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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당을찾아서/ 대전충남교구 논산교당
교당을찾아서/ 대전충남교구 논산교당
  • 정성헌 기자
  • 승인 2018.05.23
  • 호수 189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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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논산교당은 원기75년 재가출가 교도들의 2천일 기도정성으로 당시 꽤 웅장한 2층 건물로 신축됐다.
현 논산교당은 원기75년 재가출가 교도들의 2천일 기도정성으로 당시 꽤 웅장한 2층 건물로 신축됐다.

 

논산교당은 매주 화요일 저녁 정례법회를 열고 있다.
논산교당은 매주 화요일 저녁 정례법회를 열고 있다.

긴 호흡으로 형제자매교당 공동교화 열매 맺어야


기호학파의 근원지로 추로지향(鄒魯之鄕)이라고도 일컬어지는 논산. 이곳은 원기60년 10월 교단의 교화3대운동 정책에 따라 교화사업회 후원과 당시 제원교당 김성학 교도의 특별희사금으로 논산읍 화지3동 157번지에 건평 82㎡의 함석집을 임대해 초대 이경심 교무가 부임하면서 일원의 법음이 시작됐다. 
이후 원기75년 4대 오선관 교무가 부임해 재가교도와 2천일 기도정성으로 대지 890㎡, 연건평 460㎡, 그 당시에는 꽤 웅장했을 2층 건물(논산시 반월1동 33-93번지)이 오늘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논산 13만명의 신도
중앙총부가 위치한 익산에서 차로 40분 거리. 교당에 도착하니 입구에는 부처님 오신날을 기념하는 현수막과 빨간, 노랑, 파랑, 초록의 다양한 색등이 질서정연하게 걸려있다. 색등이 얼마나 예쁜지 아스팔트와 회색 건물들 사이에서 살아있다는 정감마저 들었다.

교당에 들어서자 지난해 부임한 고세천 교무가 반겼다. 지나온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실내는 정갈하고 깨끗했다. 법회 시작까지 2시간여 남은 시간. 고 교무와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논산교당은 전임 교무 때부터 매주 화요일 저녁마다 정례법회를 봤다. 현재 법회에 참여하는 교도는 10여 명 남짓이지만, 그의 포부는 컸다. 당장의 법회출석 숫자에 연연하지 않고 논산시민 13만명이 신도라 여기고 10년간 장기적 계획에 따라 긴 호흡을 해 나갈 예정이라고.

형제자매교당, 일심합력교화
논산시는 인구가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축소도시로 향후 30년 이내에 사라질 수 있다는 국토연구원 발표에 따라 그는 장기적인 현장교화정책과 형제자매교당의 일심합력교화 정책, 지역민들에게 실질적이고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교당 기능의 확장, 입교한 교도뿐만 아니라 원불교에 관심을 가진 신도를 위한 정책 등을 제시했다. 그동안 전임지에서 공동교화,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종교인협의회 등 활동으로 큰 살림을 일궈왔던 경륜과 안목이 묻어나왔다.

현재 논산교당은 형제자매교당 강경지구2(강경, 논산, 벌곡, 연무, 연산)에 소속돼 있다. 대전충남교구가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형제자매교당 정책은 수도권을 제외하고 대부분 지역에서 극심히 앓고 있는 저출산 고령화의 심각한 사회적 부작용에 따른 지역교화의 한계점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지구별 단위 교당간 긴밀한 협력을 통한 공동교화실천이 핵심이다. 논산교당도 지난해 부여교당과 강경교당 법회와 의식을 돕다가 올해는 연산교당과 강경교당 법회, 천도재, 열반재 의식을 함께 진행하며 연무교당, 벌곡교당 행사에 협찬하는 등 형제자매교당으로써 협력의 폭을 점차 넓혀가고 있다.

그는 형제자매교당을 통해 앞으로 출가교화단의 공동교화까지 내다봤다. 현재 개별교당 인사발령체제에서 지구교당 공동발령으로 하나의 교화단이 지구별 전체 교화를 팀워크로 맡는다는 전략이다. 마치 학교에서  한 교사가 모든 과목을 가르치지 않고 교과목별 선생님이 돌아가면서 수업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특히 정부정책이 바뀜에 따라 교당에서 부설기관을 병행운영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상황인 만큼 이웃교당에서 손을 넣어주고 함께 운영하는 시스템의 지역별 공동교화가 아니고서는 각 교당의 경제자립, 지역교화의 두 마리 토끼를 잡기는 요원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교화단 법회
오늘은 교화단 법회. 2층 대각전에서 둥그렇게 방석을 깔고 교도들을 기다리는 고 교무의 모습에는 작은 설렘이 엿보인다. 제일 먼저 도착한 일행 가운데 김도성 교도부회장이 사회를 맡기로 한다. 절부를 깔고, 한 권 한 권 마음공부 책자를 정성스레 놓았다. 모두가 함께 독경할 때 쓸 목탁도 방석마다 다 놓아갈즈음 직장을 마치고 대각전에 들어서는 교도들이 어느새 방석을 가득 메운다.

일주일만에 한자리에 마주해서 그런지 교도들은 반가움에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반가운 인사가 오가며 반듯하게 정좌를 해가는 모습에서 오랜 세월 함께한 깊은 법동지의 윤기가 묻어나온다. 절부합절이 끝나고 일원상서원문, 반야심경을 하나된 마음으로 목탁을 두드리며 일심을 모아간다. 설명기도, 법어봉독, 교화단 책자 합독이 끝나니 '일원상 진리'에 대한 고 교무의 열강이 이어진다. 교도들도 교무 설명을 듣고 일원상 진리에 대한 각자 생각과 체험을 나눈다.

지난해 논산교당에 부임한 고세천 교무는 '논산시 13만 시민이 신도'라는 당찬 포부를 품으며 강경, 벌곡, 연무, 연산 등 형제자매교당과 함께 공동교화를 펼치고 있다.
지난해 논산교당에 부임한 고세천 교무는 '논산시 13만 시민이 신도'라는 당찬 포부를 품으며 강경, 벌곡, 연무, 연산 등 형제자매교당과 함께 공동교화를 펼치고 있다.

인사이동, 교화누수현상
"교무님이 새로 바뀌면 얼마 다니지 않은 교도들은 대체로 안온다. 처음에는 교구장님까지 찾아뵈면서 전임, 후임이 1년 정도는 함께 인수인계하는 기간을 가져 교도들이 낯을 익히고 정을 붙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제안한 적도 있다."

교화단 법회의 모든 식순이 마무리되어 갈 즈음 윤여직 교도회장의 자유발언이었다. 제2대 김삼인 교무와 박성연 부교무 재임 당시 원기72년 논산교당 청년 창립법회부터 지금까지 올곧게 교당 터줏대감으로 자리를 지켜온 그가 걱정스런 마음으로 꺼낸 발언이다.

"그동안 여러 교무들이 인사발령을 받거나 이동할 때, 인수인계하는 자리에 꼭 배석했다. 빈 몸으로 왔다가 빈 몸으로 가는 모습은 보기 좋았지만, 자신이 맺은 인연들까지 놓고 가버리는 모습은 내심 안타까웠다."

초창기 일반 및 청년 50여명의 교도들로 가득했던 교당이 언제부턴가 30명으로, 20명으로 줄다가 이제는 10여 명 안팎 다니는 게 고작인 안타까운 이유를 정 붙일 수 없는 인사이동 시스템에서 찾은 것이다. 당시에 답답했던 마음에 교구까지 찾았지만 출가 중심행정은 변화가 없었다.

안정화 단장도 옆에서 거들었다. "저희가 주인이라고 하지만, 전임 교무의 인연으로 얼마 다니지 못한 교도들에게 있어서는 새 교무님은 전혀 모르는 분인 셈이다. 신입교도들에게 잘 신경 써달라고만 하고 떠나버리는 모습이 야속할 때가 많다. 교화, 교화 하지만 재가들이 볼 때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잠자는 교도가 자연 늘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윤 교도회장과 청년회 시절부터 논산교당을 다녔던 김현주 교도도 당시를 회상했다. "당시 박성연 교무님이 왔을 때 참 재미있게 살았다. 그런데 교무님이 바뀔수록 우리들도 적응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이제는 교당 짓는 것보다 기존 교도들과 잠자는 교도를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출가중심보다 재가중심으로
앞으로는 교역자가 한 곳에 적어도 10년은 살아야 한다는 장기적인 현장교화정책, 형제자매교당 및 일심합력교화, 나아가 출가교화단 공동교화 등이 한 교역자에 의존하는 현장교화, 재가교도 입장보다 출가자중심의 인사이동의 대안이 될 수밖에 없는지 확인하는 자리였다.
일원상 진리 회화시간. 아흔에 가까운 정순옥 교도의 말이 가슴에 남는다. "난 아무것도 몰라. 그냥 나는 교당에 교도가 느는 게 제일 소원이야. 모두 건강만 잘 지켜주면 좋지."

[2018년 5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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