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창립 2대말 성업기념대회 모습. 맨 앞줄 법훈 종사들이 함께 봉고식을 진행하고 있다.

법위향상운동 부작용으로 자격미달 법강항마위 양산


교단 법위사정에 대한 문제제기는 지속적으로 해왔으나 뚜렷한 대안찾기란 쉽지 않다. 지속적인 문제제기는 이제 법위사정을 공론의 장으로 이끌어내고 있다. 대안제시에 앞서 교단은 언제부터 법위양성화를 시작하게 됐고, 어떤 목적으로 진행했는지, 또 법위양성화로 시작된 현재의 법위사정 제도가 본의에 맞는지를 살펴봤다. 더불어 논란이 되고 있는 사업성적이 법위사정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짚어봤다. 

법위향상운동의 시작
대산 김대거 종법사는 반백주년 기념사업으로 전 교도의 법위가 향상돼 이 회상이 법력 있는 주인들이 배출돼야 함을 강조하며 법위향상운동과 법위 현실화를 내세웠다. 법위 현실화는 모든 재가출가 교도들의 법위가 누락됨 없이 현실에 맞는 법위를 내려주자는 것이고, 법위향상운동은 교도들이 법위등급의 표준에 맞는 훈련을 통해 법력이 증진돼 법위를 향상시키자는 의도였다. 법위향상운동을 펼친 교단은 자연스럽게 재가출가 교도들을 훈련에 집중하게 하고, 훈련을 통해 자신의 법위를 향상시켜 진급의 길로 인도했다. 교도들이 대종사의 교법으로 활불이 되자는 교단적인 훈련정책이 시작된 것이다. 

원기55년 9월6일 재가출가 교도들의 법위사정을 앞두고 첫 교리시험이 전국 교당을 중심으로 실시됐다. 교도 법위향상을 위한 전초작업으로 분위기를 띄운 교리시험은 그해 11월 출가교도들을 대상으로 대산종법사가 직접 성리문제를 출제하기도 했다. 법위향상운동은 결국 교법의 특징인 훈련법 강화로 이어졌다. 교도들이 훈련할 공간이 부족하자 중앙훈련원을 비롯해 교구 훈련원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새 회상 활불의 시대를 예언한 대종사의 뜻이 교도 법위향상운동으로 실현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같은 정책은 교도들의 법위를 압도적으로 증가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원기62년 재가출가 교도 1만2천여 명을 대상, 각 등급에 법위사정이 진행돼 재가출가 교도 15명이 법강항마위에 오르게 된다. 원기62년의 법사탄생은 생존해 있는 교도들의 법위가 처음으로 공개돼 법사에 대한 예우가 양성화 된 것이다. 초성위(初聖位)에 오른 법사들은 교단 중요행사에 위를 갖추고 참석해 법사의 예를 받게 됐고, 승좌설법을 하게 된다.

당시 정식 법강항마위에 오른 15인은 낭산 이중화, 강산 윤정운, 앙산 조준곡, 근산 지해원, 희산 오철환, 양산 김중묵, 중타원 여청원, 동타원 권동화, 청타원 박길선, 양타원 송경심, 맹타원 정우진, 윤타원 이정만, 여타원 김지원행, 의타원 이영훈, 달타원 이정화 등이다.

이어 원기67년에는 재가교도 20,508명과 출가교도 1,285명을 대상으로 법위사정을 시행해 재가교도 58명과 출가교도 68명이 법강항마위(열반인 포함)에 오르고, 재가교도 307명과 출가교도 168명이 예비법강항마위로 올랐다.

그해 11월7일 법사단 승급봉고식이 총부 영모전 광장에서 열려 열반인 포함 126명의 법사단이 탄생됐다. 원기 70년 법위사정에는 재가출가 교도 법강항마위가 262명으로 원기67년에 비해 배 이상 늘었고, 원기73년에는 법위양성화 정책이후로는 처음으로 출가위(원정사)까지 나왔다. 출가9명, 재가3명으로 총 12명의 출가위가 배출됐으며, 아울러 법강항마위는 427명이었다. 원기76년에는 출가위 31명과 함께, 대원정사 대각여래위 2명이 탄생했다. 

본의 살리지 못한 법위향상운동
정책적으로 진행했던 교도훈련은 현실에서 그 기능을 발휘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상시응용 주의사항과 교당 내왕시 주의사항(상시훈련)이 교당의 문답감정 문화로 온전히 정착하지 못했고, 정기훈련 역시 시행은 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형식에 흐르는 경향을 보였다. 

전무출신의 경우 출가교화단이 조단됐지만 상시·정기일기와 문답감정이 법위향상에 도움을 주지 못했고, 정기훈련은 년 1주일로 한정돼 과거 동·하선 3개월의 제도에 비하면 현저히 부족한 실정이다. 정밀하지 못한 훈련은 교도들의 법위를 향상시키는 데 빛을 바랬다는 평가다. 물론 훈련 진행자와 참가자들의 마음가짐과 참여열기, 다양한 연령층의 입선 등이 훈련을 어렵게 했다는 반론도 나온다.

이런 흐름은 결국 형식주의로 빠지게 된 것이다. 재가교도는 법랍과 법회출석, 법위에 해당하는 훈련 이수가 법위를 판단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전무출신은 급수와 근무년수가 현실적인 판단기준이 됐다. 때문에 법위사정이 3년마다 실시되면서 자연 법강항마위의 숫자는 크게 늘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 종합하자면 초기 법위향상을 위한 양성화 방향은 힘을 잃었고, 법위 측정도구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정항의 법사들이 대거 배출되면서 교당에서는 '법사 인플레'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사실적 도덕의 훈련과 법위등급으로 단계별 공부과정을 밝혀 놓은 교법을 생각할 때, 정기·상시훈련을 심각하게 고민하게 만들고 있다. 밀도있는 훈련을 시대에 맞게 실현하는 것이 오늘의 과제다. 

명확한 기준 없는 교도법위사정
재가교도들의 법위사정은 법랍과 법회출석수, 훈련이수에서 대상자가 판단이 된다. 또한 기초조사서 의견에서 교당교무의 추천사유가 포함된다. 법랍과 법회출석, 훈련이수의 기본사항에서 법위사정 대상자가 결정되면, 교당교무는 대상자들을 개인적 재량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개 교당교무들이 기초조사서의 점수를 내  법위 신청을 하는 부분에서 정확한 객관적 지표가 마련된 것도 아니고, 법위사정에 대한 교무들의 교육이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담임교무가 법강항마위에 오르지 못한 교무라면 어떻게 정항의 법위를 내릴 수 있을 것인가도 생각해 볼 문제다. 

또한 교무가 해당교당에 부임해 최대 3년이면 법위사정을 해야 하는데, 단기간에 그 교도를 어떻게 평가하고 법위를 결정할 수 있느냐라는 문제도 제기된다. 대상 교도의 공부 정도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법위를 판단하는 것은 무리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래서 최근 어느 교당은 자체적으로 교도가 참여하는 법위사정위원회를 결성해 폭넓은 의견을 반영하는 경향도 보인다. 

교당교무들이 교도들의 법위를 검증하고, 교구나 중앙총부에서는 큰 결격사유만 없다면 법위를 주는 것이 현실이다. 기초적인 조사에만 의존해 대상자를 선별하고, 교당 교무들의 개인적 판단으로 법위를 주는 형태는 정확성과 형평성의 문제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법위사정을 개 교당 교무의 판단에 따르는 현 시스템은 그 한계가 너무 뚜렷하다. 

원기70년 법위사정에는 재가출가 법강항마위가 262명으로 원기67년에 비해 두배 이상 증가했다.

법위사정과 사업성적
교도들의 법위사정은 공부성적으로 평가한다. 흔히 알고 있는 원성적은 공부성적과 사업성적을 합산한 결과로 이는 전무출신·거진출진 등위와 대봉도·대호법을 평가할 때 반영된다. 그러나 법위에 있어서는 공부성적만이 평가의 기준이 된다. 일부 교당에서는 교도들의 법위를 평가할 때 원성적을 기준으로 하는 경향이 감지된다. 법위승급식 때 헌공을 요청하는 것이 이런 경우다. 다만 헌공금은 대체로 승급을 기념해 공동사업으로 쓰인다. 

원기62년 66회 임시수위단 회의록을 보면 "공부성적과 사업성적은 대종사님께서 각각 두 갈래로 성적을 사정하였는데, 중간에 공부와 사업성적을 합하여 원성적으로 사정하게 되었으나, 앞으로 1대(一代)가 지나면 사업성적은 폐지해야 할 것이라는 대종사님의 말씀을 회의록에 남겨두어 길이 전하게 하자"고 명시돼 있다. 

당시 임시 수위단회에 참여했던 수위단원들이 모두 열반해 소태산 대종사의 사업성적 폐지에 대한 언급을 자세히 알수는 없지만, 유추해 보면 사업성적의 불필요성이나 부작용에 대한 염려 정도로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또한 여기서 대종사가 언급한 1대의 의미가 교단 36년을 의미하는 1대인지 아니면 한 시기를 대략적으로 표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시기의 정도라면 사업성적의 폐지문제도 고민해 볼 때다. 사업성적의 문제도 그러한데 하물며 법강항마위 법위사정에서 사정법에 맞지 않는 비교법적인 요소는 제거돼야 마땅하다. 

[2018년 4월 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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