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 선원생활은 나만을 위한 오롯한 삶 살게 해
막연하게 알았던 교리, 생활 접목하며 배움 깊어져

[원불교신문=김기원 교무] 영산성지에서 수학하던 기간제전무출신선원 기간은 나만의 오롯한 삶을 살았던 시절이라 기억된다. 태어나서 나만을 위한 삶을 살아볼 기회는 많지 않았다.

유년시절은 모르지만 학생이 되면서 공부, 숙제 등 크고 작은 무언가에 정신없이 끌려 살았다. 성인이 되면서 나보다는 한 가정의 구성원으로서 또 직장인으로서 살았다. 그런 나에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살았던 때는 영산에서의 선원생활이었다. 영산의 선원생활이라고 해서 고삐가 풀린 것은 아니지만 영산의 기운은 나를 무엇에도 끌리지 않게 호렴해 준 것 같다. 그 시간만큼은 나에게 편안한 마음을 가지게 하는 성지의 위력이라고 생각한다. 영산은 나만을 위한 오롯한 삶을 만드는 마음의 고향 자체였다.

영산성지에는 영산원이 있다. 원불교 최초의 교당으로 옥녀봉 아래 구간도실을 옮겨지은 건물이다. 영산원은 내 몸과 마음까지 합체시켜 줄 정도로 깊은 기운이 느껴질 무언가 모를 기운이 있다.

마루에 앉으면 양 발의 발바닥 전체가 땅바닥에 자연스레 닿는다. 다리의 종아리가 마루 벽면에 넓게 밀착되고, 허벅지가 마루의 바닥에 틈 없이 고루 분산되어 앉아진다. 마루의 높이와 구조가 내 몸에 딱맞게 일치한다. 거기서 보는 정관평은 내 마음을 안정시키고 편안하게 한다. 그렇게 앉아 있노라면 시간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마법같은 장소였다.

정진원(남자 숙소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함)의 2층 중앙에는 옥녀봉을 바라보는 다실이 있다. 그곳에서 대형 유리창을 통해 내려다보는 아침의 전경은 신비롭기만 했다. 영산은 아침마다 안개가 자욱하게 끼는데 옥녀봉도 아침만 되면 아름답게 휘감고 있다. 동양화에 그려지는 신선도 같았다. 뿐만 아니라 연꽃 방죽도 그랬다. 이른 아침 안개 속의 연꽃 방죽은 주변과 조화를 이뤄 무릉도원이 이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갖곤 했다.

영산의 선원생활은 1년 반이 안 되는 기간으로 생각하기에 따라서 길다고도 짧다고도 할 수 있는 기간이다. 학부생 학생들이 수업하는 기간에는 학생들 사이에 책상을 놓고 공부하고, 교육과정이 다르거나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은 기간제선원생만 따로 수업이 진행된다. 그러니까 학생들은 1년에 1학기와 2학기의 두 학기가 있지만 기간제선원생은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 한 학기씩을 더하므로 1년에   4학기를 이수하는 것이다.

그리고 방학기간에는 대학법당에서 일요법회를 본다. 이때에는 기간제선원생들이 진행하므로 설교, 주례, 사회를 직접 맡는다. 실제 교화현장이라 여기고 훈련이라 생각해 임했지만, 법회에 참석하는 원로교무와 교도들이 보기에는 꽤 어설프게 진행하는 것 같아 죄송했다. 하지만 마음만은 준비에 더욱 정성을 모으고 최선을 다하려 했다. 

과거 교도의 위치에서 살아오면서 배우고 익힌 공부를 바탕으로, 재가에서 전무출신의 전문과정으로 심도있는 공부와 훈련으로 이어지는 기간제전무출신 선원생활은 많은 깨달음을 얻게 했다. 젊은 학부생과 같이 외우고, 시험문제의 답안지 작성은 서툴렀지만 생활과 접목하고 막연하게 알던 것을 정확하게 배움을 갖는 재미가 있었다.

같은 공부이지만 옛날 학교 다닐 때의 공부는 피동적이었다면, 그때의 선원 공부는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배우려는 자세로 마음에 다가오는 공부를 했다. 원광디지털대학교 원불교학과 수업도 받았지만 그것과는 또 달랐다. 

하지만 졸업 후 고시준비 기간은 많이 달랐다. 문제은행의 천여 개의 주관식 문제풀이 공부는 고3 수험생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입학할 때는 졸업하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겪고 보니 고시 전 4개월은 오로지 체력유지를 위해 먹는 일, 맑은 머리를 위해 자는 일, 공부하는 일로 일과가 단순해졌다. 하루 일과가 세 가지만으로도 이뤄질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주말 쉬는 날에도 월요일 모의고사 준비로 공부만 하는 날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때 나는 스스로 총명한 머리를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실망도 하면서 60대의 암기력이라며 스스로를 위안하고 작아지는 나를 달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와 생각하니 참으로 유익한 공부로 나를 많이 키워준 고마운 시간들이었다.

/만덕산훈련원

[2018년 5월 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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