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임병학 교수] 셋째, 〈조선의 유사종교〉에 기록된 불법연구회 팔괘기는 중괘(重卦, 육효중괘)로 되어 있다. 팔괘기의 팔괘가 삼효단괘(三爻單卦)가 아니라 삼효가 중첩된 육효중괘(六爻重卦)를 사용했다는 것은 철학적으로 전혀 다른 의미다.

단괘는 천지인 삼재의 구조를 표상한 것이라면, 중괘는 삼재의 작용원리를 표상한 것이다. 좌산상사도 불법연구회 팔괘기가 처음에는 64괘(중괘)로 만들어졌다고 했다. 문왕팔괘도에서는 중괘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

넷째, 〈주역〉에서 문왕후천팔괘도는 복희선천팔괘도(伏羲先天八卦圖)와 함께 역학의 선후천론(先後天論)을 상징하는 팔괘도이지만, 불법연구회 팔괘기에는 이러한 논의가 없다는 것이다.

북송의 소옹(邵雍, 1011∼1077)은 팔괘도를 통해 선후천론을 주장하면서 문왕후천팔괘도는 하늘의 질서가 어지러워진 인간세계를 상징하기 때문에 자신은 선천(先天)을 지향한다고 했다. 소강절의 입장은 우리가 알고 있는 후천개벽사상과는 반대이다. 〈대종경〉이나 대종사의 가르침에서 팔괘기를 선후천으로 논한 것은 찾을 수 없다. 

다섯째, 대종사와 9인 선진의 기도봉에 팔괘(八卦)를 배치한 것이 문왕팔괘도와 전혀 다르게 되어 있다. 9인 선진의 기도봉과 문왕팔괘도를 연결시키고 있지만, 이미 신순철 교수는 '원불교 법인기도 9인 기도봉 위치 검토'(〈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 제35집, 2007)에서 기도봉을 문왕팔괘도에 배치하는 것은 잘못임을 논증했다. 9인 선진의 기도봉은 중앙과 팔괘를 기준으로 나이 순서에 따라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면서 정한 것이다.  

여섯째, 불법연구회 팔괘기는 교법의 핵심인 일원상의 진리와 사은의 진리를 온전히 담고 있다. 불법연구회 팔괘기는 〈주역〉 팔괘도와는 달리 팔괘 사이의 간격이 거의 없고, 또 팔괘의 안은 작고 밖으로 나가면서 커져 원의 형상을 만든다.

팔괘가 하나의 큰 원을 그리고 있지만, 자세히 보면 3개의 원을 그린다. 팔괘기의 팔괘를 둥글게 한 것은 일원상의 진리를 담고 있다는 것이고, 이것이 3개인 것은 천지인 삼재지도를 의미한다. 또 팔괘를 2개씩 묶으면 사상이 되고, 사상은 사은의 진리를 의미한다.

따라서 소태산이 대각한 진리를 담고 있는 팔괘기는 일원상의 진리를 담고 있는 '일원팔괘도(一圓八卦圖)'라고 해야 할 것이다. 박장식 종사는 "교기를 만들 때 대종사님으로부터 팔괘기를 일원기로 만들어 보라는 말씀을 받들고 둥그런 원에 갖가지 색을 칠해 보았다"고 해, 팔괘기를 일원기로 만들었음을 증언하고 있다. 

일원팔괘기
소강절의 문왕팔괘도

[2018년 4월 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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