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디지털 세상이다. 뉴스도 종이신문보다 인터넷신문을 더 많이 보고, 음악도 콘서트홀보다 음원스트리밍을 더 많이 듣고, 사람과의 관계도 직접 만남보다 온라인에서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있다. 모든 것이 디지털로 이루어져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이 이렇게 변화한 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지금 태어나는 세대들이야 그런 환경에서 자라고 있기 때문에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다. 그러나 몇 세대 위로 가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디지털을 몰라도 살아가는데 아무 지장이 없다고 말하는 이도 많다. 

나의 경우에도 소프트웨어 산업에 종사하고 있어 다른 사람들보다는 디지털 환경에 더 익숙하다. 그럼에도 아이들을 볼 때면 세상이 더 빨리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 아이들의 디지털 세상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디지털 세상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인간은 변화하는 세상에 민첩하게 대응해 적응해왔다. 적응에 성공한 인류는 살아남았고, 그렇지못한 인류는 사라졌다. 그것이 비단 인류 뿐이겠는가. 이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은 세상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그것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디지털 세상이란 디지털로 이루어진 세상을 말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온라인 세상을 디지털 세상이라고 생각하시는 이도 있을 것이다. 온라인이란 인터넷을 말하고, 인터넷이 없으면 세상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디지털로 이뤄진 세상은 점점 더 커져가고 있다. 눈을 돌려보자. 인류는 문자를 만들어냈고, 그것을 통해 기록을 했으며, 그 기록을 하면서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바를 축적시키며 소통하고 발전시켜왔다. 그렇다고 지금까지의 세상이 문자 세상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문자가 등장하면서 우리는 상상의 세계를 펼쳐갔고, 그 상상의 세계를 현실로 만들어왔다. 즉, 인류는 그 문자를 활용해 세상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디지털 세상도 그런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디지털 세상을 만들어가는 기술은 우리가 활용해야 할 기술이지 배척해야 할 것이 아니다. 배척이라고 하니 부정적인 뉘앙스가 느껴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한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배척이란 적극적인 반대도 있지만 소극적인 무관심을 의미하기도 하니 나는 어떠한지를 한 번 돌아보자.

'사이버 교화'표현보다는 '디지털 교화'표현으로
현실세계에서 디지털 기술 활용한 교화이기 때문에

문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축적시키고, 활용하게 했지만 디지털 기술은 더 강력하다. 우리가 알 수 없는 것들도 알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러다보니 세상이 디지털 기술로 인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우리는 그런 기술이 만들어내는 세상의 변화를 잘 읽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의 회상을 펼쳐가는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활용해야 한다. 문자를 통해 인류는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그 상상의 세계를 실현시켜왔다. 디지털 기술도 그러하다. 우리 인류는 디지털 기술을 통해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그 상상의 세계를 실현시킬 것이다.

우리 교단에서도 사이버 교화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이 '사이버교화'라는 단어보다는  '디지털교화'가 더 적합한 단어가 아닐까 생각한다. 즉, 사이버 세계에서의 교화가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교화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디지털 기술을 적극 활용해봐야 한다. 그리고 상상의 세계를 증명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자꾸 상상의 세계를 그려보라고 독려해야 한다.

소태산 대종사께서 그리셨던 세상이 이 디지털 기술로 더 빨리 다가오게 될 것이다. 한가지 우려스러운 것이 있다. 모두가 그런 고민을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관심사는 모두 다르니 한가지 척도로 재단하지 않도록 하자. 이런 세상을 먼저 알게 된 이들도 변화를 아직 못느끼는 이들을 답답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모두 우리 일원회상을 만들어가는데 도움을 줄 사람이니 감사하고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

/정릉교당

[2018년 6월 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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