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 통일좌담회 전문

교정원, 남북교류 총괄할 컨트롤타워 설치해야 
 

4.27 남북정상의 '판문점 선언'은 남북교류는 물론 통일을 향한 큰 물줄기를 바꿨다.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 실현, 올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 한반도 군사적 긴장상태 해소 공동 노력, 개성에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 8.15 남북 이산가족 친척 상봉 진행, 문재인 대통령 올 가을 평양 방문' 등 통 큰 합의를 만들 냈다. 한반도 상황이 급변하면서 남북한 교류협력의 지형이 한판 바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본사는 '통일의 물꼬를 트라'는 주제로 특집 좌담회를 2회 개최한다. 첫 순서로 정인성 교정원 문화사회부장과 정도상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상임이사(소설가), 이승환 사)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장이 참석해 4.27 남북정상회담 이후 달라진 남북교류협력에 대해 알아봤다. 좌담은 서울 문화사회부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감격스런 남북정상회담을 지켜봤는데, 먼저 소감을 듣고 싶다. 
정도상= 지도자의 캐릭터가 만들어낸 창조성의 회담이었다. 나는 두 정상이 새로운 역사를 출발시키고자 하는 어떤 의지를 읽었을 뿐만 아니라 캐릭터의 위대함도 함께 느꼈다. 분단체제를 통일체제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지도자들의 결단과 창조성이 반드시 필요한데, 두 정상은 이미 이 캐릭터를 가지고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따뜻하면서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신뢰의 지도자라면, 김정은 위원장은 젊지만 통이 크면서도 섬세한 캐릭터였다. 

이승환= 생방송을 보며 '대통령을 잘 뽑으니 세상이 이렇게 변할 수 있구나'하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판문점 당일치기 정상회담에 앞서 상당 부분 물밑 접촉을 통해 합의문을 만들어 왔다는 것과 도보다리회담, 영부인 동행, 환송행사 등 남북 지도자 간 민족문제를 놓고 대화하는 과정이  '케미'가 있어 보기 좋았다. 국민들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준 한편의 '리얼리티 쇼'처럼 보였다. 

정인성= 정산종사께서 '우리 이러지 말자고 손잡을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한반도 평화가 세계 평화를 가져 올 것이다'라고 예언적인 말씀을 해 주셨다. 딱 그 모습이었다. 얼마 전만 해도 통일을 반대하는 여론이 많았지만, 정상회담 이후 국민 90%가 지지하는 것을 보고, 통일의 열망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올해 김 위원장이 우리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신년사를 발표해 변화의 조짐을 읽을 수 있었다. 신년사 대로 북한은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 등 일련의 좋은 변화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승환 사)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장.

 

민간 대북투자 리스크
줄이기 위한 법률 장치 필요
평양연락사무소 개설 추진도

-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 〈겨레말큰사전〉은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 
정도상= 문익환 목사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 가지고 간 것이 〈우리말갈래사전〉이다. 당시 김일성 주석에게 통일을 대비해 '남북 통합 국어사전'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문익환 평전〉을 읽다가 이 구절이 번쩍 눈에 들어왔다. 이후 북측 인사들을 만나 2년여 설득 한 끝에 2004년 중국 연길에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와 남측 통일맞이 문익환 목사 기념사업회가 의향서를 체결하게 된다. 남북은 각자 표준어 개념의 사전을 갖고 있다가 분단 이후 최초로 온전한 우리말 국어사전 만들기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2005년 시작된 〈겨레말큰사전〉은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중단됐다. 판문점 선언 이후 남북관계가 호전되면서 곧 재개될 예정인데 최소 3년 이내에 결과물이 나올 것으로 본다. 

이승환= 2007년 10.4 남북정상공동선언을 토대로 남측에서 8천만달러를 지원했고, 북측은 이에 따른 지하자원 등을 서로 교환하는 사업을 시작한다. 이 사업의 이행기구로 북측은 민경련, 남측은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가 지정됐다. 그 당시 사업을 집중했던 곳이 단천 광산지대였다. 이에 따른 천연자원 조사작업과 사업성 분석 등을 마쳤지만 남측에 상환된 것은 불과 3%에 그쳤다. 통일부로부터 위탁을 받아 진행된 사업은 남북 경색 국면에 중단되고 말았다. 우리 협회는 여건만 조성되면 당장이라도 천연자연의 보고인 단천지방 개발에 나설 것이다. 사업이 재개되면 북한 단천에 상주하면서 다양한 경협 활동은 물론 남북 철도, 도로 연결 등 많은 부분을 관여해야 한다. 

- 개성공단이 행정조치 하나로 폐쇄되는 경험을 했다. 남북경협 중단 시 법률적으로 손실을 보상하는 안전장치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3통(통행·통신·통관) 문제해결 등 리스크를 줄이고 투자환경을 조성하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남북한 경협의 생태계 조성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다. 
이승환= 사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경제정책은 집권 이후 개혁 개방의 일관된 모습을 보여줬다. 장마당 등 시장경제 확대, 기업 관리와 관련해 자율성 부여, 개혁과 개방주의자인 박봉주 북한 내각총리 재신임 등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경제 성장에 방점을 둔 정책을 펴왔다. 김정은 위원장의 목표가 급속한 경제발전 국가 진입이기 때문에 핵 완성 이후 미국 제제는 시급한 해결과제였을 것이다. 김 위원장의 빠른 비핵화 선언은 문재인 정부나 미국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도 이해관계가 일치하면서 아주 빠른 속도로 진전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2019년 말 정도에는 비핵화를 큰 틀에서 완료하고, 종전선언이 진행돼 인도적 지원이나 대북제재도 해제되는 수준까지 도달할 것이다. 북미수교도 이뤄질 공산이 크다. 대신 준비해야 할 실무자들 입장에서는 매우 바쁘게 움직여야 할 것이다. 

개성공단은 남한 정부로부터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곳이다. 그러나 5.24 조치 이후 개성공단을 비롯한 북한의 다른 지역에 투자했거나 사업을 했던 기업들은 절반 이상이 도산했을 정도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다시는 경협에 투자하지 않겠다는 기업인들이 대다수다. 남북경협 생태계가 완전히 무너진 상황에서 이를 복원하는 노력이 필요한데, 정부의 보상도 만족스런 수준이 아니어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정부가 대북투자 피해지원과 관련 기업들이 남북경협에 투자할 만한 지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간 합의 파기로 손해를 보는 기업에 손실보험 등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만들어줘야 경협도 활발할 것이다. 정권이 바뀌면 불안해하는 기업인들을 위해 대북 투자에 대한 보장이나 보상을 해주는 법률적 장치가 꼭 필요하다. 

정도상= 중소기업이 들어간 개성공단보다, 남측의 대기업이 들어가면 상황이 아주 달라질 것이다. 대북제재가 해제되면 대기업들의 투자 러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철도나 고속도로, 항만 등 인프라가 준비돼야 하겠지만 경협의 생태계는 대기업 진출로 판이 완전히 바뀔 것이다. 남측 정부도 시혜적인 입장에서 지원하는 정책은 지양하고, 미래 통일 한반도를 위한 투자라는 개념으로 경협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정인성=  경제 관련한 경협은 10.4 선언에서 잘 갖춰 놓았다. 항만, 철도, 도로도 중요하지만 북한 영공을 통과하는 항공노선을 회복했으면 좋겠다. 국제노선과 인천-평양 간 서해직항 노선이 다시 재기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도상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상임이사.

 

〈건국론〉 3기 통일과정
훈련기·정리기·완성기
평양교구 인력·예산 확보해야

- 남북한 경협도 중요하지만 남한 내 교류협력에 대한 갈등도 클 것 같다. 남북 경제공동체를 지향하는 데 있어 남한사회의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남남갈등을 해소할 묘책이 있으면 말해 달라. 
이승환= 남북통일이나 통일운동을 바라보는 남쪽 국민들의 시각은 다를 수밖에 없다. 남남갈등 해소의 뾰족한 해결책은 없는 편이다. 국민 90%가 찬성하는 남북정상회담을 '위장평화쇼'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갈등은 불가피하다. 다만 갈등 없는 상태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적절하고 건강한 갈등관계가 오히려 좋고, 구체적인 사안들에 대해 필요한 합의를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남쪽은 현재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노동력 부족이 심각하다. 가령 북쪽 유효 노동력 1500만 명 중 900만 명만 남북경협에 참여해도, 한반도는 일본과 대등한 번영을 누릴 수 있다. 남북관계 변화를 통해, 반대하는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식이 갈등을 해소시키는 좋은 방법일 것 같다. 

정도상= 갈등은 생명을 더 잘 유지시켜주는 요소로, 서로 수용하고 인정할 때 새로운 길은 열린다. 특히 통일운동에 있어 종교 간 대화도 굉장히 중요해졌다. 한반도 통일을 향한 종교적 합의 내지는 선언적인 통합작업이 필요하다. 

정인성= 종교인으로서 처음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에 들어가 활동했다. 회의를 하다보면 나는 아주 합리적인 의견을 제시했다고 생각하는데, 상대방은 그렇지 않고 반대하더라. 갈등 구조보다는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하는 쪽으로 논의구조를 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 '분단체제'에서 '통일체제'로의 전환을 이야기하는데, 통일체제란 무엇인가. 
정도상= 백낙청 선생은 분단체제를 괴물 같다고 표현했다. 이번 회담은 분단체제에서 통일체제로 가는 첫 번째 회담이라고 생각한다. 분단체제의 내용을 정산종사께서 <건국론>에 장벽10조로 설명해 줬다. '각자의 주의에 편착하고 중도의 의견을 받지 아니해서 서로 조화하는 정신이 없는 것이요'(1조)를 시작으로 70년 동안 분단체제를 이끌어 왔던 사상적 내면 기조를 장벽10조로 표현해 줬다. 더불어 정산종사는 건국 3기를 훈련기(각 계급 병력기), 정리기(국가 집중기), 완성기(생활 균평기)로 건국의 과정을 강조했다. 훈련기는 화해합력하는 시기로 통일운동 과정에서 마음공부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통일과정의 훈련기에 마음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내면화된 분단체제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수교, 정전체제에서 평화체제로 이행, 제한적 상호교류의 점진적 확대, 장벽10조 타파와 마음공부, 화해협력기구 설치 등이 훈련기다. 정리기는 남북연합으로, 민족의 실정에 맞는 형태의 과도기적 국가형태기, 두 개의 정부 하나의 국가, 지역군 폐지와 연방군 창설, 전면적 교류, 시민참여형 통일평의회 구성을 들 수 있다. 완성기는 통일국가로 시민참여 통일헌법 완성, 지역균형발전, 개인생활의 균평 완성, 동아시아 평화체제 구축이다. 

이승환= 통일체제로 전환은 남북한 위협 요소들을 줄여 나가는 것이 핵심이다. 통일의 방향이 문재인 정부 이후부터는 다시는 거스를 수 없는 진행방향으로 나가야 통일체제 전환이 가능하다.

정인성= 기본적으로 남북은 7.4남북공동선언, 남북기본합의서 등 좋은 합의를 이끌어 냈음에도 불구하고 남북당국은 이를 분단체제에 활용해 왔다. 반면 6.15 남북공동선언이나 10.4 남북정상선언은 이전 합의와 다르게 실제적인 통일체제를 지향했다고 볼 수 있다. 

정인성 문화사회부장·평양교구장 

 

원불교, 통일 교법적으로 
밝힌 유일한 종교
통일위원회 설치 등 논의

- 앞으로 교단이 준비해야 할 일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 평양에 빵공장 국수공장을 운영했고, 기저귀, 분유보내기 등 조선불교도연맹을 통해 다양한 지원활동을 펼쳐왔는데, 교류가 끊긴 후 북한의 상황이 많이 바뀐 것 같다. 
정인성= 한국의 모든 종교 중 남북통일에 관한 교법적인 준비가 잘 갖춰진 곳은 원불교가 유일하다. 외래종교는 민족문제에 깊숙이 개입할 수 없다. 원불교만이 구체적으로 분단과 통일에 대한 내용이 아주 잘 되어 있다. 소태산 대종사는 금강이 현세계하니 조선이 갱조선이다, 이 나라는 어변성룡한다고 전망해 주셨다. 정산종사는 건국론으로 통일을 설계했고, 대산종사는 용공·화공·구공 법문을, 좌산상사는 통일대도 법문을 내려주셨다.

남북교류가 활발해지는 이 시기에 교정원장 산하 통일위원회를 되도록 빨리 설치해 급변하는 남북교류에 대비했으면 좋겠다. 단편적인 논의와 교류보다는 교단의 남북교류 역량을 한 곳에 모으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통일위원회 설치는 교정원 내에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어 조만간 꾸려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교단 안에 남북 민간교류를 경험했던 실무진들이 아주 많은데 우리가 제대로 이들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다른 종교에서 부러워할 정도로 전문 인력들이 현직에 있다. 민간 남북교류 영역 최고 전문가들이 현재 노마드개성교당에 포진해 있다. 

정도상= 통일위원회가 설치된다면 남북교류 과정에서의 '마음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고 본다. 시민 참여형 통일운동에 '마음공부'를 주도적으로 제안해 통일과정에서의 진통을 이 공부로 극복하도록 해야 한다. 더불어 평양교구의 실제적인 활성화다. 북한교화를 담당할 교구사무국에 인력과 재정을 지원해 줘야 그 기능을 할 수 있다. 통일위원회와 평양교구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개성교당 복원'이다. 

이승환= 변화된 남북관계에서 긴급하게 북한에 진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천천히 준비하되 철저히 원불교식의 교류를 해야 할 것이다. 북에 원불교 평양사무소를 두는 문제를 지속적으로 건의해 설치했으면 좋겠다. 빵공장, 국수공장, 기저귀, 분유 등 예전에 지원했던 것도 물론 필요하지만 북의 지역개발에 비중을 뒀으면 한다. 평양교구가 실제적 역할을 하는 선도적인 모습을 보고 싶다. 

[2018년 5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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