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 먼저 원불교 입교 권했던 처갓집
출가, 고민하는 자체가 인연 있어 맺어진 것

[원불교신문=김기원 교무] 우리 집안 남자들은 처가의 압력으로 강제로 입교된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것은 둘째 사위가 결혼하기 전, 결혼허락 받으려고 온 첫 만남에서 입교원서를 적으라고 장모 될 사람인 아내의 노골적인 요구를 보면서다. 둘째 예비 사위는 아무 말도 못하고 입교원서에 묵묵히 기록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옛날 내가 처갓집을 찾아갔을 당시를 떠올려 본다.

장모는 대뜸 "류씨 집안에 장가 오려면 교당에 다녀야 한다"고 했다. 나는 지금까지 원불교라는 말도, 교당이라는 단어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장가가는데 이 정도는 걸림돌도 안된다는 생각에 입교원서를 기록했다. 그때의 내 마음은 '기록하는 입교원서가 뭔지는 모르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을 것이니 말없이 적어줘도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던 내가 결혼 후에는 원불교에 대한 호기심이 절반 정도 생긴 듯하다. 그러다가 "교당에 잘 다니느냐"는 질문이 들어올 때마다 답변하기가 궁색하고 불편해 그냥 다니다보니 언제부턴가 교당 벽보에 교화단 중앙으로 올라가 있었다.

큰딸이 결혼할 때즈음이다. 애들 엄마는 '원불교에 다니는 사윗감으로 데려오라'고 했다. 원불교에 다니는 사윗감을 골라오라는 요구였다. 이에 따라서 큰사위는 원불교에 입교하고 당당하게 첫 인사를 왔다. 그래서 나는 배웠다. 가족교화도 결혼시키기 전 힘 있을 때 에이스카드로 사용해야 한다고 말이다. 이렇게 나는 원불교라는 이름도 들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입교했고, 두 딸을 결혼시키면서 새로 이뤄진 두 가족의 사돈과 사부인까지 함께 일원가족이 됐다.

말이 나왔으니 나의 삶에 큰 영향력이 있었던 그 37년 전 총각 때 미국에서 만난 할머니 가족 이야기를 더 전하고 싶다. 할머니의 남편은 거동이 매우 불편한 장애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장애인이라는 것을 너무나 자랑스러워했다. 전쟁에 나가서 국가를 위해 바친 몸이었기에 구석구석의 상처를 자랑했다. 그리고 그 전쟁을 촬영한 매우 작은 화면에 짧은 길이의 필름이지만 영사기를 침대 옆에 고정설치해 가끔씩 틀어보면서 행복해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또 그는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결코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았다. 주변의 도움도 거부하고 장애인이지만 스스로 행함을 보면서 내심 감동을 받았다.

그의 책상 위에는 오래된 서부영화에서나 보았을 법한 장총이 걸려 있었다. 성인식 때에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선물이랬다. 그것은 성인으로서 지켜야 할 권리와 의무의 징표라 했다. 그 총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를 끝까지 지켜야 하며, 만일 그렇지 못했을 경우에는 그 총으로 자신의 목숨을 내놓겠다는 책임있는 각오와 사명감의 징표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십대에 받았던 이 총을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음을 매우 깊이 감사해 했다. 그리고 자신이 무덤에 갈 때까지도 그 총은 그 자리에 그 정신과 함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징표와 신념을 담은 총은 그의 아들들이 성인식을 올릴 때에 권리와 의무를 담아 독립시켰다.

그는 말했다. "미국은 절대 정복당하지 않는다. 이렇게 미국인 하나하나가 스스로를 지키므로 미국인 모두가 죽지 않는 한 미국은 지켜진다"고. 여기에 감명받았던 나는 이를 본받아서 아이들을 키울 때에 보호만으로 키우기보다는 권리와 의무를 충실하게 가르치려고 해왔다.

그 할아버지가 평생 징표로 가지고 다녔던 의무와 권리처럼 나도 기간제전무출신을 서원하면서 전무출신에 대한 두 가지 의문이 있었다. 하나는 내가 갑자기 왜 기간제전무출신으로  출가하게 됐을까 하는 궁금증과 두 번째는 나에게 부족한 성불제중의 서원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였다. 그 사유를 어느 날 식사하러 가며 스승님에게 물었더니 "오게 돼 있었기 때문에 왔다"는 답이 돌아왔다. 두 번째 의문은 사감님이 "영산에서 살다보면 서원은 만들어진다"고 했다. 정말로 영산에서 일과를 지키고 훈련을 받다보니 서원이 확실해져감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누구든지 서원이 부족하더라도 영산에 살다보면 단단한 서원이 만들어지고, 기간제전무출신을 지원할 특별한 사유를 발견하지 못했더라도 지금 고민하는 자체가 인연이 있기 때문이니 과감히 지원하라고 말하고 싶다.

/만덕산훈련원

[2018년 5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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