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민소연 기자] 김철수 씨는 그 유명한 '58년 개띠'다. 베이비부머 세대 중 인구로는 으뜸, 가난한 군사독재 시대를 콩나물 시루 속에 보냈다. 장성해서는 도시로 왔고, 맨주먹으로 가정을 일궈냈다. 누가 뭐래도 소득 3만불의 대한민국을 만든 장본인이며, 자식들을 번듯하게 키워낸 자랑스런 가장이다.

가족들과 환갑맞이 식사를 하던 김철수 씨는 문득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렇게나 젊은데 은퇴가 눈앞이라니. 평생직장이라고 한 우물만 팠는데 이젠 뭘 먹고 살 것인가. 아내와 자식들은 이미 각자의 삶이 있는데, 직장만 오간 김철수 씨는 당장 누구와 얘기하고 밥을 먹을 지 앞이 깜깜했다. 

베이비부머가 돌아오고 있다. 전쟁 후 53년~63년에 태어난 김철수 씨들은 무려 700만 명을 넘는다. 전라도 인구를 합친 370만의 거의 2배 되는 인구요, 전체인구의 15%에 이르는 엄청난 숫자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노동시간이 긴 세대이며 도시화와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낸 대단한 가장들. 그러나 그 중 40%만 국민연금을 받는, 가난한 아버지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오는 것이다. 

그저 국가가 하란대로, 직장에서 시키는 대로 살면 끝내 행복할 줄 알았기에, 김철수 씨들은 은퇴 후를 대비하지 못했다. 그저 막연히 못간 여행도 가고, 늘 미안했던 가족과의 시간도 챙기고, 아내가 그렇게 가자던 교당도 그제서야 가면 되겠지, 싶었다. 

그런데 보아하니 글러먹었다. 수십 년 동안 오른 지위만큼 은퇴 후에도 알아서 모실 줄 알았는데 숫제 뒷방 늙은이 취급이다. 콧방귀 꼈던 아파트 경비원 자리도 없어서들 난리다. 내가 벌어 공부시켜 놨더니 자식들은 제가 본디 잘난 줄 알고 무시한다. 그나마 잘난 맛에 취업이나 했으면 다행이지, 어찌된 게 취직도 못한 자식은 이게 다 아버지 세대 때문이라고 타박한다. 대학졸업만 하면 회사며 공무원 자리가 줄을 섰던 김철수 씨는 도통 이해가 가질 않는다. 

한낮 공원을 서성이는 김철수 씨, 수십년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돌아보니 돈도 없고 갈 곳도 없으며, 편한 친구도 하나도 없다. 여전히 이렇게 팔팔한데, 남은 인생은 어떻게 살아내야 하나. 복지관이며 교당에 가봐도 그렇다. 은퇴 전까진 목에 힘깨나 주고 살았는데, 아무도 몰라주는 데 가서 남들 눈치나 봐야하다니. 차라리 가끔 오는 딸 지영이 자식들 재롱이나 보는 낙으로 살 수밖에. 

교당 문 앞에서 도저히 발이 안 떨어져 서성이는 58년생 김철수 씨. 700만에 이르는 그 숱한 고개숙인 아버지들을 위로하며 교당으로 이끌 수 있는 방법은 무얼까. 언제까지 교당 잘 나오고 공부 잘 하는 아버지들만 안고 갈 것인가.

김철수 씨들은 쏟아지는데, 교당에 남자가 없다는 것은 어디서 잘못된 것일까. 더 늦기전에 답을 찾아야 한다.

[2018년 4월 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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