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허경진 교도]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날 전날이었다. 1994년쯤이었던 것 같다. 그 때는 김영란법이 없어 어린이날이면 소위 치맛바람이라 불리는, 있는 집 엄마들이 자식이 속해있는 반 아이들에게 선물을 돌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럼 우리는 그냥 맛있는 거 먹고 선물 받고 즐거운 분위기에 신났었다. 

지금까지도 기억하는 그날의 특별한 기억은 선물을 돌린 한 엄마의 아이가 바이올린을 들고 반마다 다니며 어린이날 노래를 연주해 줬다는 것이다. 그 아이는 연말 학교 학예회에도 나와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지금이야 학교에서 바이올린 교육이 단체로 이뤄지기도 하나 그 당시에 바이올린을 가지고 있고 배우는 아이는 전교에 한 두 명 정도였으니 아주 드물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음악시간에 노래를 수없이 반복해 부르거나 악기라고는 탬버린, 캐스터네츠와 같은 리듬악기나 리코더가 다였고 연주하는 곡도 교과서에 나오는 동요정도였다.

이처럼 학년말에 열리는 학교 음악회나 학예회에서는 학교에서 배운 것보다는 사교육으로 배운 것들이 주로 무대에 올려 졌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무대 아래에 앉아 떠들면 혼나고 끝나면 박수치는 정도의 역할을 했다. 나는 어린마음에 그 아이들을 보며 부럽기도 하고 샘이 나기도 했던 것 같다. 

많은 시간이 흐른 현재의 학교 음악회는 어떤 모습일까? 주로 합창부, 관현악부, 밴드부 등 음악 관련 동아리 학생들이 그동안 배우고 연습한 것을 무대에 올리고 그 외에는 주로 가요를 부르거나 아이돌 댄스를 선보이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학교 음악회를 진행하면 공연의 재미와 흥미는 높일 수 있다. 하지만 보편적 음악 교육을 지향하는 학교에서 모든 아이들에게 무대 경험이라는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지지는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학창시절 다양한 경험은
평생 소중한 자산이 된다

현재 내가 근무하는 학교 역시 이런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경우는 학교의 규모가 커서 학생 수가 많을수록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래서 고민 끝에 1학기 말에 하게 될 작은 음악회를 다음과 같이 기획해 봤다. 

일단 1학기 동안 배운 내용을 무대에 올리기로 했다. 첫 번째 무대는 함께 배운 아리랑 중 진도아리랑이다. 장구와 북 반주에 아리랑만 부르자니 아이들이 어색하고 부끄러워해서 앞부분에 재즈버전으로 편곡한 진도아리랑을 피아노로 연주하고 다양한 리듬악기를 함께 연주해 크로스 오버 음악으로 꾸몄다. 

남학생 8명이 노래를 하는데 선비들이 썼던 갓과 합죽선 부채를 소품으로 줬다. 의외로 아이들이 진도아리랑을 즐겁게 불렀다. 혼자 부르는 '메기는 부분'에서는 원래 진도아리랑을 부르고 뒷부분에는 중학생의 신세한탄을 가사로 만들어 부른다. 예를 들면 '학교마치면 학원가고 학원마치면 숙제네~ 하고 싶은 건 많고 많은데 나는 언제나 노나~' 이런 식이다. 

두 번째 무대는 음악시간에 배운 20여곡의 리코더 곡 중 영화 속에 나온 음악만 뽑아 '무비앤 뮤직'이란 제목으로 꾸며 봤다. 100명 정도의 학생이 파트를 나눴다. 영화 속 주제가를 리코더로 연주하고 기술 스텝 팀으로 선발된 학생들이 미리 제작한 영상을 무대배경으로 띄우는 것이다. 여기에 피아노 반주와 간단한 리듬악기를 함께 연주해 더 풍부한 음악을 만들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음악시간에 배운 내용에 조금 살을 붙여 무대를 기획하니 모든 학생에게 기회를 줄 수 있고 평소 잘 참여하지 않던 학생들도 용기를 내어 무대에 도전해 보기도 했다. 

여기서 평소 무대 경험을 가질 기회가 많은 예술동아리 학생들은 선발에서 2순위에 둔다는 점을 미리 알린다. 그렇지 않으면 늘 하는 학생들만 하게 되고 마음은 하고 싶으나 용기가 없거나 기회가 없는 친구들은 무대를 경험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다양한 경험은 평생의 소중한 자산이 된다. 그 중에서도 잘하든 못하든 무대에 서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공연 경험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리고 모든 학생에게 경험의 기회를 주고 장을 열어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2018년 6월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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