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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한 줌의 가치 알아가는 여정, 한살림
흙 한 줌의 가치 알아가는 여정, 한살림
  • 박혜령
  • 승인 2018.06.05
  • 호수 189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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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한줌이 만들어지는데는 200년이 필요한데, 해마다 유실되는 흙이 3㎜다. 3년마다 200년 어치의 흙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흙 한줌이 만들어지는데는 200년이 필요한데, 해마다 유실되는 흙이 3㎜다. 3년마다 200년 어치의 흙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한살림은 지속가능한 세상을 위해 삶을 성찰하고 바꾸는 다양한 교육과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한살림은 지속가능한 세상을 위해 삶을 성찰하고 바꾸는 다양한 교육과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기술이 발전하고 인간이 이룬 문명이 화려해질수록 생존은 오히려 위협받는 세상이 왔다. 밝고 화려한 외면에 우리가 인지할 수 없는 숨겨진 이면. 가장 대표적인 것이 먹거리일 것이다. 그런데 무엇이 생존의 기본인 먹거리를 위협하고 있으며, 그렇다면 안전한 먹거리를 지향하는 생협은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한살림에서 일하고 있다. 1986년 70여 세대가 참여한 작은 쌀가게에서 시작한 한살림은 현재 23개 지역 65만 조합원으로 늘어났다. 그 역사가 40년이 되며, 한살림은 우리나라 생협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 그렇게 '생산과 소비는 하나다'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한살림이라는 조직은 꾸준히 성장해 왔지만,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더 낮아지고 있다. 더구나 농민은 멸종위기종과 같은 존재가 됐고, 급격한 기후변화는 농업 현실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으며, 환경파괴는 갈수록 가속화되고 있다. 

밥상과 농업과 생명이 하나라는 생명 살리는 운동을 사회에 뿌리내리고 세상의 변화를 꿈꾼 것이 한살림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지속가능한 먹을거리 생산을 위한 건강한 생산 공동체는 우리 농촌에서 거의 사라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렇게 보면 '한살림이 도대체 무언가를 하기는 해온 것일까? 혹은 한살림이 앞으로 또 무언가를 할 수 있기는 한 것일까?'라는 깊은 회의에 빠진다. 20여 년 농민으로 살다가 농사지으며 배운 경험들을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한살림이라는 곳에 있지만, 조합원들과의 소통 마저도 하루하루 가슴 졸이며 짓는 농사만큼이나 가슴 먹먹하고 때론 답답한 일인 것 같다. 농사를 짓는 어려움에 비해 너무도 쉬운 소비습관은 우리가 지키고 싶은 많은 것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과 기꺼이 불편을 감수하는 결단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필요와 개발을 위해 너무도 쉽게 지도상에서 지워지는 농지를 보면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흙 한줌이 만들어지는데 필요한 시간이 얼마인지 아는가? 바로 200년이다. 해마다 유실되는 흙이 3㎜라고 하니, 3년마다 200년 어치의 흙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쌀을 짓는 논은 산소방출기능도 있지만 흙 유실을 방지하는 중요한 기능이 있다. 그 외에 지하수 함양기능이나 대기 정화 기능, 수질 정화 기능 등을 비롯해 300종이 넘는 다양한 수생식물의 서식처이기도 하다. 쌀 한 말을 생산하는데 논 23㎡정도가  필요하다. 밥 한 그릇에는 벼 3포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물방개도 있고, 거머리도 있고 우렁이, 미꾸라지 각종 미생물 등 다양한 생명이 함께 작용해 만들어진 생명의 기운이 깃들어 있다. 

한살림이 쌀로 시작과 끝을 이야기할 정도로 쌀을 중요하게 이야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쌀은 우리의 주식이기도 하거니와 논농사와 함께 해온 우리의 오랜 문화와 생활환경 자체가 우리의 생존의 방식이었던 것이다. 온전한 우리의 존재방식을 찾아가고 훼손된 가치를 회복하는 여정을 함께 시작해보면 어떨까.

한살림 30주년을 기념한 서동일 감독의 영화 '잘왔다 우리 같이 살자'의 한 장면.
한살림 30주년을 기념한 서동일 감독의 영화 '잘왔다 우리 같이 살자'의 한 장면.

상생의 길은 멀리 있지 않다
매일 여러 지역의 조합원들을 만나며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사실 이것은 어찌 생각하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농사를 지으며 경험한 이야기들을 소비자 조합원들과 나누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들도 나누는 일이다. 봄 가뭄이 심하면 모심기할 때 논물이 없어서 농민들이 어떻게 애태우며 물 전쟁을 하는지, 여름에 긴 장마철을 지나면 과수와 고추 작황이 얼마나 힘들어지는지, 특히 농약을 치지 않는 농사는 모든 변화가 반가우면서도 두려운 도전이고 모험이라는 사실을 그냥 있는 그대로 나누는 일이다. 자연의 변화 안에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철저하게 배우고 깨닫는 농사가 그래서 고귀한 일이라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는다. 

1980년대 중반, 한 해에 농약중독으로 1500명 이상이 사망하고, 무분별한 토지개발과 제초제, 화학비료 사용으로 땅과 물이 황폐해져 농촌은 급격히 피폐해졌다. 세계 1, 2차 대전 당시 화학전의 살상용 무기로 개발되어 상용화한 농약은 지금도 전 세계 농민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지배와 파괴의 상징인 농약이 우리의 삶 안으로 들어와 우리를 살리는 것처럼 포장되어 쓰이고 있다는 진실을 마주하게 하는 것이 지금 한살림이 나누고 있는 이야기다.

자연 안에 우리가 존재하기에 인간의 일방적인 지배의 방식으로는 상생이 불가능하다는 것, 그래서 상생은 생명의 생존 방식임을 생각하고 그 이야기들을 나누고 실천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며, 해야할 일이다. 느리지만, 지름길은 없었다. 200년의 시간이 흘러야 흙 한줌이 만들어지는 만큼 아주 오랜 시간이 쌓여서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깊이 자각하는 것만이 지금의 지구환경의 파괴와 생존의 위협 요소를 줄이는 방법일 것이다.

답은 공동체에 있다
한살림은 끊임없이 공동체성을 구현하고자 노력한다. 공동체의 힘이 없고서야 단 한 술의 밥도 있을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와 너의 관계맺음이며, 우리의 존재의 방식이며, 나와 세상이 만나는 이치이기도 하다. 결국 공동체는 관계이며, 어떻게 관계 맺음할 것인가를 밥상 안에서 고민하는 것이 공동체이며, 이런 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이 한살림과 다양한 생협 운동의 역할이다.

예전의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생로병사를 함께 해왔다. 마을이 자신의 삶의 울타리였고, 가족공동체가 해줄 수 없는 많은 기능들을 마을 속에서 이뤄왔다. 서로가 기대어 서로의 안위를 지켜주는 공동체를 지금 우리는 생협, 한 살림이라는 울타리로 만들어 안전한 먹거리 생산을 보장하고 안전한 소비를 확보하려는 것이다. 

공동체는 낡은 것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가치다.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삶은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서로를 살리는 관계, 공동체 안에서 가능하다. 한살림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공동체의 모습을 만들어가고 있다. 아주 더디고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는 과정이지만, 이 더디고 답답한 시간을 함께 견뎌야 바라는 미래가 우리의 현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영덕교당·대구한살림 실무자

한살림 생산자가 전하는 생생한 논과 밭 소식들.<br>
한살림 생산자가 전하는 생생한 논과 밭 소식들.

[2018년 6월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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