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석가모니불의 설법을 모은 〈아함경〉에서는 부처님을 찬탄, 귀경, 예배, 억념하게 되면,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하늘에 태어나거나 열반에 이른다고 설하고 있다. 후에 대승불교는 염불삼매에 이르게 되면 부처를 친견할 수 있으며, 불국토에 태어나기를 발원하면서 염불을 하면 정토에 왕생할 수 있다고 한다. 

정토경전인 〈무량수경〉에서는 법장비구가 48원을 세우고 수행해 마침내 아미타여래가 되는 신화가 수립된다. 이는 대승정신이 극대화된 것으로 번뇌 구족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부처님의 대자비심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염불은 동아시아에 이르러서는 네 가지로 정리가 된다. 부처님의 명호를 외는 칭명염불, 32상 80종호를 갖춘 부처의 원만한 상호를 관하는 관상(觀像)염불, 부처의 지혜광명이나 자비공덕을 상상하는 관상(觀想)염불, 유무의 극단을 떠나 중도실상의 진여불성인 법신을 염하는 실상염불이다.  

염불법은 신앙과 수행의 양면을 포함하는 이 네 가지 속성을 다 갖추고 있다. 자성불이야말로 법신, 보신, 화신은 물론 불보, 법보, 승보를 다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6조 혜능이 〈법보단경〉에서 설하듯이 '자기 마음이 원래 부처'라는 법문으로 귀결된다. 또한 정산종사가 '부처님의 원력과 부처님의 마음과 부처님의 실행을 염해 염불 일성에 일념을 집주함은 진실한 수행자의 염불'이라고 설하기 때문이다.(〈정산종사법어〉 경의편 28장)

무엇보다도 염불은 마음의 안심을 얻게 하며, 그 안심의 법열 속에서 모든 존재가 법신임을 관하는 일상삼매, 그 법신과 일체가 되는 일행삼매의 경지가 나타난다. 따라서 한 마음 속 염불삼매는 행주좌와 어묵동정의 일거수일투족 부처를 떠나지 않는다. 염불선에서는 '염불하는 자 누구인가'라는 화두를 들면서 염불한다. 이 화두와 하나가 되는 동시에 염불하는 자와 하나가 될 때, 나는 온 우주의 중심이 된다. 

그때 비로소 모든 업력으로부터 자유로우며, 삶의 주인공이 바로 이 자리에 있음을 확신하게 된다. 창조의 순간이 열리는 태초의 경험이 이뤄지게 되는 것이다. 마침내 나의 자성이 법신임을 확인함과 동시에 우주의 법신과 하나가 되어 이 진여세계 또한 극락정토임을 확인하게 된다. 자성에서 발하는 공적영지의 광명이 곧 불생불멸의 무량수이며, 이 무량수가 자심미타이자 자성극락이다. 이렇게 될 때 삶도 죽음도 극락의 자리 위에서 펼쳐진다. 

한마디로 염불은 위로는 무한한 권능을 갖춘 법신불을 향하면서도 아래로는 이처럼 자성극락을 수용하기 위한 것이다. 염불로써 우주 전체가 하나의 부처인 동시에 모든 생명체가 온전한 부처로서 존재하는 생명의 실상임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염불삼매는 우리 마음을 청정하게 하여 허공이 되게 한다. 이 허공 속에는 금수초목, 시비이해, 선악, 천당과 지옥이 다 포함된다. 염불로 한 마음이 허공이 되고, 이 허공은 만법과 만상을 다 포용할 수 있다. 부처가 먼저냐 마음이 먼저냐 하는 선후를 따질 것조차 없다. 이 우주의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진공묘유의 실상과 하나 된 복족족 혜족족의 원만구족한 부처의 능력을 갖추게 된다. 염불은 몸이 어디를 떠돌더라도 모든 생명을 원래의 고향인 부처로 돌아가게 하는 마법의 힘을 갖고 있다. 

/원광대학교

[2018년 6월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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