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해외석학 초청강연에서 마음인문학연구소 고시용 소장이 북경대학교 장쉬에즈 교수를 소개하고 있다.
중국 양명학 권위자인 장쉬에즈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치(致)에 대한 양방향 운동'이란 새로운 논설을 발표해 성리학과 양명학의 새로운 쟁점을 제시했다.

 

"왕양명사상에 대한 새로운 해석…치양지 양방향 운동"


[원불교신문=정성헌 기자] 원광대학교 마음인문학연구소(소장 고시용, 법명 원국)가 5일 원광대학교 WM몰 3층 트레이닝룸에서 중국 명대심학 연구의 석학인 북경대학교 장쉬에즈(張學智) 교수를 초청해 해외석학 초청강연을 개최했다.

2010년 한국연구재단의 인문학국(HK)지원사업에 선정돼 다양한 마음인문학 사회적 확산 사업을 전개해왔던 원광대학교 마음인문학연구소는 매년마다 국내외 학술대회와 더불어 여러 해외 석학 및 명사의 초청 강연회를 개최해 마음인문학 연구의 폭과 깊이를 더하고, 지역사회에 보다 수준 높은 인문학 강좌를 제공해왔다.

<명대철학사>, <심학집론>, <중국유학사 명대> 등의 저술로 국내에서도 중국 양명학의 권위자로 잘 알려져 있는 장쉬에즈 교수는 중국철학 영역에서 북경대학교 3세대 계보를 잇는 인문지식인으로 손꼽힌다. 특히 이날 장쉬에즈 교수가 발표한 '왕양명사상신론(王陽明思想新論)'은 중국심학(心學) 연구에 대한 최근 중국학계의 동향을 살펴볼 수 있는 대단히 의미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오류
춘추전국시대 공자가 후대에 전한 도리(道理)가 훈고학을 거쳐 송대에 이르자 정호, 정이, 주돈이, 장재, 소옹 등 다양한 학자들이 펼친 학설을 남송(南宋)의 주희가 집대성하여 철학 체계를 세운 것이 바로 성리학(주자학)이다. 그런데 명대에 이르자 이러한 성리학을 비판하며 새로이 등장한 유학의 일파가 있었으니 바로 양명학이다.

양명학의 시작은 '격물치지(格物致知)'에 대한 새로운 관점에서 비롯된다. 양명학의 시조인 왕양명도 여느 유생들처럼 성리학을 공부했는데, 주자의 격물치지대로 일주일간 대나무를 쳐다보며 의문을 품었지만 진정은 커녕 큰 병에 걸리고 만다. 주자의 공부법에 의심이 걸렸던 그는 어느날 용장오도(龍場悟道)를 통해 성리학의 공부법인 격물치지가 심(心)과 리(理)를 나누는 오류를 범했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된다.

성리학에서 말하는 성인의 경지란 배워서 도달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늘의 이치(理)를 구하기 위해 사사물물을 깊이 연구해야 한다는 격물치지는 매우 중요한 공부다. 그러나 왕양명이 느낀 성리학의 한계는 일방성에서 시작됐다. 주자가 강조한 '성즉리(性卽理)'는 인간의 마음을 성(性)과 정(情)으로 나눈 뒤, 본성을 위해 감정(情)을 철저히 규제해야 한다고 보았다. 감정을 통제하며 본성을 회복하기 위해 리(理)를 추구하기 위한 공부가 바로 격물치지인데, 모든 이치와 법도는 외부에 있으므로 선비는 오로지 거기에 순응해야 할 뿐 거스를 수 없다. 어동육서(魚東肉西)나 동두서미(東頭西尾)의 제사상 법도는 불변의 진리이지, 상주가 고쳐서는 안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왕양명은 "성인의 도는 나의 성(性)에 이미 구비돼 있으니 사물을 통해 깨달으려 하는 것은 오류다"며 "리(理)가 사물에 없다면 그것은 나의 마음에 있다"는 '심즉리(心卽理)'를 밝힌다. 즉 인간은 본래 선천적으로 '양지(良知)'를 갖췄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감정 또한 성(性)의 발현으로 본 것이다. 즉 성리학에서 성인의 경지는 외부 이치를 철저히 따름으로써 도달할 수 있다고 본 것에 반해, 양명학에서는 인간이 선천적으로 지니고 태어난 '양지'를 자연스레 발현해 나감으로써 도달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치양지의 양방향 운동
장 교수는 "왕양명과 주희의 가장 큰 차이는 치양지(致良知)의 양방향 운동에 있다"며 "치양지는 왕양명의 핵심이론이며, 그의 모든 철학범주에서 최후의 귀결점이다"고 말했다. 왕양명은 윤리적 행위의 출발은 외부에 있지 않고 오직 마음 가운데 선한 동기만이 유일하다는 '심외무물(心外無物, 마음 밖에 물이 없다)'을 밝히고, 인간의 윤리적 가치 이상인 하늘의 이치(理)는 선천적인 양지(良知)에 있으므로 '마음 밖에 이치가 없다'는 심외무리(心外無理)를 주장한다. 이는 외부 사사물물의 리(理)에 중심을 두었던 주자와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 기존 격물치지의 관점이 완전히 새롭게 해석되는 대목이다.

이어 장 교수는 "치(致)는 본래 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안으로 두 방향이 있다"며 "그의 치양지는 양지가 아는 바와 드러나는 바의 올바른 가치를 실천행위에서 구현해 나가는 것이며, 올바른 가치의 범주와 지도 아래에서 행위하도록 하는 것이다"고 밝혔다.

격물치지의 지(知)는 더 이상 외부 지식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타고난 양지(良知)를 의미한다. 때문에 외부로부터 일방적으로 이치를 구해 도달하는 치지(致知)와 달리, 사사물물에 양지를 온전하고 바르게 발현해가는 실천행위와 이러한 활동이 깊어질수록 양지 또한 더욱 심후해져 치양지(致良知)를 실현하는 양방향을 설명한 것이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성리학과 양명학 차이를 사물(存在)과 마음(心性)을 리기(理氣)로 이원화하는 주자의 성즉리 입장과 '리(理)는 기(氣)의 조리(條理)요, 기는 리의 운용(運用)'이라는 왕양명의 리즉기(理卽氣) 입장을 논해왔다. 그러나 장 교수의 치(致)에 대한 양방향 해석은 그동안 중국의 철학 학계에서 짚어내지 못한 새로운 논설이다. 이(理)의 중심이 바깥에 있는지, 내면에 있는지에 따른 격물치지의 주체 관점을 넘어서 일방성 또는 쌍방성이라는 성리학과 양명학의 또 다른 차이의 핵심 쟁점을 새롭게 밝힌 것이다. 이로써 주자와 왕양명의 격물치지 개념은 보다 폭넓은 시각에서 바라봐야 할 여지를 만들었다.

장 교수는 "이는 왕양명이 <전습록>에 밝힌 '내 마음의 양지인 천리(天理)를 사사물물에 이르게 한다면 사사물물이 모두 그 리를 얻을 것이다'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며 "치양지의 실제 활동에서 얻게 되는 의지단련, 이성증진, 직관이 더욱 예리해지고, 정감이 더욱 진실해 지는 등의 요소들이 모두 양지 안으로 융합돼 정신활동의 내재적 요인이 되고 그것으로 하여금 이후의 정신활동 중에서 작용하게 한다. 인간의 실천활동이 부단히 깊어질수록 양지 또한 점점 더 심후해지고 광활해진다. 그러므로 치양지는 어떠한 수양 정도나 어떠한 문화계층의 사람들이라도 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치(致)에 대한 양방향 개념이 밝혀짐으로써 천부적으로 갖고 있는 모든 사람의 도덕성을 얼마든지 훈련하고 개발시킬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내외합일 지행합일
장 교수는 "왕양명은 일생에 배운 것, 경험한 것, 깨달은 것을 '치양지' 세 글자로 만들어 냈다"며 "이 세 글자를 통해서 유가 대부분의 중요한 범주, 예를 들어 <논어>의 인의예지·충서·일관·박약, <맹자>의 사단·사덕·확충·진심지성지천, <대학>의 삼강령 팔조목, <중용>의 성·도·교·이발미발·중화·성명·존덕성과 도문학, <주역>의 보압태화(保合太和)·천지지대덕일생(天地之大德日 生)·궁리진성이지어명(窮理盡性以至於命), <시>·<서>·<예> 등  중요 개념들을 융합하고 해석했다. 유가이론을 서로서로 통하게 하고 융화하고 해석하는 것은 그가 최고수준에 도달했다"고 평했다.

이어 "왕양명은 심즉성(心卽性), 성즉리(性卽理)로 심과 성과 리가 모두 하나라고 보았다"며 "심성은 내재적이지만 심성을 전제하는 실천활동은 외재적이다. 심성은 본체이나 실천 중에 심성의 목적에 대한 실현은 공부로 이뤄지니 내외합일이다. 또 양지는 앎이고, 치양지의 활동은 행이니 치양지가 곧 지행합일이다. 치양지 세 글자는 일체 모든 개념을 자신에게 융화시켜서 간이하고 직접적일 뿐만 아니라 지식과 도덕이 항상 관계한다"며 양명학이 내외합일, 지행합일을 중시하는 까닭을 밝혔다.

마음인문학연구소 연계 전망
이번 초청강연 행사를 담당한 박세웅 교무는 "중국 심학은 마음을 중시하는 원불교 마음공부와 유사한 부분이 많다. 더욱이 명대 양명학은  불교와 도교의 정신사상을 흡수해 유학를 중심으로 삼교일체를 이뤄낸 학문이라면, 원불교는 불법을 중심으로 삼교일체를 이뤄낸 종교이다"며 "이러한 맥락으로 볼 때 사상적인 측면에서 마음인문학연구소와 학술교류 및 다양한 연계사업을 진행할 때 큰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 양명학의 권위자인 북경대학교 장쉬에즈 교수를 모셔 학문적 담론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은 고무적 성과라 본다"고 말했다.

[2018년 4월 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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