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이지은 교무] 순사 황가봉이 총부 청하원에 신설된 북일 주재소에 파견된 이듬해, 희대의 사이비 종교인 백백교 사건이 발생하자, 일본 경찰은 조선의 신흥종교 단체를 모두 해산시킬 방침을 정한다. 그리하여 황 순사에게, 만일 불법연구회를 조사하여 해산시킬 빌미를 찾아내면 불법연구회의 자산을 경매하여 처분하고, 그 이득이 돌아가도록 할 것을 약속했다. 

이에 황 순사는 소태산 대종사를 찾아가 다른 회원과 같이 공부하고 생활하겠다고 하여 학복까지 받아 입고 불법연구회를 더욱 철저히 감시했다. (〈소태산 대종사 생애 60가지 이야기〉)

대종사는 하선 결제식에 참석한 그에게 이천(二天)이라는 법명을 줬다. 다른 회원들은 그를 악질 순사라며 미워했으나 대종사는 "그 사람을 감화시켜 제도를 받게 하여 안 될 것이 무엇이리요"라며 그를 한결같이 살피고 사랑하기를 다른 제자와 다름없이 대했다. 감시를 목적으로 온 것이 뻔한 데도 짐짓 공부하는 척 하는 것을 보았을 때, 다른 제자들이 황 순사를 고운 눈으로 바라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종사는 그가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언제나 한결같이 챙기고 사랑했다. 황이천은 마침내 감복하여 대종사의 제자가 되어 이후 교단 일에 많은 도움을 준 선진으로 남게 된다.

부처님의 대자대비는 태양보다도 다습고 밝은 힘이 있어 그 위력과 광명은 무엇으로도 가히 비유할 수 없다는 법문 (〈대종경〉 불지품2장)을 입증이라도 하듯, 다른 제자들이 미워하고 뒤에서 욕할 때 대종사는 변함없는 사랑을 보여줬고, 그 결과 황이천의 마음을 움직이는 변화를 이루었다. 깨달은 성자는 선인과 악인이라는 나타난 모습 이면에, 우리 모두의 마음에 갊아 있는 불성을 참으로 알기 때문에 이와 같은 불공을 할 수 있는 것이리라. 

누구에게 '불공한다'라는 말은 원불교 공부인이라면 흔히 쓰는 말이다. 불공이란, 말 그대로 부처님에게 공을 들인다는 말이다. 그런데 간혹 이 말이 원래의 뜻에서 벗어나, 목적성을 가진 처세와 미묘한 한 끗 차이로 쓰이는 경우를 보기도 한다.

불공이 진정한 불공이 되는 것은, 상대방 부처를 진심으로 믿어주고, 위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일 때이다. 성인의 사랑은 그것이 온전히 상대방을 위한 사랑이기에 감화를 가져온다. 

우리는 머리로는 배워 알지 몰라도, 정작 실제 인간관계에서는, 상대방의 현재 나타난 모습만 보고 쉽게 판단을 내리는 우(愚)를 범한다. 변할 수 있는 그 사람의 가능성을 보지 못하고, 누가 좀 부족한 모습을 보이면, 꼴 봐주기 참 힘들어 한다. 그러다 그가 만일 좋은 쪽으로 달라지기라도 하면, '변했다'라고 한다. 그러나 실은 그 사람은 '변한' 것이 아니라, 원래 안에 다 들어 있던 것이 발현된 것 뿐이다. 인간에 대한 이해는, 이것을 얼마만큼 넓고 깊게 볼 수 있느냐 하는 데에 달려있다. 

모두가 내게 등 돌릴 때, 나를 믿어주는 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위대한 생명력이 되어 마른 땅에 다시 싹을 틔운다. 내가 그 한 사람을 기다리는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그 한 사람이 되어 보자.

/미주총부법인

[2018년 5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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