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김명덕 교무] 원기92년 갑자기 사회복지법인 삼동회 이사장으로 배명을 받았다. 이사장이 된 나는 원기100년을 맞는 교단 대표 복지법인 삼동회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야 할지 많은 고민과 여러 의견을 들으면서 원기100년 이후 교단의 복지 방향을 고민했다.

원불교 복지사업은 알고보면 교단 창립부터 시작됐다. 초기에는 금주, 금연, 허례허식 폐지 등 새 생활운동과 방언공사의 역사가 오늘날 지역사회 개발 사업으로 대비해 볼 수 있다. 또한 전재동포구호사업은 성과뿐 아니라 원불교복지활동의 방향을 제시한 본보기였다. 이러한 사업들은 사회를 변화시키고 사회를 선도하는 교단의 독보적인 활동이었다.

그러나 점점 국가경제가 성장과 더불어 국민의 복지 혜택이 다양하게 전개되고, 복지재원이 확대되면서 원불교의 복지형태도 국가사업을 위탁받거나 또는 지원받는 형태로 변모를 하게 됐다. 특히 사회복지법인 삼동회는 이러한 국가 복지확장 정책에 맞춰 보육원, 양로원을 시작으로 사회복지관 장애인시설, 정신요양시설, 노인전문병원, 모자원 등 다양한 복지사업으로 발전했다. 또 교단에서도 교구자치화에 발맞춰 법인을 교구로 분리하면서 제주 섬나기, 강원 삼동회, 전북 한울안, 효도마을, 대전 삼동회, 충북 은혜원 등 삼동회는 원불교복지법인의 모체로 위상이 커져갔다.

이런 역사적 발전 속에서 원기100년 이후 원불교 복지방향을 고민해 봤다. 그것은 원불교복지의 세계화였다. 내가 출가했던 원기50년에는 국내 교화가 그리 녹록치 않았다. 하지만 대산종사는 일찍부터 해외교화를 주창하며, 숭산 박광전 종사와 아타원 전팔근 종사를 국제회의 등에 참석시키는 등 활발한 해외활동을 부촉했다. 당시 원불교학과 학생들은 이리역에서 선진들을 배웅하며 노래와 환송행사를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대산종사는 또 사대봉공회를 천명하며 인류의 빈곤, 무지, 질병에 적극적으로 퇴치활동을 전개했고 교단 봉공활동 방향을 제시했다. 특히 적십자처럼 세계의 어려운 이웃들을 도울 수 있는 세계봉공회를 창설하게 했다. 하지만 당시는 큰 성과를 이루지 못했고 이렇다 할 국제봉공활동도 미약했다. 다행히 은혜심기운동을 통해 국제재난에 단편적으로나마 동참할 수 있었다.

이어 중앙봉공회가 협력해 재해재난사업이나 국제기구에서 미처 대처하지 못한 국제구호활동에 동참하기도 했다. 또 복지계는 아니었지만 박청수·김혜심 원로교무가 선각자적인 신념으로 아프리카, 동남아 등에서 괄목할 만한 국제구호활동을 펼쳐 교단의 위상을 높이기도 했다.

이러한 교단의 흐름을 보고 나는 사회복지법인 삼동회가 원기100년 이후에는 국제활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경산종법사에게 보고를 올렸다. 경산종법사는 당시 하이원빌리지라는 교단의 큰 현안이 있었음에도 "대산종사께서 염원한 세계봉공사업의 밑거름이 되었으면 한다"고 격려하며 삼동회가 동남아 불교국가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활동범위를 제시했다. 그 힘으로 사)삼동회를 모체로 국제구호단체인 삼동인터내셔널이 외교부의 정식 허가를 받았다.

국제구호사업인 삼동인터내셔널이 원기95년 출범 1주기를 맞아 정기총회에서 케이크 커팅식을 했다.

/라오스교당

[2018년 4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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