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성해영 교수

힘들고 어려웠던 시대상황에서 보여준
소태산의 예언자적 비전과 진리 구현은
'놀라운 비전'이라고 말하는 그의 주장은 단호하다.
반면, 100년 전 소태산의 온전한 가르침을
'후천개벽의 시대 어떻게 구현해낼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진정한 과제'임을 우리에게 일깨운다.

[원불교신문=이여원 기자] "종교의 장점이 잘 구현되기 위해서는 균형 감각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날카로운 칼이 편리함과 함께 자칫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것처럼 종교 역시 양날의 칼과 같습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종교를 필요로 할까, 사람들은 왜 종교를 믿고 있을까, 종교만이 제시할 수 있는 행복이나 위안이 있을까, 그런데도 왜 종교는 문제의 중심에 서 있을까. 

제4회 원불교 종교연합(UR) 청년캠프에서 성해영 교수(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종교학과)가 전한  이야기의 핵심이다. 진중한 이 주제를 그를 '너무 진지하지 않게' 찬찬히 바라보며 대상자들과 소통했다. 그를 다시 만난 날, 그의 연구실에 잔잔히 흐르고 있는 음악이, 장맛비에 젖어있을 마음 한 켠을 한결 밝게 해준다. 

종교란 무엇인가
종교를 정의할 때 그가 애용하는 학자는 미국의 종교학자 윌리엄 제임스와 신학자 폴 틸리히다. "결국 두 사람의 정의를 결합해 보면, 인간이 물을 수밖에 없는 삶의 궁극적인 물음에 답을 찾으려 하되, 그 답을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발견하려는 시도입니다. 거개의 종교들이 어떤 식으로든 궁극적 관심에 대한 해답을 전합니다. 왜 태어나고, 살아가며, 죽는가와 같은 본질적 질문에 대해 저쪽 차원과의 관계라는 관점에서 답변을 시도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본다면 종교는 참으로 인간적인 현상이라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명제를 '세계관'이라는 친숙한 개념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가 풀어냈다. "세계관이란 말 그대로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눈과도 같아서 우리의 행동에 막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이 대목에서 종교가 중요해집니다. 삶의 궁극적 의미는 우리 세계관의 핵심을 차지하는데, 이 물음에 결정적인 해답을 주는 종교가 서로 다르면 이는 세계관의 차이로 이어지고, 자칫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예수와 히틀러의 사례는 인간의 세계관이 얼마나 광범위한 행동의 스펙트럼을 만들어 내는가를 보여준다고 그는 덧붙인다. "예수는 우리가 하느님의 아들딸로 동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고 믿었고, 히틀러는 유대인이 열등한 민족으로 독일민족에게 해를 끼친다고 봤어요. 이렇게 세계와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 즉 세계관의 차이가 행동의 차이를 만든 겁니다." 

종교를 비판하는 현대적 목소리들을 살펴볼 이유가 여기에 있다. "종교인들이 종교의 본질이라 주장하는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기보다 여러 가지 갈등을 극대화시키고 공동체를 더 큰 혼란에 빠트리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일부 종교인들은 이중적인 삶의 행태들을 보여주기도 하지요. 이런 상황에서 종교의 필요성과 가치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이 제기될 수  밖에 없습니다."

표층종교에서 심층종교로 
이 대목에서 그는 종교의 강한 생명력 역시 주목한 부분이라고 말한다. "요컨대 종교는 우리에게 삶과 죽음의 의미를 알려주는 기제입니다. 종교는 또한 눈에 보이는 세계가 더 확장된 차원과 연결되어 있다는 가르침을 통해 우리에게 통합적인 관점을 갖도록 만들죠. 더 큰 차원에서 우리가 하나라는 종교의 가르침은 공동체 의식을 키웁니다. 그리고 이를 교리적으로 이해시키는 데에 만족하지 않고 삶 속에서 실천할 것을 강조하죠."

이처럼 나름의 가치가 있는 종교가, 이 시대 문제로 인식되는 이유, 그는 이를 표층종교와 심층종교라는 개념을 통해 짚는다. 

"표층과 심층이라는 말은 껍데기와 속살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종교에는 껍질의 차원인 표층종교가 있고, 더 발전해 종교의 참된 성격을 드러내는 심층종교가 있다는 의미죠. 종교생활 역시 시작할 때는 초보적이고 표층적인 차원에서 출발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발전하고 확장돼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경전의 이해 방식, 인간과 신에 대한 이해 등도 따라서 확장되겠죠." 

"자신의 경전에 대한 확신 때문에 타인들을 함부로 재단하는 사람, 시대적 변화에 걸맞지 않게 문자 그대로의 경전 이해를 강요하는 사람은 표층적 종교인일 겁니다. 또 종교의 표층적 층위를 종교의 모든 것으로 선언해 아예 종교를 폐기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마치 아이를 목욕시킨 후 목욕물을 버리려다 아이까지 버리는 것과 같아요."

때문에 종교의 장점이 잘 구현되기 위해서는 균형 감각이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종교생활은 표층적 차원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지만 확장된 해석에 기반해 더 깊은 심층의 차원으로 나아가야 하고, 또 심층적 차원의 종교생활을 통해 타인에게 보다 폭넓은 유연성과 융통성을 발휘하는 태도, 그런 확장된 앎을 통해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이 심층종교인이라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 

종교를 보는 새로운 시각, 심층종교에 대한 오강남 교수와 성해영 교수의 대담집.

원불교를 넘어선 원불교
"소태산 대종사의 '영육쌍전', 개인적으로 많이 좋아하는 표현입니다." 생활도, 사용하는 언어도 군더더기 없이, 삶의 명료함을 추구할 것 같은 그. 그래서일까, '많이 좋아한다'는 그의 표현에 진정성이 더해진다. 

"소태산 대종사는 종교생활을 통해 얻어진 체험과 지혜가 현실에서 구현돼, 지금 이곳의 삶이 근본적인 차원에서 달라지기를 희망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인간 본성에 대한 긍정적 이해, 인간의 존재론적 근원성을 기반으로 영적, 초월적인 것이 생생하게 살아있어야 한다는 것을 명료하게 이야기 했다는 거죠. 종교와 우리의 일상을 아울러 온전하게 만드는 삶, 다시 말해 더 큰 통합성에 대한 이해가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이겠지요."

힘들고 어려웠던 시대상황에서 보여준 소태산의 예언자적 비전과 진리 구현은 '놀라운 비전'임을 말하는 그의 주장은 단호하다. 반면, 100년 전 소태산의 온전한 가르침을 '후천개벽의 시대 어떻게 구현해낼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진정한 과제'임을 우리에게 일깨운다.

"후천개벽의 시대는 진실이 진실 그 자체로 빛나는 시대입니다. 진심어린 마음으로 감동시키지 않으면 정치, 학문, 종교조차 설 자리를 잃습니다. 진정성이 없으면 용납이 안 되는 것이죠." "종교를 넘어선 종교, 원불교를 넘어선 원불교와 같은 역설적인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합니다. 자기개벽이 있어야 합니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개혁해야 하는 시기이고, 그 과정에서 모든 것을 근본적인 차원에서 다시 바라봐야 하는 시기입니다. 교무 아닌 교무, 원불교 아닌 원불교처럼 기존의 정체성을 근원에서부터 뒤집을 때 개벽 시대에 필요한 진정성과 포용성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사족 하나
대화는 한동안 계속됐다. 돌아오는 기차 안, 나라는 에고를 넘어선 나. 우물 밖의 세계를 감히 짐작할 수 있다면, 삶의 굴곡을 순연히 받아들이며 자신과 타인을 좀 더 너그럽게 포용할 수 있는 여유가, 내게도 있지 않을까. 그가 내게 던진 삶의 또 다른 가치다. 

[2018년 7월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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