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대동강 맥주축제’를 꿈꾸며
헤이그~판문점 16000km 대장정

강명구 평화마라토너 왼쪽.
강명구 평화마라토너가 직접 찍은 유라시아횡단길, 그는 지금 16000km의 절반을 넘어왔다. 

‘통일이여! 평화여! 한반도의 번영이여! 일원세상이여!’ 이렇게 쓰고 보니 이 거룩한 단어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다. 정상들에게 예포로 예의를 표하듯 감탄사를 쏘아 올려 예포를 대신해야겠다.

‘아! 통일이여! 평화여! 한반도의 번영이여! 일원세상이여!’ 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여 나는 초원을 달리며 소리 높여 허공에 외쳤다. ‘아! 통일이여! 평화여! 한반도의 번영이여! 일원세상이여!’ 이제 이 거룩한 단어들이 생명이 붙어 온 세상에 퍼져나간다.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8천만 우리 겨레와 전 세계에 엄숙히 천명했다”며 판문점 선언을 발표할 때는 울컥했다. 감격의 파장이 이곳까지 전해오는 듯 오늘따라 초원의 바람은 거셌다. 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동쪽을 향해서 달리는 내게는 시련과 같은 것이지만 발걸음은 신이 났다. 온 우주의 기운이 돌고 돌아 상서로운 기운이 한반도에 어리고 있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기대와 소망이 있는 곳을 말하며, 화합과 평화 번영의 길을 의미한다. 오늘 만찬장에서 부른 노래도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었다.

유라시아를 달리며 내가 가장 듣기 실은 질문은 “당신은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라는 물음이다. “나는 한국 사람이에요”하고 답하면 그 다음에 필연적으로 되묻는 “남한 사람? 북한 사람?”이란 질문이 따라온다. 이쯤 되면 나는 심통이 나서 시비라도 붙고 싶은 사람처럼 네덜란드에서 시작할 때에는 “내가 당신에게 남쪽 네덜란드 사람인지 북쪽 네덜란드 사람인지 안 물어보는데 당신은 왜 내가 남한 사람인지 북한 사람인지 궁금한데?” 이렇게 되물어서 상대방을 뻘쭘하게 만들곤 한다. 독일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당신에게 동독인지 서독인지 안 묻는데 왜 당신은 내게 남한인지 북한인지 물어봐!” 나는 어디를 가든지 남한 사람도 아닌 북한 사람도 아닌 한국 사람이고 싶다.

남북 정상회담은 한반도와 동북아뿐만 아니라 세계사에도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하여 남과 북의 관계가 얼마나 끈끈한 관계인가를 세계 시민들을 향해 감동적으로 보여주었다. 이제 한반도에는 핵무장도 필요 없고 키리졸브 훈련 같은 대규모 전쟁연습도, 사드도 필요 없다는 것을 과시했다. 비무장지대가 세계적 평화생태공원이 되고, 개성은 동아시아의 공장이 되고, 금강산은 세계적 관광 특구가 되며 황해도 해주가 국제금융 허브로 떠오른다.

부산은 이제 유라시아 특급철도의 출발역이 되고, 그 철도를 통하여 서쪽 끝에 있는 섬나라 영국과 동쪽 끝에 있는 섬나라 일본이 연결된다. 그 중심엔 우리나라가 있다. 중국과 일본, 미국의 한 중심에 있는 지정학적 위치는 우리가 물류 중심지로 우뚝 설 수 있는 좋은 조건이다. 옥류관은 맥도날드를 뛰어넘는 패스트푸드 브랜드가 되어 냉면은 유라시아의 미래 맛으로 정착될 것이다.

오늘은 남북이 대결 상태를 끝내고 평화의 시대로 들어가는 역사적인 날이다. 오늘의 최고의 압권은 두 정상이 손잡고 몇 십 년이 걸려도 못가는 먼 길을 단숨에 폴짝 뛰어 넘으며 최고의 축지법 무공을 보여준 것이다. 아이들 땅따먹기 놀이처럼 유치하게 군사분계선을 두 정상이 손을 잡고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잠시 넘나드는 장면이었다. 그 철없는 아이들 같은 모습이 파격처럼 세계인들에게 연출되는 장면은 그동안의 피 말리는 적대감이 얼마나 덧없고 우스꽝스럽기까지 한지 적나라하게 설명한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일체의 모든 것은 마음에 있다
정치인들이 풀지 못한 숙제를 대신해주고파 마라톤 시작

북한 김정원 국무위원장은 “정작 마주하고 보니 북과 남은 역시 서로 갈라져 살 수 없는 한 혈육이며 그 어느 이웃에도 비길 수 없는 동족이란 것을 가슴 뭉클하게 절감하게 됐다. 하루 빨리 온 겨레가 마음 놓고 평화롭게 잘 살아갈 길을 열고 우리 민족의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나갈 결심을 안고 나는 오늘 판문점 분리선을 넘어 여기에 왔다”고 일갈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했다. 일체의 모든 것은 마음에 있다는 말이다. 마음을 열고 보니 모두가 사소한 것들인데 왜 우리들은 그토록 모질게 핏대를 올리며 상대방에게 삿대질하고 철천지원수처럼 싸웠는지 부끄럽기만 하다.

사실 내가 처음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 출발할 때의 남북관계는 빙하의 얼음장처럼 꽁꽁 얼어붙어서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녹지 않을 것 같았다. 나의 달리기는 정치인들이 도저히 풀지 못하는 숙제를 대신해주고픈 심정으로 시작한 것이었다. 두꺼운 얼음장을 뚫고 싹이 트는 가녀린 새싹이고 싶었다. 그런데 두 정치인이 이 오랜 숙제를 알아서 풀어주니 내 임무는 여기서 끝인 것 같아서 내심 허탈하기도 했다. 늘 상대가 죽어야만 내가 살 것 같은 적대감을 가슴에 품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함께 웃으며 손을 잡고 내일을 향해 힘차게 출발하는 날이 이렇게 빨리, 느닷없이 들이닥칠 줄 누군들 알았을까?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축제의 한마당이 필요하다. 윗마을의 갑돌이와 아랫마을의 갑순이가 결혼한다는 소식에 마을사람들은 너도나도 축복을 해준다. 마을사람들은 갑돌이와 갑순이의 결혼을 빙자해서 한마당 축제의 장을 연다. 마을사람들에게 때로는 우리는 하나임을 확인하는 광란의 축제가 필요하다.

2002년 우리는 그것을 스스로 확인했다. 늘 전쟁의 위험 속에서 언제 모든 것이 한순간 날아갈 수 있다는 불안감은 언제나 삶을 좀먹었다. 그 모질고 서러운 삶을 살아온 우리는 월드컵을 빙자하여 슬픔과 한을 속 시원하게 날려 보냈다. 그 질서정연한 광란의 축제를 세계인들은 넋을 잃고 지켜보기만 했다.

이제 내 유라시아횡단 평화마라톤을 빙자하여 한마당 신명나는 축제가 대동강변의 휘휘 늘어진 버드나무 아래서 펼쳐지기를 꿈꾼다. ‘10월의 대동강 맥주축제’에 남한 시민 5만, 북한 시민 5만, 재외동포와 세계시민 포함 5만 이렇게 15만 정도 모여서 대동강맥주와 남한의 막걸리를 마시고 떠들며 무박2일 누구의 손이라도 마주잡고 강강술래 빙글빙글 돌며 광란의 축제를 벌인다. 2002년 월드컵 때를 능가하는 ‘질서정연한 광한의 축제’ 그건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최고의 덕목이다.

이렇게 이념과 사상을 뛰어넘는 만남과 섞임 속에 철조망으로 그어놓은 휴전선 보고 더 각박한 마음의 선을 지워버리는 거다. 남과 북을 갈라놓은 휴전선보다도 우리들 마음에 그어진 선을 넘기가 더 어려울 수가 있다. 마음으로 그어진 선은 지나간 옛사랑의 이름을 지우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한다. 그런들 15만이 서로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고 돌다보면 조금씩 지워지지 않을까? 그렇게 마음의 선을 지우고 나면 우리 8800만 동포 모두는 세상에서 가장 먼 길, 분단의 선을 훌쩍 뛰어넘는 축지법의 고수가 될 것이다.

아마 통 큰 모습을 보이기를 좋아하는 그 분은 “유라시아를 품은 사람이 쫀쫀하게 15만이 뭡네까? 10만씩 30만으로 합시다”라고 되치는 기분 좋은 상상을 또 해본다.

*본지에 실린 강명구 평화마라토너의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1.2는 글쓴이의 동의하에 아시아뉴스통신과 공동게재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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