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와 하나되니 천지처럼 지극히 바를 수 있어
합심으로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신념

[원불교신문=송효성 원무] 나는 지금까지 약 20여 년간 철인 3종 운동을 해 오고 있다. 더구나 혼자서 하는것도 부족해 아들이 대학에 입학하기를 기다렸다가 대학생이 된 후 설득끝에 부자간 철인 3종 운동을 즐기는 별난 사람이기도 하다.

아들과 함께 대회에 나갈 때마다 동료들은 나와 아들에게 "한창 젊은 녀석이 이렇게 힘든 운동을 왜 하느냐"고 한마디씩 한다. 물론 그들에게도 아들이 있고  함께하자고 말해 보지만 호응이 없으니 우리 부자가 은근히 부럽고 시샘나는 그 마음을 왜 모르겠는가.

수영과 사이클 그리고 마라톤을 순서대로 진행하는 철인 3종 경기는 위험 요소를 많이 지닌 극한 운동에 속한다. 그래서 같은 공간에서 고통과 위험을 함께 이겨낸다는 것은 부자 간은 물론 동료들 간에도 각별하고 끈끈한 유대감을 느끼게 한다. 

경기하면서 아들이 멀리 보일 때 그리고 스쳐 갈 때마다 어느 새 '천지영기 아심정 만사여의 아심통 천지여아 동일체 아여천지 동심정'하며 계속해 영주를 외우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그렇다. '천지의 신령함에 내 마음이 머물면 모든 일이 뜻과 같이 이뤄지네, 천지와 나 하나 되니 나도 천지처럼 지극히 바르구나.' 나와 아들을 비롯한 함께하는 모든 선수들이 안전하게 경기를 마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간절함이 영주의 기운으로 이뤄지기를 바라는 기도가 되어 절로 나온다. 

나는 입교하면서 이리교당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 후 학교 부근 부송동으로 이사해 가까운 궁동교당으로 출석하게 됐다. 당시 궁동교당은 신생교당이어서 교도가 많지 않았을 뿐더러 젊은 교도들이 대부분이었다. 처음에는 중앙과 단장을 맡아서 교도들과 친분을 쌓으며 법회가 기다려지는 교당을 만들기 위해 주임교무와 교도들에게 자그마한 힘을 보태기도 했다. 

그리고 원기93년에 교당에 출석하는 원창학원 교사들을 교화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교도부회장이 되어 본격적으로 교화 활동에 임했다. 비록 교도 수는 적었지만 주임교무과 교도들이 한마음으로 여러 훈련과 각종 교구 행사에 열심히 참여했다. 

지난 원기100년은 내게 잊혀지지 않을 중대사가 있던 해였다. 2월 말 총부에서 1년 간의 행사를 준비하는 봉축위원회가 열렸다. 회의 도중에 남궁성 당시 교정원장은 "올해는 좀 더 색다른 행사를 해보면 어떨까?"라고 말했다. 많은 이들이 다양한 의견을 냈다. 나는 평소에 운동을 즐겨하기에 망설임 없이 체육 행사도 넣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다시 내 차례가 되자 교정원장은 구체적으로 행사 계획에 대해 이야기 해 보라고  말했다. 평소 생각했던 대로 우리가 마라톤 대회를 개최하면 전국의 참가자들에게 원불교를 알릴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더 세부적으로 검토, 준비해 다음 회의에 자료를 바탕으로 보고 했다. 그리하여 원기100년 10월11일 '원불교 100년 세상의 희망, 2015 익산전국마라톤대회'가 총부를 중심으로 원광대학교 대운동장과 익산시 일원에서 막을 올리게 됐다. 

수많은 스포츠 대회에 참가해봤지만 직접 준비위원장을 맡아 진행하기는 처음이라 막막하기도 하고 두려움도 컸다. 큰 행사를 치르기 위해서는 수많은 단체의 협조가 이뤄져야 했다. 그러다 보면 서로 의견이 달라 애를 먹는 경우도 생긴다. 여러 차례 고비를 만났지만 그때마다 다음과 같은 법문을 새기며 상대의 입장을 헤아려 보곤 했다.

"모든 일을 작용할 때에 즉시 실행이 되지 않는다고 낙망하지 말고 정성을 계속하여 끊임없는 공을 쌓을 것이니라." (<대종경> 수행품 2장)

결국 교정원장의 관심과 총부를 비롯한 각 교당 교무들 그리고 교도들의 헌신적인 노력 끝에 성황리에 대회를 마칠 수 있었다. 익산시에서도 지금껏 마라톤 풀코스 전국대회는 개최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원불교와 합심해 대회를 성황리에 마무리했다는 점에서 익산시 입장에서도 큰 경험이 됐다. 이러한 일들을 겪고보니 나 스스로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는 신념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게 됐다.

/원광고등학교

[2018년 7월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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