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수백명이던 학생회·청년회 인연 위한 기도 
"교전 제대로 읽어본 적 있어?" 질문에 공부 시작

옛 인연 기다리며 30여 년 교당 지켜온 붙박이


[원불교신문=민소연 기자] 원불교라는 곳에 친구 따라 왔던 것이 그의 나이 열여섯, 원기67년 고교 1학년 때였다. 그 시절, 인창고등학교에서 사직교당까지 도보 30분 정도는 가뿐히 걸어다녔다. 교복도 야간자율학습도 없었던 당시, 교당에 가니 학생회만 30여 명, 그의 동기만 15명이었다. 교당에 오자마자 재미있었고, 입교하자마자 신이 났다. 그 후로 30여 년, 사직교당 학생회·청년회 출신은 그 한명만이 남았다. 오늘도 혹 누가 찾아올까 싶어 붙박이처럼 그 자리에 있는 진산 이규진(辰山 李奎辰)교도다.

지난 추억을 떠올리며 그는 환하게 웃었다. "바로 이듬해 서울교구 학생회에서 봉사부장을 맡았습니다. 주된 일이 월1회 교당을 순회하면서 <갈매기의 꿈> 같은 주제로 토론회를 하는 건데, 가뿐히 100명도 모이곤 했어요. 연말에 발표회도 했고요. 돈암·제기·사직 세 교당 학생회가 모여 탁구대회도 열었지요." 

그의 열정은 고3이 돼서도 변치 않아, 1주일이면 3일을 교당에 들렀다. 어찌나 열심히 했던지, 교사이던 아버지가 그를 찾아 왔다가 차마 문고리 못 잡고 돌아간 적도 있단다. 청년회로 올라가니 '별초롱'이 그를 기다렸고, 그는 두말없이 팔을 걷었다.

"당시 청년들이 초등학생 훈련을 지도하는 '꿈밭'과 함께 중·고등학생 대상인 '별초롱'이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청소년교화에 관심도 투자도 많아 훈련도 정말 잘됐죠. 그런데 이내 청년 봉사가 너무 당연하게 되고, 교당 늘리는 데 더 집중하다보니 뿔뿔이 흩어졌지요. 그래도 훈련 함께했던 아이들이 지금 어엿하게 곳곳에서 교당의 주인 노릇하고 있는 걸 보면 뿌듯하죠."

수십 명에 이르렀던 그의 선후배, 친구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는 "교구 행사에 가면 간간이 아는 얼굴이 눈에 띄지만, 절반도 안된다. 서울교구 학생연합회 당시 임원 15명 중 지금 교당 다니는 친구가 3~4명이다"고 씁쓸해한다. 그것도 15명 중 절반이었던 모태 신앙인, 원친들마저 대부분 교당을 떠나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공부가 부족했었기 때문 아닐까요. 재미나 활동도 중요하지만, 어떻게든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들었어야 했다고 봐요."

깊은 고민이 드러나는 그의 답은 교단의 현주소를 정확히 짚는다. 그렇다면 그에겐 어떤 계기가 있었을까.

"교당에 온 날 일원상서원문을 암송하라고 했는데, 그게 끝이었어요. 그러다 8년 후 전국 청년회 회장단 훈련에 갔는데, 어떤 형이 '교전 제대로 읽어본 적 있어?'라고 하더라고요."

늘 갈증이 있었던 덕일까. 그는 그 한마디를 가슴에 품고 교전을 펼쳤다. 자기 전에 〈정전〉 〈대종경〉 〈정산종사법어〉 한두 페이지만 읽자고 결심했다. 그러다보니 기도도 하게 되고 사경도 하게 됐다. 그렇게 20여 년을 해왔다. 

"지금은 잘 시간이 되면 아이들이 먼저 '아빠, 기도 언제 할 거야?' 물어봐요. 잠들기 전 30분 일과를 지키죠. 상시일기도 15년 넘게 써왔고요, 직장이나 가정 일에 교법을 기준으로 취사하고 있습니다."

레미콘 관련 회사 '상운개발'을 공동운영하고 있는 이규진 교도. "직장 일에 있어서 점점 개교표어에 위배되는 경계들이 생기는데, 그걸 돌리는 게 여전히 공부거리예요. 그래도 10년 전부터는 마음이 조금 편해진 것 같아요. 지금은 '그런 일을 당했는데 어떻게 잠이 오냐'고 물어도, 짓고 받는 이치를 알기에 금세 평정심을 찾습니다." 

걸림없는 매끄러운 신앙과 수행의 원천은 매일같이 읽는 교전 덕이라는 그. "100번 정도는 봤을 텐데도, 읽으면 새삼 또 다른 가르침이 있으니 하루도 게을리할 수 없다"고 말한다.  법호를 받고는 더욱 분발해야겠단 생각에 매주 목요일 초기교서 읽기와 틈나는대로 일원상서원문 10독도 실천하고 있다. "60세 넘어 어떻게 지낼 것인지 고민을 많이 하는데, 그때를 위해서 지금부터 습관을 들이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그에게 어려운 이야기를 청했다. 혹여 돌아올까 싶어 교당 밖 만남을 지속하고 있는 옛 인연들의 이야기다. 그 역시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원불교가 기성종교를 답습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실망도 크고요, 특정 기업과의 관계가 두드러지는 데 대한 거부감도 있더라고요. 남녀평등이나 재가출가 평등과 같은, 너무나 혁신적인 교법들에 오히려 역행하는 현실도 진입장벽인 듯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그는 일요법회마다 자꾸 교당문을 바라본다. 언젠가 다시 돌아올 잠자는 인연들을 기다리며, 종종 소식도 전하고 슬쩍 권유도 해본다. 사실, 그렇게나 망설였던 그가 인터뷰에 응한 것도 이 이유였다. "혹시 신문에서 제 얼굴을 보고 반가워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니까요. 만에 하나, 그렇게 다시 연락이 닿고 한번이라도 교당에 나오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으로 부끄럽지만 나왔습니다." 오늘도 묵묵히 옛 인연을 기다리는 그의 교화에 대한 간절함이 여실히 전해졌다.

[2018년 4월 20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