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조은영 교수] 오늘날 선(禪, Zen)은 국제사회에서 일상적인 개념이 됐다. 거리와 마켓에는 '선'을 상품화한 물품들이 온갖 젠(Zen) 스타일 가구, 패션, 음식, 일용품까지 흔하다. 가정과 예술과 사이버공간에도 가시화되고 물질화된 선이 도처에 현현해 있다. 

이처럼 서구사회에서 대중화된 선은 한국의 '선'이나 중국의 '찬'이 아닌, 일본의 '젠'으로 통용된다. 서구권에서 일본의 젠은 한국과 중국의 선보다 일찍이 확산됐는데, 그 배경에는 일본 특정 선종파의 국가주의적 이념과 문화정치적 전략이 있었다. 

일본은 19세기 후반에 구미에 진출하면서 '국가이미지 만들기' 문화정책을 추진했고, '일본을 중심축으로 하는 아시아'에 대한 서양의 몰이해와 물질주의 문명을 공략하는 동시에 아시아의 우월성을 드러내고 일본 문화·예술·종교를 대변하는 동양정신을 필요로 했다. 

이 과정에서 선사상은 예술과 다도와 아울러서 일본 고유문화로서 국가 정체성을 표방하게 되고, 동서교류에서 역사적으로 유구한 일본 정신성과 영성의 원천이라는 문화콘텐츠로 재해석되어 서양에 제시됐다. 국가와 인종 간의 경쟁과 우열을 초월해야 하는 선 개념이 일본 문화와 국가주의에 접목되고 전파된 과정은 동서양의 오랜 문화적·이념적 각축전에 대해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스즈키 다이세츠

일본 선불교, 미국에 진입하다
일찍이 1883년에 보스턴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트리니티교회 목사, 필립스 브룩스는 빠르게 확산되는 불교에 대한 경각심에서 "많은 보스턴 사람들이 기독교도보다 불교도로 간주되기를 선호한다"고 한탄했다. 당시 미국 정치외교·경제·문화를 주도한 엘리트층은 일본의 서구진출 문화정책의 여파로 40년 동안 확산된 일본취향(Japonisme)의 물결 속에서 일본 불교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하버드대학 출신 E. 페놀로사와 W. 비겔로우 같은 학자들은 일본 체류시절에 불교로 개종하고 불상을 포함한 많은 불교 조형물과 불교사상의 미국 유입에 기여했다. 

미국에서 일본불교는 1893년 일본이 성공적인 전시로 주목받은 시카고만국박람회와 함께 개최된 세계종교의회(World Parliament of Religions)에서 일본 국가주의를 수용한 가마쿠라 소재 선종 사원, 엔가쿠지(圓覺寺)의 수장 샤쿠 소엔(釈宗演) 일행에 의해서 공식적으로 전파됐다. 그의 연설문을 비롯한 불교문헌들은 제자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가 번역했는데, 이들은 임제종(臨濟宗)에 사회적 다윈주의를 도입해 일본불교가 세계에서 가장 진화된 유형의 불교이고, 종교는 국익을 수호하며 민족과 국가 존립과 공생한다고 주장한 일본 신불교(新佛敎)의 선종파에 해당했다.

샤쿠 소엔과 스즈키는 전략적으로 포교했다. 세계종교의회 이후 스즈키를 미국에 보낸 스승은 한국, 만주,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태리, 인도로 순회강연을 다녔고, 제자도 미국, 영국, 독일, 스위스, 멕시코 등지에서 선불교를 전파했다. 일본 선불교를 서구권에 확립시킨 인물은 스즈키였다. 서구 선불교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요, 많은 예술가와 작가들에게 영감을 제공했다고 인정되는 스즈키는 1897년부터   1909년까지 미국에 체류하며 스승의 저술, 〈미국인을 위한 선〉을 비롯한 선불교 문헌 번역과 강연에 몰두했고, 이후 영문 저술만 해도 〈선과 일본문화〉등 40권 이상을 펴냈다. 

선불교, 국가주의로 무장하다
로버트 샤프, 브라이언 빅토리아, 와이베 쿠이테르트 같은 학자들이 논증하듯, 미국에 전파된 일본 신불교의 지도자들은 동북아가 일본의 주도로 연합해야 한다는 명목 하에 제국주의와 무사도(bushido)를 수용해 군사적 팽창정책을 지지했고, 이를 위해 한국과 중국 불신자들을 각성시켜야하는 일본 불교의 사명을 강조했다. 

'기독교 국가' 러시아, 곧 '부처님의 원수'와 싸우는 것으로 불교계에서 간주된 러일전쟁 참전 당시, 샤쿠 소엔은 이는 인간 살상이 아니라 악에 대항하는 전투이자 부처님의 존귀한 가르침임을 군인들에게 각성시켜야 할 사명이라 역설했다. 당시 평화주의자인 톨스토이가 반전운동을 위해 일본 불교지도자들과 연대를 제안했을 때, 샤쿠 소엔이 "공생할 수 없는 존재들 사이에 조화를 이루는 수단으로서 전쟁과 살생은 필요하다"고 답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들이 주창한 것이 서양 오리엔탈리즘에 맞서는 역(逆)오리엔탈리즘, 곧 동양주의 담론이다. 샤쿠 소엔과 스즈키 다이세츠는 서양의 이분법적 사고를 비판하면서도, 역설적으로 서양과 동양이라는 이분법적 논리를 통해 서양인은 물질적·육체적·동적이며 분석적으로 사고하는 반면, 동양인은 정신적·영적·명상적·직관적이며 종합적으로 사고한다면서 동양의 탁월성을 주장했다. 이들은 일본의 정신적·문화적 우월성을 내세우는 한편, 일본 선사상을 가시화된 예술로 제시하고자 했다. 가령 구미에서 애호된, 중국 송 시대 정원에서 유래한 일본 선정원(Zen garden)을 비롯해 역사적으로 선(禪)의 문맥에서 명확하게 고증되지 않은 문화예술을 재해석했다. 

스즈키, 선을 문화콘텐츠로 만들다
스즈키의 선의 문화정치적 맥락은 미국과 일본이 적이었던 2차 대전 후 채 10년이 지나지 않아 일본 붐(Japan boom)과 젠 붐(Zen boom)이 미국 문화예술계에 확산된 흥미로운 현상에서도 보인다. 스즈키는 1949년 반일정서가 팽배한 미국에 돌아가서, 하와이대학에서 시작해 점차 보수적인 동부로 이동해 1951년부터 뉴욕 콜럼비아대학, 1957년에는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로 옮겨 수많은 지식인과 예술가들에게 서양 물질문화의 폐해에 대한 대안으로서 선불교와 일본문화를 전파했다. 그는 저술과 강연, 텔레비전과 〈타임〉지 등 언론을 통해 인지도가 높아졌고, 그의 선은 대중에게 친근감 있게 인식됐다. 

스즈키가 구미에서 일본 전통 선종파나 타국의 선불교보다 큰 반향을 일으키고 선불교의 지도자, 권위자로 정착된 것은 적극적인 활동 외에도, 그가 선불교를 현대 서구인의 필요와 구미에 맞게 문화콘텐츠로 제시한 덕분이었다.

우선 스즈키는 '선불교'에서 '불교'보다는 '선'의 속성에 중점을 두고 선을 보편화했다. 즉, 선을 특정 종교, 교리, 사상을 초월해서 모든 것에 적용될 수 있는 문화적 코드로 만들었다. 자국에서는 국가주의에 동조해 일본 민족성과 시대적 사명감을 강조했던 특정 선종파에 근거한 스즈키의 선은 역설적이게도 국외에서 선의 '보편성'을 통해 온갖 종교, 사회, 사람들이 무수한 영역에서 선을 적용하도록 제안한 것이다. 

나아가서 스즈키는 12, 13세기 무렵에야 중국에서 일본으로 유입되어 불교 종파에서 존속된 선을 확대해 일본 고유의 문화예술과 접목시켰고, 일본 정신문화의 원천으로 주장하면서 선의 미학적 측면을 강조했다. '선 미학'을 일상화 한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19, 20세기에 거쳐 국제사회에서 확산된 일본의 군국주의·호전국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일본 선불교가 거부감 없이 수용될 수 있게 했다. 

종전 후 겨우 수년이 지난 1950년대에 "완전히 일본 문화침략의 해가 됐다"고 평해질 정도로, 미국 예술가와 지식인 사이에서 유난히 스즈키를 중심으로 '젠 붐'이 급속히 확산되고, 젠이라는 단어가 온갖 대화와 영역에서 일상적으로 통용되는 유행어이자 '마술적인 패스워드(password)'가 된 것은 이를 현대문화와 예술에 적용될 수 있도록 한 스즈키 선의 문화적·미학적 속성 덕이라고 할 수 있다. 

스즈키의 선을 핵심으로 한 일본 선불교의 미국 진출은 동서양의 복합적인 정치경제적·문화정치적 힘겨루기와 얽혀있음을 보여준다. 당시 서구에서 활동하던 세계적인 작가 백남준은 이렇게 평했다. "스즈키처럼 '우리' 문화를 파는 장사꾼이 되지 않기 위해서 나는 선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왔다. 문화적 애국주의는 정치적 애국주의보다 더 해롭기 때문이다. 선(자기-폐기)을 스스로 선전하는 일은 오히려 선의 자살에 해당하는 바보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원광대학교 미술과

1893년 미국에서 시카고만국박람회와 함께 세계종교의회가 열렸다. 이때 일본 국가주의를 수용한 가마쿠라 소재 선종 사원, 엔가쿠지의 수장 샤쿠 소엔 일행에 의해서 일본불교가 공식적으로 미국에 전파됐다.

[2018년 4월 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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