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신문= 김경일 교무] 며칠 전 한 도반의 배려로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일본 야쿠시마 숲 걷기 프로그램이었다. 야쿠시마 숲은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보호받고 있는 일본을 대표하는 밀림이라고 한다. 

제주도의 절반은 더 돼 보이는 큰 섬이었지만 유락시설도 거의 없을 정도로 자연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는 치유의 숲이었다. 곳곳에 삼나무 고목이 즐비했다. 수령이    7천년 되었다는 조문 삼나무를 비롯해서    3천년 넘은 기원삼나무 등등 천년을 훌쩍 넘긴 묵은 고목들을 다 헤아리기 어려웠다. 사슴과 원숭이들이 우리를 두려워하지 않고 피하지 않는 모습도 이채로웠다. 
걷는 내내 탄성과 탄식이 저절로 나왔다. 탄성은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아도 자연 스스로 이루어내는 조화의 위대함과 아름다움 때문이었다면, 탄식은 전쟁의 상흔으로 망가진 우리나라 숲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지금은 많이 복원되었다고는 하지만 이곳 야쿠시마의 잘 보전된 밀림을 보니 지난 한국전쟁에 대한 비애가 새삼 다시 느껴졌다. 

첫날 21㎞의 고단한 트래킹을 마치고 돌아와 즐거운 만찬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산행을 다녀온 감상을 나누는 기회가 있었다. 다들 이구동성으로 감동의 연속이었다. 나 역시 산행의 감동을 전한 후 한국전쟁으로 유실된 우리나라 숲에 대한 안타까움을 말했다. 그러면서 '더 이상 전쟁이 없어야 한다, 사람도 그렇지만 숲을 보아서라도 더 이상 전쟁이 없어야 한다'고 목청 높여 말했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모처럼 찾아온 한반도 평화기회를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그런데 한 분이 반론을 제기했다. 요지는 이런 거였다. 

'전쟁은 평화를 말한다고 지켜지는 것이 아닙니다. 전쟁은 억지력이 있어야 합니다. 북한사람들은 믿을 사람이 못됩니다. 지금의 남북 평화 분위기는 위장된 술책 가능성이 높습니다. 속지 마세요. 전 정권들이 남북 화해한다고 퍼 주기해서 북쪽이 핵 개발했지 않습니까? 지금 정부가 내어놓은 개헌안을 보면 결국 공산화하자는 겁니다. 국민이 깨어있지 못하고 그대로 두면 대한민국은 머지않아 공산화될 것입니다.' 

이게 무슨 소린가? 우리 일행 중에 이런 분이 있다니! 순간 짜증이 확 올라왔다. 요란해지는 내 마음을 본다. 참지 못하고 내 반론이 이어졌다. 상대도 결기를 세워 물러서지 않았다. 옆에 있던 일행들이 '그런 정치 이야기는 그만하자'며 서둘러 진화했다. 

문제는 그 이후 내 마음의 흐름이었다. 짜증이 점점 미운 감정으로 짙어져 갔다. 명색이 배웠다는 사람이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가 있지? 도저히 납득이 안 돼. 촛불과 태극기가 이렇게 다르구나. 유쾌했던 산행의 감동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무거운 감정이 저녁 내내 나를 지배했다. 답답해하면서 공허하고 암울한 생각에 빠져 있는 나를 보았다. 

마치 평화가 내 것인 것처럼 독선과 오만의 습에  길들여진 나는 아니었을까 
이런저런 마음들을 피하지 않고 인정하고  만나주니 미움이 차츰 잔잔해진다

평화란 무엇인가? 평화는 어디서 오는가? 평화는 어떻게 가능할까? 민주주의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경청하며 맞춰가는 건데… 내 생각에 대놓고 반론하는 사람에 대하여 싫어하는 나를 본다. 미워하며 힘들어 하는 나를 들여다본다. 내 생각을 고집해서 상대를 나쁜 사람으로 규정짓는 내 독선을 본다. 그래. 저 사람의 의견을 내가 동의하지는 않지만 저런 의견도 있구나. 저런 생각도 있을 수 있지. 들어주고 만나주면 내 생각도 보완되고 그게 건강하고 원만한 사회가 될 수도 있겠구나. 마치 평화가 내 것인 것처럼 독선과 오만의 습(習)에 길들여진 나는 아니었을까? 이런저런 마음들을 피하지 않고 인정하고 만나주니 미움이 차츰 잔잔해진다. 마음이 더 너그럽고 단단해진 느낌도 든다. 

세상의 변화가 급하다. 자본주의가 노쇠해지면서 자국 이기주의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와 시진핑의 중국 패권주의가 대표적이다. 자국의 이익 앞에는 혈맹도 예전과 같지 않다. 세계는 지금 묵은 세상이 지나가고 새로운 질서로 재편 중에 있다.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글로벌 세상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세계열강들의 첨예한 갈등과 대립의 각축장인 한반도를 중심으로도 새로운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한반도 운전자론을 중심으로 비핵화와 평화체제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중이다. 70여년을 끌어온 한국전쟁의 종전선언이 되고 북미간 수교가 진전된다면 우리 한반도는 전혀 다른 세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남북의 경협은 우리 사회의 활력을 가져다 줄 것이고 대륙을 향해 꽉 막혔던 자동차와 철도가 열리면 국운 상승의 계기가 될 것이다. 중생의 식(識)이 부처의 지혜로 변하듯 분단의 고통이 세계평화의 문을 활짝 여는 새로운 문명국가가 될 것이다. 세계 도덕의 부모국, 세계 정신문명의 지도국은 이렇게 다가오는 것은 아닐까? 

후천개벽은 세상의 총체적 변화를 수반한다. 선천의 묵은 질서가 물러가고 후천의 새로운 문명세상이 다가옴을 뜻한다. 일찍이 경험할 수 없었던 후천개벽, 새로운 문명세상은 새로운 문명방식으로만이 가능하다. 묵은 잣대로 새로운 세상을 재단할 수 없다. 새로운 문명은 새로운 인간, 새로운 삶의 방식이 요구된다. 자유와 평등과 평화가 그 요체다. 삼학팔조 사은사요가 그 매뉴얼이다. 
봄이 온다고 다 농사에 성공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운수야 좋다마는 하기 나름인 것처럼 평화의 주인공은 준비된 자의 것이다. 눈을 크게 뜨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새 회상의 책임이 막중하다. 

/경남교구장

[2018년 6월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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