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많은 목소리들이 이렇게 말한다. '딱한 사정 알겠는데, 그렇다고 꼭 여기일 필요는 없잖아. 멀리서 지지는 할 테니 우리 동네에선 좀 나가줄래?'      

일단 시작되면, 혐오는 온갖 이유를 다 갖다붙인다. 미운 사람은 나풀거리는 실밥 하나도 몸서리치게 싫은 법이다. 혐오는 힘도 세지만 속도도 무자비하다. 당장 박멸해야할 해충 마냥, 이게 맞는지 반조할 새도 없이 당장 몰아내려 든다. 

제주에서만 일어나는 일인 것 같지만, 이는 우리사회 혐오의 현주소다. 특수학교를 지어 땅값을 폭락시키겠다는 장애인에 대한 것이고, 사회를 문란하게 하는 성소수자에 관한 것이다. 굳이 한국에 와서 내 일자리를 뺏는 외국인노동자와 탈북인들, 카페에서 빽빽거리며 내 휴식을 방해하는 아이들의 이야기이며  의무는 없이 권리만 주장하는 여성들, 능력도 없이 삶에만 집착하는 노인네들 얘기인 것이다. 

이쯤 되니 제주의 예멘 난민은 그저 이번 순서가 아닐까 싶다. 우리사회에는 늘 절대량의 혐오가 존재하고, 그때그때 상대를 찾아 폭격을 퍼붓는 시스템인 거다.  우리동네가 당첨되면 들불같이 일어나 반기를 들고, 딴 동네로 가면 안심하고 모른 척하는 것이 일상다반사가 돼버린 걸까.   

그런 이기주의를 벗어나려면, 팩트를 짚어봐야 한다. 2000년대 들어 본격화되기 시작한 난민은 특히 2011년부터 한해 5백만 명이 급증했다. 오늘날 고국을 잃고 떠도는 전세계 실향민은 6천5백만 명, 하루 3만4천 명, 1분당 24명이 난민이 된다.     

놀랍게도, 사실 한국은 1991년 제네바 협약에 가입한 난민보호국이다. 그러나 국민소득 3만달러과 국가경쟁력 30위권이 무색하게도, 한국의 난민보호율은 세계 100위 안에도 들지 못한다. 1994년 이후 한국을 거쳐간 난민의 수는 3만2천 명인데 정부가 인정한 난민은 800명뿐이었다. 무려 25년 동안 말이다.

유엔난민기구의 전신인 운크라(United Nations Korean Reconstruction Agency)는 바로 한국전쟁 난민들을 위해 만들어진 기구였다. 일제강점기 시절 상해에 임시정부를 꾸린 선조들도 일본의 박해를 피해 망명한 '정치난민'이었다. 올해 70주년을 맞은 4·3 사건 당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바다를 건넌 제주인들은 현재의 재일동포가 됐다. 

이번 논란은 난민에의 우리의 편협한 시각을 돌아보는 계기이자, 깊이 뿌리박힌 혐오라는 고질병을 참회할 수 있는 호기일 수 있다. 아이였고 노인이 될 것인 우리도 어느 생엔 난민이었고, 여성이었으며, 외국인이나 장애인, 성소수자였다. 

듣도보도 못한 종교를 전파하러 아시아 작은 국가 출신 여성 외국인이 바로 개척교화 교무들이다. 지구 반대편 이름모를 풀 한 포기도 다 나와 연결되어 있는 상생의 인연이라고 배운다. 이런 우리가 어찌 배척하고 혐오할 수 있겠는가.    

[2018년 6월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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