으며, 박 교도는 열심히 일을 하면서 그동안 진 빚도 다 갚았다고 한다.

"제가 이 법을 만나지 못했다면 아들하고 함께 죽었을지도 몰라요. 지금은 원망 없이 편안한 삶을 살고 있죠. 오직 이 공부와 가족들의 교화를 위해 살고 싶어요." 

현재 그는 가족교화를 위해 헌공과 기도를 올리고 있다.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남편과 자식들의 헌공봉투를 만들어 20여 년간 가족을 위한 기도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한 번도 교당에 오지 않던 가족들이 4축2재 큰 행사에 참석하는 등 박 교도의 기도정성이 가족들의 생활에도 변화를 주고 있는 셈이다. 오직 스승님의 가르침에 의지하며 새 삶을 개척해온 박종덕 교도. 그의 일관된 기도생활을 보면서 감사생활이 삶을 얼마나 크게 변화시키는지 새삼 깨닫게 됐다. 

[2018년 4월 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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