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임시 버스기사하며 원불교와 인연 맺어
영모묘원으로 이직해서 하루 10시간 꼬박 일해

[원불교신문=장영근 덕무] 고향은 익산 인화동이다. 원불교는 지금 북일교당에 원광중앙유치원이 있었을 때 처음 만났다. 그때가 원기69년도 즈음으로 기억한다.

한창 유치원이 됐을 때라 버스를 운행했었다. 그런데 당시 휴직을 했던 모양이다. 아는 친구를 통해서 그곳 버스 기사 자리가 임시직으로 있다는 소리를 듣고 일하러 간 것이 원불교 인연이 됐다. 당시 이성옥 교무님이 재직하고 있을 때다. 

당시 유치원으로 사용했던 곳은 예전에 야간학교였다. 가서 보니 마루바닥이 많이 썩고 깨져서 아이들이 다치곤 했다. 교무님 뜻도 있었지만 아이들이 남 같지 않고 걱정스런 마음에 마룻바닥을 철판으로 때우고 수리했다. 교무님이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면 열심히 도왔다. 운전기사로 들어왔지만 유치원이나 교당에 내 손을 안 거친 곳이 없었다. 나름 열심히 최선을 다했는데 그런 나를 교무님이 잘 보았는지 입교를 시켜줬다.

사회에서는 버스운전, 화물차 운전 다 해봤다. 그때만 해도 대형차 운전을 하면 보통 30~40만원 받을 때였는데 유치원 버스운전은 15만원을 받았다. 솔직히 양이 안 찼지만 교무님들 당시 용금이 7만원인 것을 알고 나니 두 마음이 없었다. 사회와는 엄청난 차이가 났지만 그저 사명감으로, 또 아이들이 예뻐서 열심히 하는 모습에 나도 열심히 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휴직했던 버스 기사가 복직해 나는 그곳을 나왔다. 버스기사가 올 때까지 하는 임시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나오고 나서 그 버스기사가 사고를 낸 모양이다. 교통사고를 내고 그만뒀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우연인지 다행인지 원불교와 인연이 그 길로 끝나지 않고 이어졌다.

그런데 유치원이 조금 있다가 문을 닫았다. 당시 총부 교육부에서 문 닫으라고 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나서 얼마 있다가 영모묘원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당시 교무님의 조카였던 이정길 교무가 놀러 왔는데, 내 자랑을 했던 모양이다. 그러자 영모묘원 자리가 비어서 나를 데려가겠다고 했다. 버스 기사직을 놓고 영모묘원으로 이직하면서 그 두 분이 참 고마웠다. 이정길 교무님의 얼굴은 지금도 안 잊혀진다.

영모묘원에 들어갈 때가 원기70년이다. 당시에 영모묘원에도 운전기사 자리가 있었는데 전에 있던 기사가 원광대학교로 옮기게 되니 나를 추천해서 가게 됐다. 그때 나는 원장으로 이백철 교무님, 부원장은 신재일 교무님, 총무 김태성 교무님, 주사 이정길 교무님을 모시는 말단 직원으로 들어갔다.

초창기는 무엇이나 힘든 것 같다. 영모묘원은 말할 수 없이 바쁘고 어려웠다. 운전도 해야 하고 인부들도 부려야 했다. 드넓은 허허벌판을 가꾸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잔디를 심어야 하는데 먼저 돌을 주워 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수많은 인부들이 동원됐다. 매일 100여 명 인부들을 데려오는 것도 일이었다.

아침6시에 나가서 근처 마을에서 인부를 12인승 봉고에 20명씩 태워서 데려왔다. 근처 마을에서는 인부들이 걸어오기도 했다. 인부들이 모이면 돌 주워내는 작업을 시작했다. 한쪽에서는 잔디를 심어나갔다. 향나무, 감나무, 철쭉을 구해다가 심는 작업도 했는데 주로 내가 다 심다시피 했다. 돌이 어찌나 많은지 나무 심을 인력까지는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나무도 구하러 다니기 바빴다. 임피를 포함해서 전라북도 안 다닌 곳이 없었다. 종자도 받고 캐러도 다녔다. 느티나무는 원광대학교에서 묘목을 희사해 심었다. 당시 김인용 총무처장님이 영모묘원 초창기에는 느티나무를 심었으면 좋겠다며 묘목을 가져다 줬다.

매일 인부들 먹일 간식 준비도 만만치 않는 일이었다. 너른 들판 한켠에서 돌 몇 개 쌓아 기단을 만들어 놓고 큰 솥 2개를 걸었다. 먹을 게 없으니 주로 국수를 삶았다. 돌도 많고, 땔감도 많으니 국수 삶는 데에는 큰 지장은 없었지만, 직접 장작불을 때 가면서 오전 오후 꼬박꼬박 간식 조달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은 8시간 근무다 뭐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하루 10시간씩 꼬박꼬박 일했다.

/동산수도원

[2018년 4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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