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은 육신 지배, 육신은 정신 바탕돼
물질 활용해야 할 정신의 힘을 기르자

[원불교신문=허인성 교도] 인간은 정신과 육신으로 이루어져있다. 육신은 생로병사로 그 능력에 제한이 있지만 정신은 무한한 상상력으로 그 능력에 제한이 없다. 육신은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실체이며, 정신은 영적세계에 존재하는 실체다. 그러나 이 둘은 떼어서 생각하기 어렵다.

정신은 육신을 지배하지만 육신은 정신의 바탕이 된다. 소태산 대종사는 대각을 한 후에 "만유가 한 체성이요,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 없는 도와 인과 보응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라고 했다. 그런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고 개교의 표어를 내려줬다. 커다란 실천강령을 내려준 것이다. 지은보은, 정각정행, 불법활용, 무아봉공으로 이어지는 4대강령 또한 그 실천강령의 연장선이리라.

나는 요즘 교전을 보고 또 보면서 대종사의 뜻을 어떻게하면 더 잘 이룰 수 있을까 고민을 한다.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물질을 선용해야 할 정신의 힘이 날로 쇠약해져 물질의 노예가 되고 마는 현실을 진단하고 내 놓은 말씀이다. 보고 또 볼 수록 의미가 깊어진다.

대종사는 기차나 폭탄, 비행기와 같은 과학문명의 발달로 비견되는 물질의 개벽을 보고 이런 말씀을 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나는 이렇게 생각해본다. 대각을 하고 보니 즐거움도 괴로움도 본인이 지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중생들이 얼마나 안쓰러웠을까. 그래서 일원상의 진리를 말씀하고, 일원상서원문을 열심히 기도드리게 했던 것이로구나. 그런데 혼자만 잘 살 수는 없는 것이니 보은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한 것이로구나. 그럼 어떻게 살아야 보은하는 삶일까? 그래서 내놓은 법이 자력양성, 지자본위, 타자녀교육, 공도자숭배의 사요로구나.

대종사는 정신의 힘은 그렇게 길러야한다고 자상히 가르쳐줬다. 하지만 물질을 어떻게 활용해야 함은 정신만큼이나 자상히 가르쳐주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각자의 상황과 처지에 맞게 활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 속에서는 정답이 없다. 모두가 정답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이전의 답이 항상 정답일 수는 없다. 공부인이라면 끊임없이 더 좋은 답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그것을 해야 한다. 뭐든 그렇지 않은 것이 있겠느냐만은 공부에도 순서가 있다. 한 번에 다 끝내버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단계적으로 그것을 밟아가는 편이 수월하다. 우리는 먼저 이 세상이 어찌 돌아가고 있는지를 알아야한다. 그 다음 할 일은 그 속에서 모두가 광대무량한 낙원세계에서 살게 하기 위해 물질을 선용해야 할 정신의 힘을 키우는 일이다.

학생은 학습을 활용하는 정신의 힘을 길러 새로운 것을 잘 배우고, 부모는 가정을 활용하는 정신의 힘을 길러 아이들이 좋은 인성을 갖도록 하며, 직장인은 업무를 활용하는 정신의 힘을 길러 수익을 창출해야 하겠다. 또 정치인은 정치를 활용하는 정신의 힘을 길러 사회정의를 실현하고, 수행자는 경계를 활용하는 정신의 힘을 길러 삼대력을 얻고, 교단은 교리을 활용하는 정신의 힘을 길러 이 회상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삶의 방향이다.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하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 많은 이유는 그 방향에서 벗어나있기 때문이다. 내가 활용해야 할 물질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 그 첫번째 이유요, 찾았다 하더라도 그 물질을 제대로 활용할 줄 모르는 것이 두번째 이유요, 그것이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 못함을 모르는 것이 세번째 이유이다.

물질을 활용해야 할 정신의 힘을 기르면 우리는 파란 고해에서 벗어나 낙원세상에 살 수 있다. 그것을 위해서 각자가 활용할 수 있는 물질을 발견하고, 잘 활용하도록 해야한다. 물질이란 눈에 보이는 것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니 내가 활용할 대상을 잘 찾아 잘 써먹어보자. 그것이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이다.

/정릉교당

[2018년 4월 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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