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정기훈련은 정할 때 공부로써 수양·연구를 주체로 삼고, 상시훈련은 동할 때 공부로써 작업취사를 주체로 삼는 공부라고 〈정전〉에서는 설하고 있다. 두 관계는 상의상자(相依相資)의 관계임을 또한 밝히고 있다. 

인간의 삶은 삼학이 필수다. 자동차는 석유나 전기 에너지에 의존하고 있지만 삶의 근본 에너지는 삼학인 것이다. 그 이유는 정산종사가 "수양의 결과는 생사자유와 극락수용과 만사성공이요, 연구의 결과는 사리통달과 중생제도와 만사성공이요, 취사의 결과는 만행구족과 만복원만과 만사성공이니라"(〈정산종사법어〉 6경의편 16장)고 말씀하듯이 최종적으로는 만사성공의 열쇠이기 때문이다. 

만사성공은 개인의 완전한 삶을 말한다. 영혼과 육체, 정신과 물질, 도학과 과학의 조화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행복지수 또한 높아질 것이다. 결국 삶의 척도는 삼학의 원천인 일원상 진리를 어떻게 삶 속에 구현하느냐에 달려있다. 이를 구체화하는 과정이 훈련이다. 핵심은 갱심(更心)과 갱신(更身)을 통한 갱생(更生)이다.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생 속에서 자신의 근원을 돌아보지 못하게 방해한 무명과 업의 관성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훈련이다. 이를 달리 말하자면 마음의 혁명, 몸의 혁명, 그리고 삶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인류문명의 진화과정을 돌이켜보면 이 삼학의 발전에 힘입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산업혁명, 프랑스혁명, 한국의 민주화 등은 무명과 업에 갇혀있던 인간 개개인은 물론 사회 전체가 점점 지정의(知情意) 세 방면에서 각성해 가는 과정임을 알 수 있다. 최근 세계적인 미투운동도 같은 인류 구성원인 여성에 대한 불평등이 오랫동안 지속된 과거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깨달음에서 시작된 것이다.

원불교의 성장도 훈련으로부터 시작됐다. 저축조합, 정관평 방언, 혈인기도, 하선·동선은 소태산 대종사의 깨달음을 훈련을 통해 실재화해 간 여정이다. 그리고 마침내 훈련을 발판으로 현대사회의 흐름에 맞춰 각 분야로 분화, 발전해왔다. 그 근본에는 여전히 삼학의 중층적인 역할이 있다. 

이 모든 과정은 인간 모두가 진리적 삶을 통해 자아와의 일치, 진리와의 일치, 그리고 모든 인류와의 일치를 이루기 위한 것이다. 분열된 자아를 통합하는 내면의 통합, 분열된 사회를 통합하는 사회적 통합, 분열된 나와 우주자연과의 통합이 최종 목표다. 

결국 혼란한 자신과 문명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삶의 원형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 정기와 상시훈련이 있는 것이다. 정기훈련은 일단 멈추고 충전하는 일이다. 모든 차들이 일정기간이 지나면 정기점검을 받듯 인간 또한 정기점검을 통해 고갈된 삼학의 에너지를 충전시켜야 한다. 정신수양과 사리연구가 기반이 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정비된 차가 생산을 위한 운전이 가능하듯이 삶의 현장에서도 낙원건설을 위한 충전된 에너지라야 승화될 수 있다.

작업취사의 결실이 바로 삶의 행복이다. 자아의 완성, 나아가 인류의 자아가 완성될 때 더없는 행복, 즉 지복이 이뤄질 것이다. 이를 위해 삼학의 지구화가 필요하다. 모든 윤리, 도덕, 법률 세계는 물론 교육과 노동현장에서도 삼학을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 삼학의 에너지가 충만할 때, 비로소 지구공동체는 평화로운 낙원을 맞이할 것이다. 

/원광대학교

[2018년 6월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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