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임병학 교수] "어찌하여 생사고락 그 이치며 우주 만물 그 이치를 알아볼까." 

이치를 알아본다는 것은 진리에 대한 대종사의 구도(求道)를 의미한다. 그런데 '생사고락 그 이치'와 '우주 만물 그 이치'를 알아본다고 한 것은 진리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진리는 두 가지임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즉, 진리는 세상에 이미 드러나 있고, 스스로 울리는 본성의 소리에 응답함으로써 밝혀지는 것이다. '그 이치'에서 '그'는 이미 정해져 있는 그것이다.

〈대종경〉 서품에서는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 없는 도(道)와 인과보응 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라 하고, 인도품에서는 "그 중에 제일 큰 도로 말하면 곧 우리의 본래 성품인 생멸 없는 도와 인과보응 되는 도이니"라고 해, 대종사가 깨우친 진리는 생멸 없는 진리와 인과보응의 진리임을 밝혔다. 또 천도품에서는 "그대들은 이러한 이치를 깊이 연구하여 우주 만유가 다 같이 생멸 없는 진리 가운데 한량없는 생을 누리는 것을 깨쳐 얻으라"고 했다.

따라서 '탄식가'의 '우주 만물 그 이치'는 생멸 없는 진리이고, '생사고락 그 이치'는 인과보응의 이치임을 알 수 있다. 

'교의품'에서는 "곧 천지 만물의 본원이며 언어도단의 입정처(入定處)라, 유가에서는 이를 일러 태극(太極) 혹은 무극(無極)이라" 하여, 〈주역〉의 학문적 개념인 태극과 무극은 일원상의 진리를 말한 것이라 했다. 즉, 생멸 없는 진리와 인과보응의 진리는 〈주역〉의 원리로 이해가 가능한 것이다.

먼저 〈정전〉에서는 "인과보응의 이치가 음양상승(陰陽相勝)과 같이 되는 줄을 알며"라고 해, 인과보응의 이치를 직접 〈주역〉의 음양원리로 풀이하고 있다. 〈주역〉에서는 '한번 음으로 작용하고 한번 양으로 작용하는 것을 도라고 한다(일음일양지위도 一陰一陽之謂道)'라 하고, '천도를 세워서 음과 양이라고 한다(입천지도왈음여양 立天之道曰陰與陽)'라고 하여, 음양은 천도(天道)의 작용원리임을 밝히고 있다. 즉, '생사고락의 그 이치'는 하늘의 작용원리인 것이다.

또 〈정전〉에서는 "또는 우주 만물이 이름은 각각 다르나 둘이 아닌 줄을 알며, … 또는 생로병사의 이치가 춘하추동과 같이 되는 줄을 알며"라고 하여, 생멸 없는 진리는 생사(生死)의 근원적 이치임을 알 수 있다. 

〈주역〉에서는 "시작에 근원하여 마침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생(死生)의 말씀을 알며(원시반종고 지사생지설, 原始反終故 知死生之說)"라 하고, 또 "마친 즉 곧 시작이 있음은 천도의 운행이다.(종칙유시 천행야, 終則有始 天行也)"라고 하여, 원시반종(原始反終)과 종즉유시(終則有始)하는 이치를 밝히고 있다. 즉, '우주 만물의 그 이치'는 태어나서 죽어가는 생사(生死)의 의미가 아니라, 죽으면 곧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는 사생(死生)의 원리인 것이다. 

/원광대학교

[2018년 5월 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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