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혜초 스님의 〈왕오천축국전〉, 이순신장군의 〈난중일기〉, 사도세자 부인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은 일기류의 백미다. 영혼의 웅혼함 또는 진솔함을 우리에게 전해줌으로써 인류 문화유산의 반열에 섰다. 또한 어거스틴의 〈고백록〉, 루소와 톨스토이의 〈참회록〉은 육체 내에서 불타는 태양인 양심의 밝음과 뜨거움을 본다. 이 모두는 실존적 인간이 절대의 시공 속에서 체험한 '주관적 진실'을 통해 존재의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이는 이들만의 특권은 아니다. 우리도 기행, 회상, 수필의 어떤 형태로든 한 존재의 미증유의 사건을 남길 수 있다. 일기는 시간의 기록이다. 베르그송은 현재 속에 과거와 미래가 들어가 있다고 한다. 그는 직관에 의해 포착되는 진정한 시간 경험은 주관적·심리적 현실이며, 이 순수지속 세계가 진정한 자아·자유로운 영역이자 생명 그 자체라고 한다. 그렇다면 정기·상시일기야말로 진리와 진실에 다가서기 위한 인간의 위대한 여정이다.

이 양자의 일기는 심신의 자유, 자아의 완성, 존재의 충일감, 무한한 열락을 향한 심신의 공동작업이다. 정기일기는 복혜의 근원은 무엇인가를 자각하게 하며, 마침내 대각으로 향한다. 이 길은 대자(對自)적·과학적이며, 따라서 성품의 분석지(分析知)가 작동한다. 특히 시비이해의 판단을 기술하는 심신작용처리건과 대소유무의 이치를 기록하는 감각감상은 사리연구의 핵심에 해당한다. 즉 소태산 대종사가 설하듯이 일과 이치를 밝힌 경전(〈대종경〉 수행품 23장)을 의미한다. 이를 삶에서 밝혀내는 것은 경전을 엮어내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 

시비이해와 대소유무는 일원상진리에 의거한 원불교 고유의 세계관이다. 영통·도통·법통, 또는 법강항마위·출가위·대각여래위의 성위에 오르는 기본과목이다. 대소유무의 해석에 걸림이 없으며, 이에 기반해 시비이해를 건설하고, 나아가 중생의 고통을 해소하는 만능·만덕의 대자비를 베푸는 힘을 갖추는 길이다. 구체적으로 인과보응을 통한 고락의 원인, 성주괴공과 생로병사의 이치, 명과 암에 의거한 진실과 허위 등 인간과 자연의 운행원리를 깨달아 자타가 함께 진리의 삶을 사는 길이다. 

상시일기는 악은 멀리하고, 선을 가까이 하며, 대중을 이익 주는 삶을 의미하는 대승불교의 삼취정계와 근본적으로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는 즉자(卽自)적·통합적이며, 이에 따라 성품의 통찰지(通察知)가 기능한다. 특히 유무념 처리는 베르그송이 말하는 직관적인 순수지속의 자아가 창조적인 선택을 행하는 자유의지의 실천이다. 정산종사가 설하듯이 착심의 유무에 따라 유념·무념이 발생한다. 그 단계에 대한 자기 관조가 자유롭게 되면, 이번에는 역전되어 은혜에 대한 관념과 상(相)의 유무에 따른 유념·무념으로 나뉜다. 최종적으로는 무념에 의한 무루의 공덕(〈정산종사법어〉 원리편27)을 갖추는 길에 들어선다.    

인위에서 자연법이(自然法爾, 자연처럼 자연스러움)의 본성을 찾아가기 때문에 이러한 역전이 일어난다. 마음의 유한한 틀을 벗어나 무한한 진리세계와 하나 되는 도정으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우주적 인격을 지향하는 것이다. 〈정전〉의 모든 가르침은 유무념의 자료다. 성불제중의 설계도인 〈정전〉의 자기화는 이 유무념에 의해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원광대학교 

[2018년 5월 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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