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지역봉사 통해 원불교 홍보 앞장
지역민과 선연 맺어가는 봉공인의 참 모습

"일분 일각, 공부하고 보은하며 살겠습니다"

[원불교신문=이여원 기자] 스물 다섯, 꽃다운 나이에 신심 장한 원불교 집안으로 시집 온 화해교당 유혜경 교도(63).

당시를 회상하는 그가 수줍은 웃음을 보였다. 이유가 있다. "저는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어요. 결혼하면 전도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죠." 시할머니 이정화 교도, 시어머니 고보인 교도, 남편 한철원 교도. 이렇게 3대를 이어온 원불교 집안의 결혼식은 화해교당에서 진행됐다. 교당에서 결혼식을 올린 바로 그날, '전도하겠다'던 그의 야무진 꿈이 무너진 건 당연지사다. 

"시할머님과 시어머니 두 분 모두 신심 장한 분이셨어요. 시할머님은 교당에 공양하기 위해서 콩나물을 큰 시루에다 손수 도맡아 기르셨어요. 가을 무렵 갈퀴로 긁어모은 첫 번째 땔감은 무조건 교당 몫이었지요." 신심은 집안 며느리의 가풍으로 전해져 시어머니 또한 첫 손주 이름을 교당에서 받은 법명 그대로 호적에 올렸다.  

집안 어른들을 섬기는 마음으로 자신의 종교를 고집하지 않았지만, 원불교가 여전히 낯설었던 새댁. 그런 그에게 변화가 생긴 건 교당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익산성지 순례를 다녀온 이후다. "당시 기억에 교무님이 어르신들을 모시는 모습을 보게 됐는데, 그때 내 손길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나도 저렇게 봉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의 염원이 그만큼 깊고 간절했을까, 이후 그의 삶은 그의 염원대로 '봉사하는 삶' 그 자체였다.

"장애시설에서 생활하는 아이들 목욕과 청소 봉사를 한 지 20여 년 정도 된 것 같아요. 한 달에 세 번은 병원 안내데스크에서 어르신들의 입· 퇴원 안내 등 자원봉사도 하고, 지역의 크고 작은 행사에도 손을 보태고 있죠." '손을 보탠다'고 표현했지만, 올해로 정읍시 북면 대표 부녀회장을 6년째 하고 있는 그다. 관에서 여성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봉사기관 대표도 맡고 있다.

정읍시 북면 46개 마을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을 주관하는 리더이자 지역봉사의 베테랑이다 보니, 자연스레 북면의 '왕언니'가 됐다. 국무총리상, 전라북도지사상, 정읍시장 대행 장수봉사자 상 등 지난 20여 년 동안 받은 상도 적지 않다. 그러나 '내놓기 부끄러운 상'이라며 자신을 드러내는 일에 연신 조심스러운 마음을 내보이는 그, 그런 그의 마음 중심에는 '원불교를 알리고' 싶은 마음이 더 크게 자리해 있다.

4월7일 교당 큰 행사로 진행했던 '화해성적지 만남의 집 신축기공식과 화해콘서트' 행사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그를 보고 '회장님은 원불교에서 무엇을 맡고 있느냐'고 궁금해 하는 부녀회원들에게 '교도'임을 단단히 각인시킨 그. 그래서일까, 지역에서 원불교에 대한 호감도 그만큼 상승하고 있다. 

"주차선 작업도 면사무소에서 직접 도와주고, 학교에서도 운동장을 주차장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협조해줬다. 각종 물품 후원과 스폰 등 지역 곳곳의 합력으로 행사를 원만히 진행할 수 있었다"고 전한 화해교당 정인신 교무는 봉공의 삶을 실천해온 그가 지역민과 맺은 인연 결실이 큰 힘이 됐음을 말한다. 앞으로 진행될 만남의 집 수로작업 예산지원도 그가 있어 가능한 일이다. 

"지역과 연대하고 싶어도 인연이 닿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 많은데, 원불교를 알리고 교당에 발길을 하게 한다는 것은 크게 그물망을 치는 일이다. 지역에서 원불교에 관심을 가져준다는 것 자체가 교화에 큰 동력이 된다"는 정 교무의 말은, 지역민과 선연을 맺어가는 그를 통해 봉공인의 참 모습을 바라보게 했다. 

지역일만큼 교당일이라면 몸이 먼저 달려오는 그. 무슨 일이든 순발력 있게 대처해주는 그는 속 깊은 자기공부에도 매진하고 있다. "100일 동안 교당에서 정진기도를 드렸어요.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내심 걱정도 많이 했는데, 50일쯤 지나니 마음의 힘이랄까, 신념이 생겼어요. 100일 정진기도의 위력을 얻으니 마음의 힘도 생기고, 이제 이 공부 밖에 없구나 싶은 생각이 더 깊어졌어요." 

신앙은 자기 체험이 있어야 흔들림 없이 깊어지는 법. 그는 가족 모두를 입교시켜 일원가족으로 만들었고, 틈틈이 교전을 읽고, 때론 정산종사 기도터에 올라가 기도정진하며 자기수행에도 한걸음 더 깊어졌다.   

"주어진 단장 역할에 충실하면서 단원들 챙기기에 많은 힘을 기울이겠다"며 시종 꾸밀 줄 모르는 담박한 말로 마음을 보이는 그가 "조금 더 이해하고 양보하고 봉사하는 마음으로 어르신들을 섬기면서 화합하는 교당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전한다. 

그런 그가 품고 있는 마음의 법문은 '요훈품' 1장. "모든 학술을 공부하되 쓰는 데에 들어가서는 끊임이 있으나, 마음 작용하는 공부를 하여 놓으면 일분 일각도 끊임이 없이 활용되나니, 그러므로 마음공부는 모든 공부의 근본이 되나니라."

'일분 일각도 끊임없이 활용되는 마음공부로, 더 열심히 공부하고 보은하며 살겠다'는 다짐을 메모지에 써 온 그. 그의 마음도 그렇게 또박 또박 메모지에 새겨 있었다.

[2018년 4월 27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