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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는 일의 즐거움, 밥 짓는 일의 수고로움
밥 먹는 일의 즐거움, 밥 짓는 일의 수고로움
  • 김혜월 교도
  • 승인 2018.06.12
  • 호수 189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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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혜월 교도]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일 몸이 필요로 하는 양분들을 섭취해서 열량을 채워야 하고, 햇볕도 쬐어주고, 간혹 부족한 무기질류는 영양제를 통해서라도 확보해야 한다. 단순히 물리적인 이유를 떠나서도 밥을 먹는다는 것은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일상의 의식(儀式)이자, 존재 확인의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하다. 같은 밥이라도, 친한 이들끼리 어울려 먹는 밥, 사랑하는 이를 위해 짓는 밥은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교당에서 법회가 끝난 후에 먹는 점심은 어떤 밥일까. 전에 보니, 그냥 그렇게 일상의 의식을 치르듯이 적당히 연령을 감안해가며 줄서서 반찬을 가져오거나, 그 중 편한 이들끼리 한 테이블에 앉아서 먹는 모습이었다. 

한 번은 교당에서 굳이 점심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 좀 답답해 보여서 누군가에게 물었더니, 안 그래도 여러 말이 많지만, 역시 밥을 함께 먹어야 교도들이 서로 친해진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밥 먹는 것 외엔 서로 친해질 프로그램이 없다는 얘기로 들린다. 세상에 얼마나 교당의 콘텐츠가 빈약하면 밥을 함께 먹어야만 교도들끼리 친해진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일까. 교당에서 밥을 함께 먹지 않으면 대화하고 소통할 시간도, 공간도 없는 것일까.

연령대가 높은 교도들 비율이 많은 교당에서는 과연 남자 교도들도 함께 돌아가며 식사 준비하고, 설거지도 분담하고 있을까. 

여러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니, 반찬이나 후식 준비를 두고 서로 간에 갈등하게 될 소지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교도들끼리 친해지자고 먹는 밥이 오히려 단원 간의 불화나 남녀 교도 간의 갈등, 연장자와 차세대와의 긴장을 야기하게 된다면 당연히 개선돼야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밥을 함께 먹는 본질적 목적은 소통과 친밀감
식사 준비로 누군가 갈등 겪거나 수고롭지 않길

전에 누군가가 말하기를, 단별로 준비하고 설거지도 한다지만 꼭 자신이 마지막까지 남아서 뒷정리하고 청소까지 맡아 하게 된다고 했다. 밥과 반찬까지는 준비해오는데, 설거지를 제대로 안 하고 중간에 가버리는 사람들도 많았던 모양이었다. 교무님께 그런 사정을 하소연 할 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이 "00씨, 또 치심(癡心)이 일어났구나. 큰 마음으로 사람들의 허물을 품어야지"라는 것이었다. 이런 이야기는 어느 누구의 마음도 설득시키기 힘들고, 갈등을 풀어내기가 어렵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어느 조직이든 일방적으로 희생을 감내하는 사람들이 교당 내에서 그 희생을 인정받지 못하면 언젠가는 폭발할 수밖에 없게 된다. 최악의 경우는 누구도 그런 희생을 강요한 적이 없는데 왜 혼자 서운해 하고 불만을 터뜨리냐는 반응이 나오는 상황일 것이다.

가만히 내가 소속되어 있는 교당을 관찰해보면, 가끔 법회 끝나고 교당 주변으로 나가서 단별로 함께 가벼운 메뉴를 찾아 먹는 것을 볼 수 있다. 교당에서 밥을 함께 먹는 행동의 본질적인 목적은 '소통'과 '친밀감'인데, 그 밥으로 인해서 구성원 간의 갈등이 빚어지고, 누군가의 '치심(癡心)'을 일으키게 된다면 그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일 수 있다. 그래서 차라리 단 별로 나가서 가벼운 메뉴로 식사를 하고, 준비와 설거지 하는데 쓰이는 시간을 단원들 간의 대화로 채우려는 시도로 보인다.

밥을 먹는 것은 즐거운 일이고, 더군다나 조직 안에서 잘 아는 이들과 함께 먹는 것은 더더욱 신나는 일일 것이다. 한편으로 그 밥을 위해서 우리 인간들은 아침 일찍부터 저녁까지 일을 하고, 끼니거리를 장만하고, 누군가가 시간과 노력을 들여 밥을 지어야 한다. 즐거움을 위해서 수고로움이 수반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밥을 먹는 일인 것이다. 

누구나 할 것 없이 바쁘고 힘든 세상에 굳이 교당에서까지 밥 먹는 문제로 갈등을 겪거나 수고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일주일의 피로를 풀어야 할 일요일에, 아침 일찍 일어나 반찬을 준비하고, 법회 도중에 그 주에 밥 당번을 맡은 이들이 빠져나가 밥 짓고 국 끓이는 일은 이제 좀 흐르는 시간 속으로 보내버려도 되지 않을까? 단원들끼리 교당 주변의 맛집을 함께 찾아다니며, 식사 후에는 차담을 나누는 것이 훨씬 더 좋아 보인다. 당연히 미래의 교도들도 그쪽을 선호할 것이며, 최소한 밥 문제 때문에 부담스러워서 교당에 나오지 않는 이들은 없으리라 생각된다.

/서울대종교문제연구소ㆍ화정교당

[2018년 6월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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