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임병학 교수] "열렸구나 열렸구나 밝은 문이 열렸구나 
밝은 문을 열어 놓니 명도판결(冥途判決) 우리 학도(學徒) 전정(前程)이 만리(萬里)로다"

'열렸구나 열렸구나'는 하늘의 문이 열린 것으로 개벽(開闢)이 된 것이다. 개벽에서 열 개(開)는 문 문(門)과 일(一)과 입(卄)으로, 21의 진리가 문에 드러난 것이고, 열 벽(闢)은 문 문 안에 임금 벽으로, 성인의 말씀이 문에 드러난 것이다. 

'밝은 문이 열렸구나'는 마음의 문이 열린 것이다. 즉, 밝은 문은 명덕(明德)의 마음 문이고, 본성의 문이다. 〈주역〉에서 "본성을 보존하고 보존하는 것이 도의의 문이다"라고 하여, 밝은 문은 도의지문(道義之門)이라 했다. 우리는 누구나 밝은 덕을 가지고 있듯이 자기에게 밝은 문이 있지만, 탐욕심으로 닫아 버리니 빛이 들어오지 못하는 것이다. 

또 〈주역〉에서는 "이러한 까닭으로 문 닫는 것을 곤(坤)이라 하고, 문 여는 것을 건(乾)이라 하고, 한번 닫히고 한번 열리는 것을 변(變)이라 한다"라고 하여, 문이 열리고 닫히는 것을 하늘의 작용임을 밝히고 있다. 즉, 밝은 내 마음의 문이 열리는 것은 하늘의 작용과 관계되는 것으로, 하늘의 문이 열렸을 때 공부에 정성을 다해야 함의 의미이다. 하늘 문이 열리니 마음의 문도 열리는 것이다. 

마음의 눈이 열리지 않는 사람을 '심(心)봉사'라 하겠다. 〈대종사 가사집〉 '회성곡'에서는 "백천(百千) 간사(奸邪) 모여들어 선악을 모르고서, 미친 봉사 되어간다. 미친 봉사 저 사람이 백천만사 다 버리고, 제가 무슨 수단이나 있는 듯이 동무 찾는 판이었다. 저 봉사 거동 보소 잠든 봉사 흔들면서 말하는 수단이었다"라 하고, "이 봉사는 저 봉사를 해하며, 저 봉사는 이 봉사를 해하며, 개개 불량 아닐런가"라고 해, 사람들이 욕심에 눈이 멀어 수없이 많은 간사(奸邪)한 짓을 하며, 서로를 해치면 살아가는 마음 봉사를 노래하고 있다.

다음 '밝은 문 열어 놓으니'는 대종사가 대각(大覺)을 통해 마음의 문을 열어 놓았다는 것이다. 〈대종경 선외록〉에서는 "그대들은, 내가 먼저 경험해 보고 나서 눈먼 봉사라도 안심하고 가도록 큰 길을 닦아 놓았고, 이렇게 편안히 의지할 집을 지어서 아무 거리낌 없이 공부할 수 있도록 해 놓았으니 얼마나 다행한가. 그렇건마는, 여기 와서도 딴 길을 바라는 자가 없지 않으니 이는 천만년을 구할지라도 다 허사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했다. 즉, 수없이 많은 간사한 짓을 하고 서로를 해치는 봉사를 위해 성인이 밝은 문을 열은 것이다. 마음의 문은 깊고 오묘하기 때문에 성인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열 수가 없다. 

'명도판결 우리 학도 전정이 만리도다'는 명도(冥途)는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간다는 암흑의 세계이고, 판결(判決)는 시비나 선악을 판결한 것이고, 학도(學徒)는 도학을 배우는 무리이다. 성인이 밝힌 진리를 배우고 실천하는 우리들의 앞길이 구만리(九萬里)인 것이다. 

/원광대학교

[2018년 6월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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