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정도성 도무] 지난해에 교육과 관련해 사회적으로 중요한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포항 지진으로 수학능력시험이 일주일 연기된 것이고, 또 하나는 제주도의 한 특성화고등학교 학생이 현장실습 도중 사고로 사망한 사건이다.

지진이 일어나자 신속하게 수능시험을 연기한 대통령의 결단을 사람들은 칭송했는데, 전국의 수십 만 수험생들에게는 수능시험 연기도 힘들었지만, 수능 시험 자체가 지진 만큼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을까. 또한 우리나라 특성화고 학생 비율은 40%에 이르는데도, 이 학생들이 사회적으로 어떤 시선,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가 생각해 봐야 한다. 특성화고등학교는 교육 정책의 사각지대로 불릴 만큼 아프게 배제되어 있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학습시간을 자랑하고 있지만, 학업 흥미도는 꼴찌이고, 청소년의 삶의 만족도는 OECD 국가 중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 마디로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어느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교육 속에서 고역을 겪고 있다.

이 현상이 경쟁교육에서 왔다면 지나친 말일까. 경쟁교육은 완강한 입시교육을 구축해, 시험성적 위주 교육을 강요하며, 수동성과 획일성을 가져온다. 오직 최고와 일등을 추구하는 교육은 나머지를 소외시키고, 소수를 위해 다수를 희생시키는 삐뚤어진 교육이 된다. 우리 사회는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이런 비교육적인 문제들을 존속시켜 온 것이다. 대안교육은 바로 이 지점에 서 있고자 하는 교육이다.

〈대종경〉 전망품은 낙관적인 미래 전망으로 가득하다. 그 중에서 전망품 20장은 그야말로 경쟁 교육의 종언을 전망하고 있다. "지금은 대개 남의 것을 못 빼앗아서 한이요, 남을 못 이겨서 걱정이요, 남에게 해를 못 입혀서 근심이지마는, 오는 세상에는 남에게 주지 못하여 한이요, 남에게 지지 못하여 걱정이요, 남을 위해 주지 못하여 근심이 되리라. 또 지금은 개인의 이익을 못 채워서 한이요, 뛰어난 권리와 입신양명을 못 하여서 걱정이지마는, 오는 세상에는 공중사를 못 하여서 한이요, 입신양명할 기회와 권리가 돌아와서 수양할 여가를 얻지 못할까 걱정일 것이다"고 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전망인가. 

'지금은 남을 못 이겨서 걱정'이라는 말씀은 모르긴 몰라도 경쟁과 서열교육을 드러낸 것으로 읽힌다. '한 줄로 줄 세우기 교육'의 다른 표현이다. 앞으로 오는 세상엔 '남에게 지지 못하여 걱정'이라는 말씀은 반대로 경쟁 교육이 종식된 세상을 표현하고 있으며, '협동과 연대의 교육'을 달리 표현한 말로 보인다. 

우리가 경쟁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건 '개인의 이익'을 채우기 위함이고, '뛰어난 권리와 입신양명'을 위함이다. 대종사의 전망은 경쟁의 이유를 넘어 협동과 나눔, 호혜와 연대의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다. 진실로 남에게 지지 못하고, 남을 위해 주지 못해 걱정하고 근심하는 세상 속에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경쟁교육이 사라진 사회를 그리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이런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이 곧 '공중사'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한 사람의 인재가 만 명의 대중을 먹여 살린다'는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 오직 '만 명의 각성된 대중'이 있을 뿐이다.

/원경고등학교

[2018년 4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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