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이혜성 교무] 중앙총부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의 일이다. 식사를 하려고 줄을 선 그 순간부터 내 눈은 반찬들이 진열되어 있는 배식대로 향한다. 뚫어져라 반찬을 쳐다본다. 초 집중의 순간이다.

오늘의 반찬을 보며 내가 먹을 반찬의 종류와 양을 결정한다. "저건 조금만 담아야지. 저건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네. 오늘 주된 공략포인트! 메인반찬이 너무 적게 남았군. 나까지 순서가 안 오겠는데." 여러 가지 생각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떨리는 순간이다. 드디어 내 순서가 왔다. 

미리 살펴보고 결정했던 대로, 반찬을 식판에 담다 마지막 부식차례가 다가왔다. 오늘의 부식은 사과다. 사과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중앙총부 근무하면서는 과일 먹을 기회가 많지 않아 사과는 귀한 음식 중 하나였다. 가장 예쁘게 생긴 사과를 하나 재빠르게 고른다.

식판에 담으려니 아래쪽이 조금 상했다. "아, 이건 아닐세." 그 사과를 냉큼 놓고 다른 사과를 눈으로 빠르게 고른다. "이 사과는 색깔이 조금 별로인데. 아, 저거다! 저게 괜찮다." 다시 색깔도 괜찮고 모양도 괜찮은 사과를 집는다. '그래, 이정도면 잘 골랐다. 맛있어야 할 텐데' 생각하고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아 사과를 한입 베어 무는 순간, 다행히 사과가 참 맛있다. 상한 사과를 가지고 올 뻔 했는데, 더군다나 맛있는 사과를 골라온 나의 안목에 만족감을 느끼며 사과를 먹다가…. 먹다가, 번개처럼 한 생각이 스친다. 

"그런데, 너는 왜 가장 맛있는 건 네가 먹고 싶어 하니?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말하면서, 너는 왜 음식 하나에도 이다지 이기적이니?" 아까 처음에 골랐다가 다시 놓은 '상한 사과'가 생각난다. 상한 사과를 그냥 가져왔어야 했다. 내가 그 사과를 놓고 왔으니, 다른 누군가는 그 사과를 집어가야만 했을 것이다. 

정산종사는 "옛날 초(楚)나라 사람이 실물을 하매, 초왕은 '초인이 잃으매 초인이 얻으리라' 하였는데, 그 후 공자께서는 '사람이 잃으매 사람이 얻으리라' 하셨고, 우리 대종사께서는 '만물이 잃으매 만물이 얻으리라' 하시었나니, 이는 그 주의의 발전됨을 보이심이라, 초왕은 나라를, 공자는 인류를, 대종사는 우주 만물을 한 집안 삼으셨나니, 이가 곧 세계주의요 일원주의니라"고 법문했다. (〈정산종사법어〉 도운편 24장)  

'초나라 사람이 물건을 잃어봐야 초나라의 다른 사람이 그 물건을 얻었을 테니 잃은 바가 없다'고 말 하려면, 초나라를 한집안 삼아야 한다. 예를 들어 '내 왼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내 오른손'이 가져갔더라도 '왜 내 것을 가져 갔느냐'고 묻지 않는 것과 같다. 왼손과 오른손은 한 몸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종사는 지평을 완전히 넓혀서, 우주만물을 한 집안 삼았다. 우주만물은 하나의 몸이다. 우주만물까지도 한집안 삼은 찬란한 교법을, 나는 머리로만 이해하고 실천하지 못했다. 그러니 사과 하나를 고르면서도 '나'만 생각한다. 그 사실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그 날 이후, 내겐 작은 유무념이 하나 생겼다. '안 좋아 보이는 것 고르기'다. 자리이타가 가장 좋지만, 이 좁디좁은 마음을 조금이라도 넓혀가 보려는 어리석은 수행자의 작은 몸부림이다.

/중앙중도훈련원

[2018년 6월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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