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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륜 도무 교화자의 삶 2. '내가 원래 여기로 와서 살아야 할 팔자인데'
김천륜 도무 교화자의 삶 2. '내가 원래 여기로 와서 살아야 할 팔자인데'
  • 김천륜 도무
  • 승인 2018.06.14
  • 호수 189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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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천륜 도무] 젊은 시절에는 삶이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만약 환경에 변화가 생기면 원불교 가서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항상 자리잡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지금 출가생활까지 인연이 이어진 첫 계기는 훨씬 이전이었던 것 같다.

19살 때 친척 한 분이 열반했는데 화장장을 따라갔다. 화장장에서 친척 가족들과 함께 그렇게 울고불고 했는데 화장을 하고 나니 뼈 몇 조각만 나오는 것이다. 순간 '이게 뭘까'하는 의심이 들었다. 지금도 화장장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에서 그렇게 깊이 의심 들었던 그때가 생각이 난다. 그때부터가 불법과의 인연이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교당에 열심히 다녀서 편안하고 행복한 점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자꾸 의심이 생겼다. 출가에 대한 갈등이었던 것 같다. 앞으로 갈 곳은 원불교 밖에 없다는 생각이 왜 그렇게 자꾸 드는지.
출가하기 전에 중앙총부에 미리 와 본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간절한 기도생활이 이때쯤 시작됐던 것 같다.

교당을 다닐 때 기도는 그때그때 교당에서 하니까 해왔었고, 총부에 와서는 스스로 참회기도가 됐다. 교당 법회시간이나 기도시간 등 주변환경에 의해서 하는 타력적 기도에서 스스로 하게 되는 자력기도로 변한 것이다. 중앙총부가 연고지도 아니고, 아는 사람도 없는데도 참회기도를 하면서 지내다보니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중앙총부 이후로 혼자서 성지순례를 다녔다. 익산성지에서는 상주선원에서 잠을 자고, 영산성지에 가서도 잠을 자며 기도 드렸다. 이렇게 순례를 마치고 버스 타고 집에 가는데 중간에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총부로 왔다. 막연하지만 이 길을 가야겠다 생각이 들었는데 그 당시 점을 못 찍은 것 같다. 부모님 생각 때문이다. 부모님은 전형적인 경상도 어르신들이다. 교당 다닐 때부터 원불교가 전라도 종교라며 반대가 너무 심했다. 당시에는 전라도, 경상도 지역 갈등도 심했을 때다. 아버지는 '전라도 종교에 빠져서 간다'며 배타심이 아주 심했다.

그러한 부모님 생각에 내심 갈등하다가 다시 총부로 왔다. 다시 돌아온 총부에서 기도 올려보니까 마음이 너무 편안했다. 내가 사회에서 살고 있으니까 남편에 대한 차별심이 많이 나오는구나 싶었다. 내가 원래 여기로 와서 살아야 할 팔자인데 사회에 살고 있으니 얼마나 잘 살았겠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회에서 우연히 당신과 인연돼서 살고 있는데 당신도 얼마나 힘드요. 당신 때문에 내가 힘든 줄 알았는데 나 때문에 당신이 힘든 것을….'

혼자 총부에 오면 성탑에서 참회기도 절로 돼
출가 반대하던 아버지, 총부생활 보며 안심해

저녁마다 소태산대종사성탑에 가서 기도를 많이 했다. 아직도 그때 영모전 광장이 잊혀지지 않는다. 참회기도를 많이 하면서 영모전 광장이나 성탑에서 눈물도 많이 흘렸다. 서글프기도 했고 이런 운명에 혼자 화도 많이 냈다. 총부는 나를 살찌운 곳이다.

이런 갈등을 멈추게 해준 분이 승산 양제승 종사님이다. 성지순례 겸 1박2일 만덕산훈련에 참가했을 때였다. 승산님은 당시 선객들에게 '일원상 진리'를 설법했다. 첫째날 설법을 듣고, 둘째날 오전에 다시 듣으니 '출가해야겠다'는 확신이 마음에 꽂혔다. 만덕산훈련원을 나와서 진주에 들려 정리를 하고 정한 것도 없이 막연하게 총부로 왔다. 총부에서 지내며 참회기도는 계속했다.

출가 결심을 하고 총부에 있을 때, 당시 황영규 교무님을 찾아갔다. 그때 원불교학과 기숙사(학림사)가 총부 내부에 있었고 향적당이 학생들 식당이었다. 식당에서 일하던 유삼은 덕무와 방을 같이 쓰라고 했다. 거기서 간호조무사 공부를 1년동안 했다. 그리고 삼정원으로 예비 덕무 생활을 하러 갔다. 

아버지는 암 선고를 받고 3년 있다가 열반했다. 열반 전, 아버지는 딸이 전라도에 있으니 궁금했던지 한 번 찾아왔다. 친구들하고 같이 대형버스 한 차를 빌려 총부순례를 온 것이다. 그때 나는 교화부에 연락해 안내를 부탁했고 아버지를 마중나갔다.

중앙총부 영모전, 원광대학교 등을 둘러보더니 안심하고 되돌아갔다. 아버지는 열반하기 전에 어머니 보고 "나이가 들어봐라. 자식들 중에 얘가 가장 편안할 거다"고 했다고 한다.

/중앙여자원로수도원

[2018년 6월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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