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산 황도국 서울교구장

사리연구 훈련과목 중 의두와 성리를 공부하면서 확실한 해오가 이뤄지지 않아 공부길이 어려웠던 경험이 있다. 〈대종경〉에서 성리품을 공부하다보면 도대체 의두와 성리가 어떻게 구별되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고, 또한 성리라는 과목은 다른 염불이나 좌선, 일기법처럼 〈정전〉에 그 훈련법에 대한 구체적 내용이 명시돼 있지 않아 도무지 어떻게 공부길을 잡아야 할지 고민스럽기도 하다. 이러한 의문을 명확히 해결하기 위해 의두와 성리의 공부방법과 특징, 또한 공통점과 차이점 등을 황도국 서울교구장을 찾아 문답했다. 


- 의두와 성리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소태산 대종사가 교법을 제정할 때 스스로 깨친 진리에 근원해 그 갈래가 나오게 했다. 때문에 의두와 성리도 대종사가 깨친 진리를 우리도 깨닫도록 두 방법으로 연구의 깊은 경지를 체득할 수 있도록 제시한 것이다. 

의두는 "대소유무의 이치와 시비이해의 일이며(중략) 명확한 분석을 얻도록 함이요" 성리는 "우주만유의 본래이치와 우리의 자성원리를 해결하여 알자 함이요"라고 밝혔다. 의두가 만법이 한 근원인 각각의 개체를 통해 근원을 분석해가는 공부라면, 성리는 오로지 하나의 본질만을 연마하고 궁구해 가는 공부다. 방법적인 면에서 의두는 추론과 분석을 통해 근원을 분석하는 반면, 성리는 관조(觀照)와 직관(直觀)이다. 따라서 의두는 그 폭이 수가 없이 넓고, 성리는 오로지 한 체성을 깊이 관조하고 직관해 들어가 결판을 내도록 해줬다. 

그러나 의두 속에 성리가 들어있고 성리가 깊어짐에 따라 의두를 해결하는 동력이 되도록 해 상호보완적인 특징이 있다.

- 의두연마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또한 의두요목을 공부할 때 어떤 방법으로 시작하고 연마해야 하나.
의두가 처음부터 걸리면 최상근기일 것이다. 보통 우리가 공부하는 순서는 먼저 경전을 수지독송하며 연마해 의심건이 생기면 그것을 점진적으로 궁구해간다. 상시응용주의사항에서도 경전법규를 대강 마친 사람은 의두연마를 주의하라했다. 따라서 사리연구과목에서 이미 대소유무의 이치와 시비이해의 일을 구체적으로 밝혔기 때문에 먼저 사리연구의 확철한 대중을 잡아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교리의 공부가 필요하고 경전법규 연습이 먼저 시작돼야 한다. 그리고 의두요목으로 조목을 따라 연마해 가고, 다음에 모든 경을 볼 때 그 표준으로 해결해가면 대소유무에 대한 이치가 확연히 밝아질 것이다.

- 성리는 다른 훈련법과는 달리 훈련과목으로써 공부방법이 〈정전〉에 명시돼 있지 않다. 성리공부는 어떻게 하는 공부인가? 또한 해결하여 알자 함이라 했는데 해결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성리는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요, 정성과 지극한 공부심으로 적공해 나가야 한다. 대종사는 좌선이 끝난 후 정신이 맑을 때 의두·성리를 연마하게 했으니, 그 방법으로 적공해 나갔으면 한다. 다만 성리는 가끔 틈나는 대로 관조와 직관으로 적공하되, 대종사가 성리품을 밝혀줬기 때문에 성리품과 일원상의 진리 등을 지속적으로 연마하고 궁구해 가면 될 것이다.

관조는 꿰뚫어 본다는 것으로, 다른 생각 없이 오롯이 그 하나를 쳐다보고 몰입해 들어가는 것이다. 낱말의 뜻을 풀어 아는 게 아니라, 초점을 정확히 근원자리와 우주만유의 본체자리, 우리 자성의 원리에 들어가는 것, 하나라는 것을 쫓아 들어가는 것이다. 성리라는 것은 5년이고 10년이고 그 하나를 계속 직관해 들어가는 것이다. 

또한 성리과목에서 해결한다는 어구를 썼는데, 특별히 다른 뜻이 들어 있다기보다는 궁극적인 문제를 풀어서 일호의 의심도 없이 확실히 결말을 짓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리라 생각한다. 다만 일호의 의심없이 결말지으려면 감각감상과 심신작용처리건의 확실한 공부법이 필요하다. 

대종사는 성리품 5장에서 "큰 도는 서로 통하여 간격이 없건마는 사람이 그것을 알지 못하므로 스스로 간격을 짓게 되나니, 누구나 만법을 통하여 한마음 밝히는 이치을 알아 행하면 가히 대원정각을 얻으리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누구든 가히 대원정각을 얻으리라 했고, 그렇게 하려면 만법을 통하여 한마음 밝히는 이치를 알아 행해야 함을 강조했다. 여기서 안다는 것과 행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쉽게 말하면 안다는 것은 감각감상을 통해 깨달아 가는 것이고, 행한다는 것은 심신작용을 통해 천만경계에서 취사의 능력을 향상시켜 나가도록 한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감각감상을 기재시키는 뜻은 그 대소유무의 밝아지는 정도를 대조하게 함이라고 했다. 그래서 필경 감상에서 감각으로, 결국은 구경의 진리를 깨쳐 대도를 정각하도록 한 것이다. 또한 그 깨달음을 바탕으로 원만한 취사를 갖춰 나가도록 한 것이 심신작용처리건이라고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 기재하던 감각과 감상의 기재를 깊이 성찰해보고 재고해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감각감상은 대원정각으로 나가는 길이요, 심신작용처리건은 원만한 여래행으로 나가는 공부법이기 때문이다.  

- 정산종사가 말씀한 견성 5단계의 '만법귀일의 실체 증거, 진공의 소식을 알고, 묘유의 진리를 보고, 보림함축, 대기대용'의 의미는 어떤 것인가.
정산종사의 견성 5단계는 단계적 공부길로도 볼 수 있지만 서로 보완해 가면서 병진해 가는 개념으로 보아도 좋을 것 같다. 왜냐하면 이를 바꿔말하면 견성, 양성, 솔성, 보림, 대기대용으로 볼 때 삼학을 병진해 가면서 심화시켜 가는 공부길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단계적으로는 견성이 먼저요, 견성에 바탕해 양성하고 솔성으로 나가는 것이 순서라고 보며, 의리선에서 여래선으로 여래선에서 조사선으로 나가는 것과 맥락이 통한다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모든 공부길은 먼저 하나로 돌아가는 실체를 증거하고, 진공의 소식을 체험하며, 진공이 현상을 떠나지 않고 그대로 존재함을 깨달아 삶 속에서 천만가지로 활용해 가는 공부로 적공해 나가야 할 것이다.  

- 대종사는 견성이 되지 않고는 법강항마위에 오를 수 없다고 했다. 우리가 견성을 했는가 못 했는가의 견성 인가법, 또는 견성의 표준을 어떻게 두고 공부길을 잡아야 하는가.
스스로 공부하는 중에 반드시 마음이 열리면 깊은 체험을 하게 될 것이요, 체험을 하게 되면 자기보다 법이 수승한 지도인에게 문답감정을 받아서 인가 받는 길이 있다. 동시에 대종사는 〈정전〉에 스스로 대조해 보아 공증하도록 한 법문이 있다. 바로 '일원상 법어'이다. 공부를 하다가 스스로 깨친 바가 있어 일원상 법어에 대조해 호리도 틀림이 없으면 깨친 바가 확연할 것이다. 때문에 일원상 법어는 항마위의 도리와 출가위의 도리, 여래위의 도리를 공증하는 문서이며, 교단 만대에 깨달음의 최고 심법을 표본해 대조할 표준을 밝혀 놓은 공증법인 것이다. 

〈대종경〉 변의품 34장에서 대종사는 견성하지 않고는 항마위에 오를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항마위에 오른 법사들이 다 견성을 하고 오른 것이냐의 문제가 제기된다. 이 문제는 앞으로 그 기준을 세워 법위에 손상됨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원불교 초창기에 입교해 30년 내지 40년간 한결같이 서원과 신성과 공심으로 교법을 신봉해 온 그 과정을 인정해 준 것으로 보고 부족한 부분은 채워갈 수 있도록 해야 하리라 본다.

학교에서 공부할 때 다 만점을 받아 승급하는 것이 아니라 좀 부족해도 함께 승급하고 채워나가기도 하는 것과 같다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능사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때문에 반드시 급수에 따라서 제대로 공부해 나가도록 해야 할 것이며, 특히 상전급과 예비 법강항마위에서는 더 집중적으로 지도하고 공부를 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2018년 6월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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