밉고 싫었던 사람에게 감사할 수 있는 깨달음
해외 복지 사업에 일조하며 보은의 삶 살고자

[원불교신문=박덕진 교도] 나는 전생에 큰 복은 지은 사람이라는 걸 확신한다. 나라를 구한 사람까진 아니지만, 나라를 구하는 데 마음을 모은 사람이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고서야 복은커녕 다양한 업을 쌓아가는 나에게 이렇게 감사한 사람들과 일들이 넘치는 현재를 설명할 길이 없다. 

넘치는 복을 가까이에서 찾자면 "그때, 참 힘들었었지. 너희 키우느라"라고 과거를 회상하는 부모님의 고생 덕에 "그때가 참 좋았었지"라고 행복하게 유년시절을 회상한다. 무엇보다 아버지의 누나인 박원도 교무님 덕에 자연스럽게 원불교의 품 안에서 성장한 것도 내겐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옳은 소리엔 반기를 들고 싶었던 치기 어린 시절, 원불교의 가르침에 반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 말라는 건 많고, 싫어할 것과 미워할 것이 천지인데 왜 모든 것에 감사하라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으며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았던 때, 마음에 노크를 하는 일이 생겼다. 

아버지가 암 투병 중일 때이다. 갑자기 아버지의 상태가 악화됐다는 말에 놀란 언니가 아버지 차로 급하게 병원을 향하다 접촉사고를 냈다. 수리비와 치료비는 보상해드리겠다고, 다만 아버지가 많이 아파서 조용히 처리하고 싶다고 부탁했다. 그러나 뒷목을 잡고 나온 분은 언니의 말을 믿지도, 그렇게 해 줄 생각도 없었다. 그리곤 세상에 아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며 화를 냈고, 결국 아픈 아버지에게 연락을 할 수밖에 없었다. 차 뒤를 받았으나 옆문까지 교체해 주면서, 언니와 난 다시 만나게 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상대방에 대한 원망심이 가득 찼다.  

그러다 뜻하지 않는 곳에서 다시 그분을 만났다. 감당할 수 없는 통증에 고통스러워하던 아버지가 입원한 병원에서. 그것도 병동 간호사로. 우리 가족을 본 순간 그분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당혹감과 미안함이 어린 표정이었다. 이제는 믿을 수 있겠느냐며 소리를 질러대면서 삿대질이라도 하려는 찰나, 엄마는 내 마음을 읽은 듯 손목을 잡아챘다. 그리곤 아버지를 잘 부탁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를 위한 엄마의 모습에 화를 내고픈 마음을 참아냈다. 이후 간호사로 만난 그분은 라운딩 할 시간이 아닌 시간에도 아버지의 상태를 체크했다. 그리고 늘 아버지에게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고, 가벼운 농담을 건넸다. 그분 덕에 조금이나마 웃는 아버지를 보며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감사하다는 말을 할 때, 많은 감정들이 교차했다. 그렇게 밉고 싫었던 사람에게 감사할 수 있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우연이라고 할 수 없는 우연처럼 아버지의 임종이 그 간호사가 근무하던 시간에 찾아왔고 우리는 함께 울었다. 

그분을 다시 만난 날,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질렀으면 어땠을까. 그날 잘 부탁한다는 엄마의 말 한마디가 무엇을 바꾼 걸까. '네가 갚을 차례에 참으라. 서로 갚기를 쉬지 아니하면 그 상극의 업이 끊일 날이 없다'는 대종사 법문을 볼 때, 묵직한 직구가 마음에 콱 박힌다. 

그때를 지난 후에는 세상 불평, 불만 천지였던 내가 조금이나마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원망 생활을 감사 생활로 돌리는 그 순간순간들이 쌓이면서 멀어졌던 원불교가 조금씩 가까워졌다. 예를 들자면 어린 시절이라면 아버지가 부재함에 세상을 원망하고 슬퍼하겠지만, 지금의 난 건강한 심신으로 살아가며 가족들이 모여 앉아 웃으며 아버지를 생각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물론 매일같이 감사 생활을 하면 좋으련만 그릇이 작은 난 여전히 불평, 불만이 많다. 하지 말아야 할 경계에도 쉽게 넘어가버린다. 그럼에도 인과응보의 이치를 생각하며 생활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다. 이러니 난 전생에 큰 복은 지은 사람임이 틀림없다. 지금도 업을 켜켜이 쌓아 가면서도 삼동인터내셔널에서 근무하며 많은 분들의 참된 가르침을 받고 있다.

해외복지사업을 하는데 일조할 수 있다는 건, 은혜에 보은하며 복을 지으라는 뜻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지금껏 받은 은혜에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은하는 삶을 살아가고자 다짐한다. 

/삼동인터내셔널

[2018년 4월 20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