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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당을 찾아서/ 통일로 가는 길, 평화와 가장 가까운 교당
교당을 찾아서/ 통일로 가는 길, 평화와 가장 가까운 교당
  • 민소연 기자
  • 승인 2018.07.25
  • 호수 189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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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구 파주교당
매주 법회 후 장산전망대 찾아 평화기도 8개월
원기95년 통일로로 이전봉불·독수리교당 군법회
젊은 농부·예술가·환경운동가 등 젊고 깨인 교도들
파주교당 교도들이 매주 법회 후 오르는 문산읍 장산리 장산전망대. 파주교당은 지난해 12월,  통일이 되는 날까지 올리겠다는 다짐으로 평화기도를 시작했다. 사진 왼편부터 북녘의 장군봉, 도라산, 통일대교, 개성공단, 송악산, 대성동마을, 덕진산성, 해마루촌이 펼쳐져 있다.
파주교당 교도들이 매주 법회 후 오르는 문산읍 장산리 장산전망대. 파주교당은 지난해 12월, 통일이 되는 날까지 올리겠다는 다짐으로 평화기도를 시작했다. 사진 왼편부터 북녘의 장군봉, 도라산, 통일대교, 개성공단, 송악산, 대성동마을, 덕진산성, 해마루촌이 펼쳐져 있다.
지난 5월 민통선 내 김덕근 교도의 감자밭에서 열린 '경계너머평화' 나무심기에 참여한 교도들.
지난 5월 민통선 내 김덕근 교도의 감자밭에서 열린 '경계너머평화' 나무심기에 참여한 교도들.

[원불교신문=민소연 기자] 거칠고 짠 바닷물 위에 기름진 옥토를 일궈낸 원불교, 그 기적을 이룬 힘은 바로 기도에 있었다. 어려운 일일수록 기도부터 올렸던 것이 교단 100년 역사다. 여기, 평화의 옥토를 위해 아주 긴 기도를 시작한 교당이 있다. 우리 앞에 선 거대한 산, 평화통일. 남북이 하나되는 날 비로소 완성된다는 국도1번 '통일로'. 그 통일로 가는 길을 바라보고 선 서울교구 파주교당이다.

통일염원 모은 장산전망대 평화기도 
일요일 오후1시, 점심 공양 자리를 정리하고 담소를 나누던 파주교당 윤경일, 양은영 교무와 교도들이 나갈 채비를 한다. 7월 한낮 쨍쨍한 볕 속에서도 길을 떠나는 교도들, 차로 20여 분 거리의 장산전망대에 갈참이다.

파주 문산의 숨어있는 명소 장산전망대. 논길을 달리다 산길로 접어들고, 구불구불 비포장도 좀 지나야 나오는 곳이다. 맑은 날이면 개성공단까지 훤히 보인다는 전망대에 내려 적당한 경사로에 선 교도들은 한주간 자란 풀에도, 멀리 북녘땅에도 친근히 인사한다. 죽비소리와 함께 통일기도가 시작됐다. 독경과 기도부터 마지막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마치기까지, 매미소리 개구리소리, 작렬하던 햇볕도 잠시 물러나준다.

파주교당 전 교도가 매주 법회 후 이렇게 북녘을 만나 정성을 모은 지 벌써 8개월이다. 일찍부터 기도를 해야겠다 생각은 했는데, 이상하게도 시작 타이밍이 잘 잡히지 않았다. 그러던 지난해 말, "올해를 넘기지 말아야겠다"는 윤 교무와 몇몇 교도들의 결단으로 장소를 추천받기에 이른다. 당시 교도들 얘기가 이랬다. "우리 이 기도 시작하면 언제까지 해?" "통일 될 때까지 해야지." "그럼 북한이 잘 보이는 곳이어야겠네."

한겨울에 시작한 기도는 몹시 추웠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에 언 손을 녹이며 4차례 기도를 하고 나자 거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북한 신년사에 어른어른 봄기운이 비친 것이다. 분단 70년 역사의 첫 동남풍이었다. 평화가 금세 가까워졌고, 통일로가 환해졌으며, 전 교도들이 더욱 정성을 모으게 됐다.

"그 후로 기도를 할 때마다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평창동계올림픽도 그렇고, 남북정상회담도 두 차례나 있었지 않나. 6월에는 북미정상회담도 이뤄졌다. 기도를 하면 할수록 기운이 더해짐을 확연히 느낀다."

내려오는 길, 교도들의 자랑은 바로 기도의 위력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할지 머리를 맞댄 결과로 훈풍 일으키니, 그 감동과 보람 여전히 생생하다.

"평화기도는 원기95년 이전봉불했을 때부터 이야기해야 한다. 원래 금촌 파주시청 옆에 있었던 교당을 옮기려는데, 수십 군데를 보고 또 보다보니 마음에 그림이 그려지더라. 언젠가 통일이 되면 바로 이 통일로로 북한사람들이 내려오지 않을까. 그들을 맞이하려면 우리가 먼저 가까이 가야겠다 싶었다."

그때를 회상하는 윤 교무와 교도들. "북한 사람들이 내려오느라 배가 고플테니 솥을 내걸고 밥을 해줘야되겠다"며 농사도 지을 수 있는 너른 땅을 찾아봤었고, 지금도 여전히 서원 중이다. 열악했지만 중심지였던 교당을 지금의 한적한 곳으로 옮겨오기까지는 이런 고민들이 있었다. 그 결과 교당이 신축된 자리는 통일로를 바라보며 통일공원을 마주한 준비된 곳이다. 

"통일공원에는 우리나라 최초부대 1사단 희생자 충혼탑이 있고, 반공산주의운동으로 희생당한 피해자 위령비도 있다. 조금 더 가면 세계 종군기자탑도 있다. 봉불을 하고 교당 인근의 사연들을 알게되니 가만 있을 수가 없었다. 8월8일 이사했는데 최대한 서둘러 10월 첫 주 위령재를 시작했다. 해마다 하고 있으니 올해 10월이면 9번째다."

파주교당이 매주 일요일마다 장산전망대 평화기도를 이어가게 된 데는 그렇게 켜켜이 쌓인 마음들이 바탕됐다. 또 하나, 엄마아빠의 마음으로 아끼고 살피는 독수리부대 군법회도 마찬가지다.

원기98년 봉불한 독수리교당의 장병들.
원기98년 봉불한 독수리교당의 장병들.

9사단 30보병 독수리연대 군법회
매주 토요일 3시면 만나는 9사단 30보병 독수리연대 장병들은 파주교당의 또 다른 가족이다. 원기98년 10월 문을 연 독수리교당은 군법회 3년 정성의 결실로 이뤄낸 방언공사였다. 

군법회 8년, 독수리교당 법회는 이름만큼이나 훨훨 날고 있다. 최근 종교마일리지 제도의 폐지로 장병들이 종교에 멀어진 상황 속에서도 절반 이상이 나오고 있으며, 교당 역시 활력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비롯된 간식 '셀프라면'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단다. 

"어디나 간식들이 비슷해 고민이 컸다. 군인들에게 간식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래서 직접 물어봤더니 다들 끓이는 라면이 먹고 싶다고 하더라."
파주교당은 당장에 노란 양은냄비와 휴대용 버너부터 사들였다. 접시에 수저도 구비했으며, 손맛 그득한 김치를 절대 빠뜨리지 않았다. 한 개든 다섯 개든 장병들이 원하는 만큼 끓여먹도록 하니 금세 소문이 났다. 샌드위치며 팥빙수도 준비하지만 언제까지나 사이드일뿐, 영원한 히트상품은 바로 '원불교 셀프라면'이다.     

"파주는 군 교화가 곧 지역교화다. 군인들이 정말 어렵고 힘든데, 법회에 오는 단 몇시간이라도 마음 편하고  배부르면 얼마나 좋겠나. 교화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군 전체와 나라를 위한다는 마음이다."

매주 토요일 아침부터 달려와 장병들을 만나는 교도들의 마음. 또 한편으로는 다음 10년은 젊은 교도들이 이어가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귀농귀촌 열기로 젊은 교도층 두터워
탈도시, 친농촌 바람으로 젊은 층 유입이 거센 파주. 서울로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 깨끗한 자연 덕에 십수년째 30~40대 귀농귀촌 인구가 늘고 있다. 덕분에 "교무님 설법이 좋다고 소문나서 찾아왔다"는 교도들 역시 면면이 흥미롭다. 젊은 농부, 예술가, 환경운동가 등 남다른 분위기와 멋으로 지구나 교구 행사에서도 눈에 띈다.

"파주는 대부분이 이주해온 사람들이라  친해지기 어려운 면이 있다. 그런데 파주교당에 와보니 꼭 옛날 시골의 푸근함이 있었다. 재가출가 모두 가족같은 분위기 덕에 꼭 고향 온 것 같다. 어르신들이 먼저 마음 열고 다가와주니 젊은 사람들도 예의 지키고 배우게 된다."

서울에서도 북한에서도 가깝고, 평화통일과도 가까운 만큼 서로에게도 가까운 파주교당 교도들. 공양때에도 이집 상추와 저집 열무김치, 그집 수제떡갈비 등 열 집에서 해온 반찬 열 개가 정 넘치는 집밥 밥상을 이룬다. 통일의 길목에 앉아 온 정성 모아 평화를 기도하는 파주교당 교도들. 가깝지만 먼 북한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온정어린 집밥을 차려줄 사람도 이들이겠다.

[2018년 7월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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