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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수 교무의 차 이야기 15. 차의 미학적 세계
이진수 교무의 차 이야기 15. 차의 미학적 세계
  • 이진수 교무
  • 승인 2018.04.11
  • 호수 188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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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이진수 교무] 햇차를 대하는 마음가짐과 특별한 날에 찻자리를 준비할 때의 마음가짐은 다르다. 매해 같은 시기에 햇차를 접하지만 늘 새로운 것은 차의 세계에서 접하는 미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차를 마시기 위한 일련의 규칙과 의식이 수반되는 동양의 차는 특히 다실에서 알 수 있다. 일본의 다실에는 빼어난 회화와 서예 작품인 족자가 으뜸으로 자리하게 되는데, '차(茶)'라는 서체 하나에도 마음이 고아해지는 것은 물론 묵향이 올라오는 그 자체로 정취가 묻어나기 때문이다. 족자 가운데는 묵적이 가장 으뜸이며, 다실을 장식하는 족자를 고르는 기준은 따로 있다.

먼저, 존경할 만한 내용이어야 한다. 다음은 다실의 분위기와 도코노마의 형식에 잘 맞아야 한다. 이 두 가지 대전제를 충족하는 예술품만이 다실에 장식할 수 있는데, 이 기준은 서화전반에 두루 작용한다. 서예작품으로는 주로 묵적, 고필, 서한문이 포함되고 회화작품으로는 당화, 불화, 고화를 비롯해 근세 각 유파의 회화가 포함된다. 그리고 모든 분야의 작품이 처음부터 다괘를 목적으로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뉜다. 다괘는 한마디로 말해 선가 고승의 필적이다.

주로 송, 원대의 선승들의 필적과 가마쿠라시대부터 무로마치 시대의 일본 선승의 필적으로 리큐(센노리큐, 1522~1591)시대에 <남방록>의 내용에 족자만큼 중요한 도구는 없어 보인다. 바로 객과 주인 모두 차의 삼매경에 빠져 한 마음이 되게 하는 도구이다. 특히 다도구의 제일은 족자이며, 그 가운데에서도 묵적(墨跡)이 가장 좋다는 내용이 이를 뒷받침 한다.

차노유는 선(禪)을 근간으로 하는 만큼 고승의 법어가 쓰는 묵적이 높은 평가를 받는다. 가마쿠라 시대에 선종이 유입되면서 중국 고승의 묵적이 함께 들어왔다. 또한 일본의 선승들도 많은 묵적을 남기게 됐고, 이 필적이 선종의 각 사원으로 전해지면서 부유한 신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무로마치 시대 후기가 되면서 차노유가 성립되고 묵적이 다실의 도코노마에 걸리게 됐다.

한편 회화방면에서는 가마쿠라 말기부터 남북조 시대에 걸쳐 중국의 회화가 전래됐는데 난폭한 일부 사람들은 그림을 도박의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차 모임이 성행하면서 당화는 당연히 다실의 상석을 장식하게 됐고, 무로마치 시대를 거치면서 당화의 영향을 깊숙이 받아 수묵화가 크게 발전했다. 또한 시화축(詩畵軸)이라고 해서, 그림을 잘 그리는 승려가 그림을 그리면 다른 승려가 시를 덧붙이는 형식의 작품이 유행했다. 이것 또한 다괘로 호평을 받았다. 특히 다괘로 귀하게 여겨지는 고필은 전부 서책이나 두루마리를 잘라 표구한 것으로 처음부터 족자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대부분이 서책이나 두루마리 형태로 전하다가 무로마치 시대에 들어서면서 그 일부가 족자로 바뀌었지만, 에도 시대를 지나서까지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무로마치 시대가 열리면서 쇼군인 아사카가 일족과 지방 호족은 앞 다투어 당화를 구하려고 혈안이 됐다. 특히 아사카가 막부에서는 당화를 매우 귀중한 소장품으로 여겼다. 근대에는 다도의 운치를 돋우는 고아한 그림일 경우 족자로 받아들여졌다. 

필자는 차 교육에 몸담은 예나 지금이나  '다향만리(茶香萬里)'를 실천하고 전파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다. 차를 통한 인연의 향기가 세계로 향한 백년대계의 희망이고자 한다. 다괘에서 느껴지는 향기가 남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다실에 자리한 족자는 마음을 고아해지게 만든다.
다실에 자리한 족자는 마음을 고아해지게 만든다.

/원광디지털대학교 차문화경영학과 교수

[2018년 4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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