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정도성 도무] 전 세계 모든 문자 중에서 창제 동기를 가진 문자는 한글이 거의 유일하다. 세종대왕은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서로 통하지 않아서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자신의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므로 이를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모두 쉽게 익히고 날로 사용하여 편안하게 하고자 새 문자인 한글(훈민정음)을 창제했다고 밝혔다. 

원불교에는 '개교의 동기'가 있다. 세상의 모든 종교 중에서 개교의 동기를 명시해둔 종교 역시 아마 원불교가 유일하지 않을까. 게다가 개교 표어까지 더한다면 그 유일성은 더욱 분명해진다. 한반도에서 새롭게 태어난 문자와 종교가 모두 그 동기를 명시하고 있다. 이것이 과연 우연일까. 

〈정전〉 총서편 제 1장 개교의 동기는 뒤에 이어지는 '교법의 총설'과 함께, 대종사가 왜 또 다시 새로운 종교를 만드셨는가, 왜 다시 새로운 종교를 만들 수밖에 없었는가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개교의 동기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말은 무엇일까. '정신, 신앙, 훈련, 낙원', 이런 핵심어들도 중요하지만 내가 보기에 단연 '물질'이다. 이 '물질'을 빼 놓고는 개교의 동기를 설명할 수 없다. 

개교의 동기는 총 194자로 매우 소략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 짧은 말씀 속에 물질이라는 말은 무려 5번이나 나온다. 정신이 3번, 신앙, 훈련, 낙원이 각각 1번 나오는 데 비해서 말이다. 물질과 비슷한 개념인 '과학'도 1번 나오니 물질이라는 당시로선 생소한 단어와 개념을 각인시키기 위해 그만큼 마음을 기울였음을 의미한다. 과학과 물질, 이런 단어를 종교가에서 직접 언급한다는 건 매우 파격적이지만 과학 문명이 고도로 발달하고 있는 오늘날, 대종사의 전망이 얼마나 보편적이며 정확한가를 알 수 있다.

또 한 가지 개교의 동기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물질'과 함께 '물질의 세력'을 언급했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대상화된 '물질'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인데, 두 가지 정도로 그 의미를 살펴볼 수 있다. 하나는 '물질'이 세력을 형성한다는 것은 자체적인 역량과 힘을 갖추고 증식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물질의 노예 생활'을 그런 관점에서 이해한다. 두 번째는 '물질'은 물질만이 아니라 물신화된 의식, 물질 만능으로 물든 배은적인 삶의 양태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현하', 물질문명, 과학문명은 끝도 없이 광범위하게 획기적으로 열려가고 있음(개벽)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 물질문명과 과학문명의 세력 앞에 아무도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물질의 세력으로 인한 '파란고해'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정신의 세력을 확장함으로써 이룰 수 있음을 '광대무량한 낙원'이라는 희망으로 표현했다.

원불교가 새 시대 새 종교로 등장한 요인은 '물질'에 있다. 그동안의 그 어떤 성자도, 그 어떤 종교도 경험하지 못한 물질의 세계, 즉 과학문명의 발달 속에 놓인 인류의 미래를 대종사는 확연하게 간파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대종사는 물질의 문제, 물질의 세력을 최초로 인식한 성자이고, 원불교는 물질문제를 가장 전향적인 관점에서 다룬 최초의 종교라 할 수 있다. 

/원경고등학교

[2018년 6월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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