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영화 '왕의 남자'로 천만감독 타이틀을 가진 이준익 감독의 신작 영화 '변산'을 봤다. 시인 윤동주의 삶을 다룬 영화 '동주'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였던 박열의 삶을 다룬 영화 '박열'에 이은 청춘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했다. 

동주와 박열은 일제강점기의 억압 속에서 자신의 청춘을 그들의 방식으로 꽃 피웠고 변산의 주인공 학수는 현시대의 압박 속에서 자신의 청춘을 꽃피운다. 학수는 학창시절 꽤나 글을 잘 써 상을 받기도 하고 시인의 꿈을 꿨지만 복잡한 가정사를 뒤로하고 서울로 올라와 심뻑이라는 이름으로 래퍼의 길을 간다. 

홍대 클럽에서 공연을 하기도 하지만 현실은 주차도우미와 편의점알바로 생계를 유지하며 '쇼미더머니'라는 최고의 래퍼를 뽑는 대회를 6년째 준비하고 있는 신세다. 그러던 중 그의 고향에서 걸려온 전화한통과 고향 친구들과의 뜻밖의 조우로 어쩌다보니 변산으로 내려가게 된다. 그 곳에서 학수는 자신의 발목을 잡는 지긋지긋한 고향의 모습들과 만나지만 또 그 곳에서 자신의 진짜 속마음과 진짜 모습을 직면하고 한층 성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학창 시절 시를 쓰던 주인공은 랩가사를 쓰고 부르며 자신의 문학적 욕구를 뿜어내고 있지만 뭔가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지는 못하는 듯하다. 고향에서 만나 학창시절 관심도 없던 한 여자친구를 만난다. 그녀의 힘들지만 묵묵히 살아가는 모습과 곱게 깎은 연필로 또박또박 써가는 소설을 읽고 대화를 나누며 자신을 직면하는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토록 떼어내고 싶던 고향, 가족 그리고 과거의 자신의 모습 등이 결국 현재 자신을 만들었고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면서 스스로 한발 더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를 보고 난 며칠 뒤 한통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나의 모교가 여러 가지 이유로 이전을 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학교가 없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이전반대 서명을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링크된 주소로 따라 가보니 나의 학창시절 추억의 장소들이 애잔한 음악에 맞추어 영상으로 등장했다. 

사는 게 바쁘다는 이유로 한동안 잊고 지낸 옛 시간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죽을 뻔한 소나무를 선생님과 학생들의 힘으로 살려냈다'는 멘트가 영상에 나오자 과거의 시간들이 어제 일 인양 선명해졌다. 며칠 전 본 영화가 그 기억들에 채색을 해줘 마음이 크게 동하기까지 했다. 학창시절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물어보고 상황을 공유했다. 학교가 이전을 한다면 나의 모든 과거가 사라짐과 동시에 중요한 한 부분을 통째로 잃어버릴 것만 같은 극단적인 생각마저 들었다. 

누구나 고향과 그 곳에서 지내던 과거의 나를 생각하면 좋은 기억들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흔히들 말하는 흑역사가 존재하고 부끄러운 모습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불쑥불쑥 튀어나오기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수많은 노래와 시에서 고향은 그리움의 대상이자 애틋함의 덩어리로 불리어진다. 고향이라는 말에서 누구나 공감하고 마음 깊은 곳에서 느낄 수 있는 공통된 감정을 많은 예술작품에서 불러내고 있다.

얼마전 남북 정상이 만남을 가졌을 때 제주에서 온 한 아이가 부른 노래 중 무엇보다 '고향의 봄'이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 됐고 여기에는 고향이라는 단어가 주는 힘이 분명히 있다고 본다. 그뿐인가 정지용 시인의 고향, 백석의 고향, 국민애창가곡 향수, 고향의 노래, 고향 그리워, 대중가요 고향역 등 고향을 소재로 한 수많은 작품들이 있다. 누구나 고향의 의미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같은 감정이 많을 것 같다. 그립고 애틋하고 나를 성장시켜줬으니 고맙기도 하겠다. 

오랜만에 본 영화 한편이 고향의 의미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게 해주는 기회가 됐고 문득 도착한 문자메시지가 고향에 대한 정을 되새기게 해줬다.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무서워지기까지 하는 계절이다. 곧 여름휴가철이 오는데 요즘 고향으로 여행가기가 유행이라고 한다. 이번 휴가에는 화려한 휴양지보다 소박하지만 마음의 안식처인 고향을 찾아보려고 한다. 

/강북교당 

[2018년 7월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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