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산 김명원 정사 열반
쉼 없는 수행정진·실천

[원불교신문=이여원 기자] 철주의 중심이요 석벽의 외면처럼 묵묵히 교화현장을 지키면서 일원회상의 진리를 깊이 깨닫고 실천해 온 신산 김명원(信山 金明元) 정사가 18일 열반에 들었다. 

신산 정사는 원기61년 원광원예원 총무를 시작으로 영산선원(현 영산선학대학교)·재무부(현 재정산업부)·광주보화당·원광상사 의식사업부(현 원광대장례식장)·구봉교당(현 관저교당)을 거쳐 원기97년 의정부교당 주임교무를 마지막으로 원기99년 정년퇴직했다. 신산 정사는 올곧고 진솔하며 매사에 솔선수범하고, 지극한 정성심으로 든든하게 공중사를 했고, 각 임지마다 교법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실천적공하는 공부표준을 놓지 않은 교화자였다. 

열반소식을 접한 경산종법사는 "신산 정사는 천도장례식장의 설립 초기부터 14년간 봉직하면서 그 몫을 다하며 사업기관의 기반을 다졌다"며 "일선교화에 대한 꿈을 이루고자 하는 서원이 지극해 정토의 권장과 합력으로 현 관저교당을 창립해 대종사의 일원교법을 전하는 전법사도로서 그 사명을 다했다"고 추모했다. 경산종법사는 "특히 굳은 심지와 속 깊은 심력으로 교도들의 아픈 상처를 치유하고 이 공부 이 사업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힘 있는 교화자였다"며 "그 서원 그 신성으로 다시 와서 대종사의 일원대도 교법을 받들어 교단 2세기 결복기 대운을 열어가는 대성자가 되기를 심축한다"며 축원법구를 내렸다.

전무출신 고사에서 장덕원 교무는 "정사님은 결코 공부를 쉬지 않았다"며 "오히려 선과 요가를 통해 몸의 고통을 잊었고, 도반들과 더불어 〈수심결〉로 교리강의를 행하면서 교리연마에도 심혈을 기울였다"고 추억했다. 

장 교무는 "오래도록 교화에 대한 간절한 원력을 간직해, 마침내 평생을 모아온 정재를 교단에 희사해 구봉교당을 창립하고 교화개척을 시작했다"며 "퇴임 후 투병시간조차도 적공의 시간으로 만들어 갔던 정사님은 '성리를 알고 그것을 불공으로 나툴 수 있어야 진정한 수도인의 삶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살아왔다'며 '동쪽으로 가야지. 서쪽으로 가야지. 남쪽으로 가야지 북쪽으로 가야지. 내 맘대로 가야지'하며 최후 법문을 남기고 떠났다"고 전하며 열반을 슬퍼했다.  

신산 정사의 세수는 73세, 법랍은 52년 3개월, 공부성적 정식법강항마위, 사업성적 정특등 3호, 원성적 준특등으로 교당연합장으로 장례의식이 진행됐다. 종재식은 7월5일 오전11시 중앙총부 반백년기념관에서 거행될 예정이다. 

[2018년 5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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