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이도근 교무]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는 탁구를 치기 위해 갔던 곳이 교당이었고, 진로를 선택해야 했던 나의 눈에 비춰진 교무의 모습은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모습에 부합돼 출가를 결심했다. 

하지만 내가 지금 만나고 있는 청소년들은 당시 내 모습과는 달리 탁구보다 수학을, 교당보다는 학원을 가야 하는 현실이다. 

나는 청소년들이 좋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내 모습을 다시금 바라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요즘 청소년들의 생활 및 학업 환경이 과거 내가 걸었던 길과는 다를지 몰라도 그들이 행복해하고, 기뻐하는 모든 것, 그리고 그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속에서 고민하고 있는 것 역시 한 번쯤은 나도 경험했던 것들이다. 나뿐만 아니라 대종사의 법문을 전하고 '이 세상을 맑고 밝고 훈훈하게 만들겠다'고 서원을 세운 우리 교무들 역시 겪어봤던 모습일 것이다.

그렇기에 학업으로 지쳐 있고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청소년들을 위해서 우리 교무들이 그들을 만나기 위해 불철주야 뛰어다니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청소년들은 나의 머리를 뜨겁게 하며 고민하게 만드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러한 정성을 청소년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가 노력한 만큼 아이들이 따라주지 않으면 속상하다. 속상하다 못해 미워질 때도 있다. 

순천교당에서 수완교당으로 인사이동을 하고 학생법회를 열심히 준비해서 아이들을 맞이할 시간이 됐는데 아무도 오지 않았을 때 눈물이 나기도 했다. '교무님이 바뀌어서 그런가', '내가 능력이 없는 건가' 스스로 자책 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주임교무와 주위 교무들이 응원과 격려를 해주었다. 그러면 나는 "그래! 행복하자고 이 길을 걷는데 내가 스스로 불행해한다면 타인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겠는가" 하고 다시 용기를 냈다. 

그리고 마음을 챙겨 무엇이 문제였고 잘못되었는지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방법들을 수정했다. 그러다보니 "요즘 애들은 이렇네. 예전에는 안그랬었는데" 하며 몇 년도 안됐는데 벌써 변화된 청소년들의 유행과 경향에 놀란다.

순천교당에서 순천공업고등학교 동아리 수업을 2년간 진행하고, 어린이·학생·청년법회를 진행했던 방법을 그대로 가져와 진행하다 보니 맞는 부분도 있고 틀린 부분도 많았다. 또 청소년들은 시대에 맞는 교화방법뿐만 아니라 지역별 특성에 따른 교화 방법도 달라지고, 연령별 교화 방법을 제대로 파악해 진행해야 하는 것을 뒤늦게 발견하게 됐다.

과거에 잘 됐던 교화방법이라고 해서 꼭 정답은 아니었구나! 상황에 따라 교화계획도 세우고 계속 수정보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이후 뜻과 목표를 세워 하나씩 진행해  보니 호남대학교 원불교 동아리 창립법회를 시작으로 현재 광주전남교구에서 추진하고 있는 대학생 해외봉사활동 사업까지 청소년교화에 바람을 일으킬 기회를 얻게 됐다.

쉽지 않고 힘들기까지 한 청소년! 그러나 그들을 만나면 다 잊혀진다. 청소년교화는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했고, 그들이 좋은 방향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전무출신을 하고자 했던 이유에 대한 답을 찾게 된다.

/수완교당

[2018년 5월 11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