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경전이란 무엇인가. 전통적으로 지묵경전, 현실경전, 마음경전이라는 가르침이 있다. 결국 혜능대사가 보리자성(본래 청정한 깨달음의 자성)이 곧 경전이라고 한 것으로 수렴된다. 

불경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말한다. 그 가르침은 깨달음에서 나왔으며, 그 깨달음은 불성에서 나왔다. 그렇다면 깨달은 마음이 참된 경전이다. 그 마음으로 산하대지를 보게 되면, 어느 것 하나 경전 아님이 없다. 이 세상 전체가 경전이며, 우리는 매일 산 경전을 대하고 있다. 그것이 선 수행에서 말하는 활구(活句)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경전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역사상의 부처인 석가모니불이 실제로 설한 것과 반대로 그렇지 않고 부처님이 쓴 것으로 간주하는 경전이다. 전자에는 〈아함경〉과 〈니카야〉가 있으며, 후자는 우리가 쉽게 접하는 모든 대승경전이다. 

특히 후자는 전자를 기준으로 한다면 위경(僞經·가짜경전)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신앙심으로 대승경전을 진설로 받든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말하는 (대승경전을 실제로 쓴) 부처님은 누구냐, 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 8세기 학승 산티데바(寂天)는 불경이 진짜 경전이 되기 위해서는 진리 및 정법과 상응해야 하며, 번뇌를 끊고 열반의 모습을 보여주는 법설이라면 인정할 수 있다고 한다. 

결국 경전은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 깨달음의 권위를 갖춘 모든 말씀을 말한다. 소태산 대종사가 "마음의 형상과 성품의 체가 완연히 눈앞에 있어서 눈을 궁굴리지 아니하고도 능히 보며 입만 열면 바로 말할 수 있어야 가히 밝게 불성을 본 사람이라고 하리라"(〈대종경〉성리품 6장)라고 설하는 것은 이것을 말한다. 흔히 비유하듯, 바닷물을 맛보지 못한 사람은 맛본 사람이 어떻게 설명해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여기서 두 가지를 알 수 있다. 

하나는 깨달은 사람은 어떻게 말해도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나 스스로 그 말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바닷물을 맛보는 체험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결국 경전의 가르침을 받들어 내 삶의 양식으로 하는 신앙과, 진리적 체험을 통해 확인하고자 하는 수행의 양면이 함께 갖춰져야 경전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허공은 모든 햇살을 통과시킨다. 허공과 햇살의 작용으로 세계는 밝아진다. 허공이 마음이라면 빛은 지혜이다. 비운 만큼 지혜는 우리를 불지에 올리고, 자비는 충만해진다. 이것은 중국 길장대사가, 마음에 집착이 없고, 머무름이 없는 상태에서 발현되는 무득정관(無得正觀 얻을 것 없는 바른 생각)의 통찰이 바로 경전이라고 설한 가르침이다. 

향타원 박은국 종사가 정년되던 해 설법 마지막 날, "나는 한 해 동안 같은 얘기를 했다. 여러분들은 이해했는가"라고 말했다. 같은 얘기는 무엇인가. 마음이다. 마음 달이 서로 비춰 보는 심월상조(心月相照)가 이루어질 때, 그 설법은 완결된다. 나아가 〈유마경〉에서 유마거사가 불이(不二)법문을 침묵으로 보여주었듯이 뜻은 말을 뛰어넘을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눈빛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경전은 멀리 있지 않다. 

공적영지의 광명을 우리가 회복하게 된다면, 그 자리 그 시간이 바로 설법전이다.  

/원광대학교

[2018년 4월 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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