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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꽃 피다/ 건명원 최진석 원장
사람꽃 피다/ 건명원 최진석 원장
  • 이여원 기자
  • 승인 2018.05.10
  • 호수 188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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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립 면을 하나로 장악할 수 있는 능력'


[원불교신문=이여원 기자] 최근에 읽은 책이 〈소태산 평전〉이라며 찾아온 이를 반겨주는 그 앞에서, 순간 '반역자'가 연상됐다면, 이 또한 그에 대한 반역일까. 건명원 최진석 원장의 첫 만남은 그렇게 강한 주파수로 마음을 강타했다. 

사실 그는 서강대 철학과 교수로 익히 알려진 인물이다. 노장철학의 대가인 그가 20년 가까이 몸 담아온 교수직을 내려놓았다. '편안한 데 머물지 말고 경계에 서서 불안을 감당하는 자'가 되라는 그의 말이, 그의 행동으로 분명해졌다. 

세상은 '사고' 친 그를 여러 시선으로 노출시켰고, 그래서 더욱 유명세를 치르는 요즘이지만, 그는 오래전부터 생각해 온 일이라며 예의 담담했다. 세상 시선은 그다지 의미 둘 일이 아니라는 듯 무심하고 한편 지극히 '독립적인 주체', 그가 그랬다.
 

새롭고 모호한 곳을 향해  나아가는 도전정신, 
건명원이 추구하는 인재는 그런 '반역자'이다.
결국 독립적인 주체로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가장 근원적인 질문에 도달하게 한다. 
창의적인 인간, 가장 인간다운 인간으로의 
진정한 출발선에 서게 하는 것이다. 

건명원, 대립 면을 하나로 장악하다
건명원(建明苑), 그는 앞서 '안다'는 것의 이면을 이야기 했다.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해 안다고 하는 것은 다른 것을 부정하면서 그것을 그것으로만 인정하는 한 행태다"는 그. '세상은 그렇게 되어있지 않다'고 말한다. 

"사랑이 있으니 미움이 있고, 미움이 있으니 사랑이 존재한다. 사랑과 이별은 사실 하나의 사건이다. 하나의 사건을 편협한 마음으로 분리해서 자기 멋대로 보는 것이 이별이 제거된 상태의 사랑이고, 사랑이 제거된 상태의 이별이다." 

"대립된 두 면이 공존하는 대표적인 글자가 '명(明)'이다. 명에는 낮에만 있는 해(日)와 밤에 떠있는 달(月)이 함께 있다. 밤이 없는 해가 무슨 의미가 있으며, 낮이 없는 달의 존재가 온전하겠는가. 해를 해로 보고, 달을 달로 보는 것은 지(知)적 영역이다. 명(明)은 그런 구획되고 구분된 차원을 넘어 두 개의 대립 면을 하나로 장악할 수 있는 능력을 상징한다."

대립되는 해와 달을 하나의 사건으로 바라보며 수용하는 '개방적 인식능력'이 명(明)이다는 그. 세계를 전면적으로 보지 못함도, 하여 분열과 갈등과 대립이 심각한 것도, 인간의 지적 활동에서 비롯된다는 그의 사유는 한 치도 흔들리지 않는다.

2015년 문을 연 건명원은 창의적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하는 교육기관이다. 오정택 두양문화재단 이사장이 사재를 출연했고, 김성도(고려대 언어학과), 주경철(서울대 서양사학과), 배철현(서울대 종교학과), 김개천(국민대 공간디자인학과), 서동욱(서강대 철학과), 김대식(카이스트 물리학과), 정하웅(카이스트 물리학과)교수 등 분야별 석학들이 합류해 출범했다. 청년을 대상으로 하며 수업료가 없다. 설립 때 부터 원장을 맡아온 그는 건명원이 추구하는 '창의적 인재'는 다양한 학문의 섭렵이 아니라 '반역자'라고 분명한 방점을 찍는다. 

"과학, 예술, 철학, 운동 등 이질적 학문을 통섭하는 목적은 이를 모두 흡수하는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 아니다. 이질적인 지식들이 한 사람 안에 들어가서 내면에서 서로 충돌하며 갈등을 빚는 상황을 기대한다. 내면에 갈등이 생기면 그 갈등을 해결하려고 덤비고, 그 결과는 항상 창의적인 것이고 새로운 것이다."

"우리나라는 장기간 외국에서 배워온 지식을 외우고 습득하며 전달하면서 살았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지식이 아니라 그 지식이 어떻게 생산되는지, 지식이 생산될 때 인간은 얼마나 도전적인지를 배워야 한다. 도전을 하게 하는 힘은 어떤 활동성이나 충동이다. 갈등과 불안을 통해서 인간은 무엇인가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 건명원은 다양한 지적인 내용으로 매우 안정되어 있는 젊은이들을 불러다가 불안하게 만들고 흔들어 놓는 게 목적이다."

"건명원에서 수업 전에 '우리의 정신'을 낭독한다. 그 중 한 문장이 '아직은 이름 붙지 않은 모호한 곳을 향해 부단히 나아간다'는 것이다. 건명원의 '원' 또한 들판원(苑)이다. 울타리가 만들어지지 않은 황량한 들판, 그렇지만 어디나 길이 될 수 있는 들판으로 걸어가는 것이다. 건명원의 정신은 경지정리가 잘된 땅 한 귀퉁이를 서로 차지하려고 덤비는 것이 아니다. 아직 정비가 안된 모호한 곳을 향해 그곳을 새로운 영토로 구축하는 것이다." 

새롭고 모호한 곳을 향해 나아가는 도전정신, 건명원이 추구하는 인재는 그런 '반역자'이다. 여기 공감하는 교수들이 모여 인문 예술 과학 등 이질적인 지식들로 충동과 갈등을 빚게 한다. 결국 독립적인 주체로서, '나는 누구인가'와 맞닥뜨리는 가장 근원적인 질문에 도달하게 한다. 창의적인 인간, 가장 인간다운 인간으로의 진정한 출발선에 서게 하는 것이다. 

어떤 과정을 거쳤는가, 더 큰 아름다움
성과는 있는가. 건명원 원장인 그가 자주 듣는 질문이다. "한 명이 짧은 문장을 쓰면 다음 학생이 받아쓰는데 이게 한 편의 시가 된다.", "학생들의 눈빛이 달라지고 사용하는 단어와 문장이 달라진다.", "1년만에 라틴어를 배워 시를 쓰는 학생도 있고, 한시를 길게 지어 낸 사람도 있다." 성과를 묻는 질문에 그의 대답은 이렇듯 차원을 달리한다. 

"이들이 무엇을 하느냐보다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는 게 큰 소득이다"는 그는 "세상을 보는 높은 시선은 한번 경험해 보면 어디 가서 무슨 일을 하든 그 시선의 높이까지 끌어올리게 된다"고 말한다. "새로운 지식과 제도, 물건이 만들어졌을 땐, 이에 대해 문제를 깊이 인식하고 느낀 사람들이, 인문적 철학적 전략적 높이로 사유하고 도전하며 거칠게 거쳐야 하는 과정들의 연속이다"고 말을 잇는다. 

"인재를 길러낸 지 3년 됐는데, 많은 사람들이 결과가 있느냐를 묻는다. 무엇을 했느냐만 묻고 어떻게 했느냐를 묻지 않으면 기존의 시스템을 얼마나 지켰느냐는 질문 밖에 안 된다. 한 인간에게 진짜 존재하는 것은 그 과정이지, 결과가 아니다. 결과는 그 과정의 부산물일 뿐이다"는 그는 "결과가 과정을 정당화해주는 삶은 천박하다"고 냉철하게 질타한다. 
그리고 "어떤 결과를 이뤘느냐 보다 그 결과에 도달하기 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느냐에 삶의 더 큰 아름다움이 있다"는 말로 사유의 깊이를 더한다. 

소태산이 갖는 절실함의 힘 
"한 인간이 갖는 절실함, 진실함의 힘이 있다. 소태산이 갖는 절실함의 힘이 원불교를 만들었다. 대중의 힘을 믿지 않는다는 게 아니다. 역사에서 보면 나는 한 사람의 힘을 믿는다"는 그. 시대의 문제를 인식했다면 그것을 해결하고자 뛰어드는 게 먼저임을, 사람은 그렇게 절실함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할 때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그는 소태산을 통해 한번 더 확신한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명확히 한다. "소태산을 따르고자 하는 이들이, 소태산만큼 절실하지 않고서는 생명력이 오래 유지되지 않는다. 소태산의 정신을 실천해내는 사람이 종교인이다. 이는 외부적 조건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소태산 만큼 철저한 개개인의 실천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깨달음이고 각성이라 생각한다." 

[2018년 5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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