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통한 삶의 사유, 변화 이끄는 근본 동력'


도착시간에 맞춰 마중 나와 있는 이, 앞서 나와 객을 맞이해 주는 그의 마음이 와닿는다. 상대방을 위한 배려는 그렇게 마음으로 먼저 와닿는 법일까. 낯선 초행길의 노고가 위안 받는 순간이다. 

"그 해 4월 찬서리처럼 흰 눈이 내렸고 차가운 천 개의 바람이 불었다.(중략) 이름 없는 이들이 삼삼오오 촛불을 켰다. 한 가닥의 빛이 따듯한 사랑으로 모여들어 화엄 세상처럼 온 세상을 밝혔다. 차가운 한 숨은 미풍처럼 온기로 번지고 냉혹한 이기와 무관심을 녹여내었다. 그리하여 그 해 4월, 마침내 우리는 함께 부둥켜안고 흐느꼈다. 나도 너처럼 아팠었노라고 맑고 고귀한 참회의 고백을 한다. 비로소 우리 사이에 따듯한 피가 흐르고 회복되어가는 나를 만난다. 다시 희망이다." 

무안공공도서관 유미라 관장. 그가 세월호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그리고 자신의 글 한편을 내어 보인다. 세월호 4주기인 올해, 비로소 '아픔을 공감하고 함께 치유되는 첫해'라고 생각한다는 그. 내놓고 아파하기조차 미안해했던, 그 상련의 시간을 함께 겪어낸 이에게 '치유'란 그렇게 '우리 모두의 아픔이고 같이 회복해 나가야 하는 일'이다. 

책 읽기를 통한 삶의 사유
"어느 날, 혼자서 배낭을 메고 뚜벅이로 서울 거리의 여행자가 되었다. 나는 역사가 되어버린 동대문 시장과 청계천 헌책방을 지나 평화시장과 광장시장을 걸어 어느새 창경궁까지 다다랐다. 걷는 동안 70~80년대의 어린 소녀들의 웃음소리들이 환청처럼 들려왔다." 

〈전태일 평전〉과 신경숙의 소설 〈외딴방〉에서 만났던 어린 시골 소녀들. 그가 유년시절 책에서 만났던 그 여공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들의 기억이나 생의 흔적이, 지금은 거창해진 역사공원 어디쯤에 담겨있을까. 이런 생각으로 '청계천 언저리를 기웃'거렸을 그가, 그 현장에서 문득 발견한 것이 있다고 했다. "고단하고 치열한 삶 속에서 미소를 잃지 않는다면, 그는 이미 위대한 철학자이고 혁명가다." 혁명은 거창한 것이 아닌, 작은 미소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가슴에 새겼다.  

한동안 책 이야기를 이어갔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가 특별히 애정하는 작가다. 그가 틈틈이 재미있게 읽었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 그는 현대의 호메로스라고 일컬어지는 카잔차키스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자신의 SNS 계정에 공유했다. "새로운 세상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통해 상상력과 호기심에서 비롯됐다. 한 권의 책으로 새로운 세상이 현실로 열릴 수 있다는 희망과 가능성을 우리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그에게 책 읽기는 책을 통해 사물을 이해하는 일이다. 사물에 대한 배경과 역사를 아는 일이고, 아는 만큼 사랑하게 되는 일. 주변되어지는 모든 것들을 사랑으로 바라봐주고 거기서부터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그는 '주체적인 책읽기'와 '시민 주도적인 독서환경'을 강조한다. "창의력의 원천이 책 읽기(독서)다. 그러나 읽는다는 것에 방점을 찍으면, 단순히 책을 읽는 행위나 수단에 머물러 있게 된다. 읽기를 통해 나의 생각과 철학을 만드는 일, 이것이 주체적인 책읽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주체적인 책읽기'는 글쓰기와 연계된다. "세상을 보는 시각이 깊어지고 삶을 생각하게 되고, 생각이 기존의 정서와 경험으로 어우러져서 하나의 글로 나온다. 나의 생각, 나의 철학을 만드는 것이 글쓰기다. 자기 생각과 철학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일, 그것은 읽기와 중첩된 글쓰기를 통해 시작된다." 

책 읽기를 통한 삶의 사유는 글쓰기와 중첩된다는 그가, 문득 '삶의 재미'를 이야기하며 대화의 무게를 덜어낸다. "자신이 좋아하는 메뉴를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음식점이 있듯이, 다양한 메뉴(책)를 접할 수 있는 서점이 있어서 삶의 재미가 있으면 좋겠다. 인생은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 읽기를 통해 힘들고 어려운 조건에서도 살아갈 위안을 얻고, 삶의 즐거움과 문화를 공유하는 문화가 됐으면 좋겠다." 골목 골목, 마을 책방을 통해 삶의 소소한 재미와 위안을 나누는 일, 이것이 곧 그가 생각하는 '시민 주도적인 독서환경'이다. 
 

시대의 변화를 리드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일 중 하나가 책 읽기라고 생각한다
혁명은 변방에서 시작되는 거 아니겠는가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주체 
지역 도서관이 그런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무안공공도서관 이야기
그가 몸 담고 있는 곳은 무안공공도서관이다. 전라남도 무안교육지원청 직속기관으로 독서문화진흥과 학교독서교육지원 사업에 역점을 두고 있다. 무안관내 33개 초·중·고등학교를 대상으로 학생들의 독서·토론 교육의 장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 사고력과 타인을 존중할 줄 아는 마음을 키우는 일, 그 실천을 글쓰기 독서회 과정을 통해 풀어내고 있다. 

또한 자발적인 모임 활성화로 책 읽는 지역문화 확산과 더불어 인간의 사상과 정신문화를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 특강과 인문학 동아리 지원, 인문학 기행 등도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업 중 하나다.  

"시대의 변화를 리드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일 중 하나가 책 읽기라고 생각한다. 혁명은 변방에서 시작되는 것 아니겠는가.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주체가 되고 싶다. 지역 도서관이 그런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는 이것이 카잔차코스의 '바람의 장미'이며 모든 변화를 이끄는 근본 동력이라고 은유한다. 

그리고 변화의 여건이 되어야 할 공공도서관의 역할을 구체화한다. "공공도서관은 지역사회의 다양한 생각들이 모이고 토론하고 소통하는 장이어야 하며, 지역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나누고 지혜를 모으는 장이어야 한다." 

책읽기는 땅심 키우는 노동
제각각 자기 빛을 내는 책방이 있는 지역사회, 이에 동참하기 위해 그 또한 동네책방 운영을 구상하며 시골집에 공간 한 켠을 마련했다. 그가 책 읽기를 통한 삶의 사유, 그리고 이와 중첩되는 글쓰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다시 한 번 정리한다.  

"책 읽기(독서)는 큰 나무가 되도록 땅심을 키우는 노동이다. 상상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사고의 깊이와 확장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영감을 얻는 정신노동이다. 이는 글쓰기를 통해 내 안에 체화된다. 글쓰기는 큰 나무의 잎과 열매를 맺는 일이다. 기록으로 삶의 유한성을 극복하고, 언어로 고유한 자신만의 빛깔과 삶의 무늬를 만들어내는 수행이다."

무안공공도서관은 '올해의 책'을 함께 읽는 인문독서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학교로 찾아가는 인형극도 독서문화진흥사업의 일환이다.

[2018년 6월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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