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소 스승의 날이나 생일 같이 남에게 무언가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날이 되면 마음이 설레고 한편으론 불안 초조해진다. 근래 스승의 날에는 김영란법이 학교에 시행되면서 기대에 미치지 못한 날이 더 많았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헛된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스승의 날을 앞두고 학교에서 대대적으로 학부모들에게 문자를 보내 사소한 선물도 받지 않는다고 미리 공표를 했다. 때문에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칠판에 아이들이 '선생님 사랑해요'라는 메시지 정도는 적어놓지 않았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올해 스승의 날이 더 긴장됐던 것은 교생선생들이 함께 근무했기 때문이다. 나는 13년차 교사로서 교생선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배워갈 만한 점을 보여줘야 한다는 나름의 의무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오는 5월 첫 주부터 잔뜩 신경을 쓰고 긴장하고 있었다. 수업을 해도 좀 더 새로운 기법을 활용한 모습을 보여 교생선생들이 '우와~' 할 정도로 뭔가 획기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긴장이 돼 힘이 팍 들어간 수업은 어색하고 답답했다. 그런 와중에 스승의 날을 맞이하고 보니, 우리 반아이들이 어떤 반응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담임으로서 나의 역량을 알아보는 기회 같이 느껴져서 잔뜩 긴장했다. 

드디어 5월15일이 다가왔다. 교생선생들과 조례 직전에 교무실에서 짧게 브리핑을 하고 설렌 마음으로 우리 반으로 향했다. 교실 문을 열자 칠판에는 아무것도 없고 아이들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앉아 있었다. 풍선도 케이크도 꽃도 없는 교실에 들어서자 나는 낯이 뜨거워졌다. 간단히 조례를 마치고 교실을 나와 교생선생들에게 '요새 아이들이 좀 그렇죠? 중학교 1학년들이라 행사에 대한 개념이 없기도 합니다' 하며 변명을 하고 교무실로 황급히 사라져버렸다. 

반장에 대한 화가 올라왔고, 반장이 나에게 안 좋은 감정이 있나 등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나타났다. 경계다! 경계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써 내려가다 보니 내 마음이 보였다. 아이들에게도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어 하고, 교생선생들에게도 인정받아야 하니 얼마나 더 마음이 속상했겠는가. 그야말로 이중고였다. 

'아, 나의 인정욕구가 이렇게 강하구나. 학생들에게도, 교생선생들에게도 이렇게 인정받고 싶었구나. 그러나 수업을 잘 하지 않아도, 담임을 잘 하지 못해도 이미 너는 충분히 좋은 교사야. 늘 노력하고 잘하고 있잖아. 괜찮아. 이미 넌 잘하고 있어.'

경계일기를 쓰고 나니 이렇게 자신을 위로하게 됐고 속상한 마음이 쑥 내려간다. 다음날 학교 가서 아이들의 얼굴을 봤다. 어제는 반장 얼굴만 봐도 화가 났었는데 다시 반장을 바라보니 철없고 귀여운 얼굴로 변해있었다. 어제 반장 얼굴과 오늘 반장 얼굴의 차이점이 무엇이겠는가? 그 아이 얼굴은 똑같은데 내 마음이 변한 것이다. '그래, 중1 학생들이 뭘 알겠어? 이 꼬맹이들한테 하나라도 얻어먹으려고 했던 내가 웃긴다'라고 속으로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경계일기를 쓰면서 위기 상황마다 스스로 대처하는 힘이 생겨지는 것을 느낀다. 마음의 근육을 스스로 기르고 있는 것이다. 마음 공부법과 경계 일기에 감사하다.   

/안락중학교 

[2018년 6월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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