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이혜성 교무] 두근두근 가슴이 떨린다. 공용화장실의 변기뚜껑이 닫혀있다. 누군가 뚜껑을 닫아놓았다는 뜻이다. 느낌이 불길하다. 변기뚜껑을 잠시 바라보다 확 열어젖힌다. 자동으로 눈이 질끈 감아진다. 최악의 사태다. 변기가 심하게 막혀있다. 막힌 뒤, 며칠쯤 지난 걸까. 심지어 대변이 까맣게 눌어 붙어 있다. 꿈꿈한 냄새가 진동 한다. "지난번 뒷정리, 여기 청소담당 누구야! 그때 확인하고 변기를 뚫었어야지." 훈련을  마치면, 직원들은 곳곳을 돌아다니며 뒷정리를 시작한다. 담당구역은 매번 바뀐다. 

도대체 그날 담당이 누구였을까, 누군데 이 중요한 뒤처리를 안 해놓은 걸까. 곰곰이 떠올려 본다. 변기 뚫는 도구를 가지러 가는 내내, 담당이 누군지 계속 생각 중이다. 대체 누군데 내게 이런 시련을 주는가. 바로 치웠으면 사태가 이 정도는 아닐 텐데, 일이 두 배는 더 커졌다. 누군지 궁금한 마음에, "담당구역을 공지해 둔 웹페이지를 찾아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핸드폰을 뒤적이다 마음을 멈춘다. "그 사람이 누군지 알아서 뭐하니" 알아봐야, 머릿속에 청소를 제대로 안 한 사람으로 남겨질 뿐이다. 그것이 결국 편견이 되어, 내 마음의 온전함을 빼앗을 것이다.

쓸데없는 분별과 집착을 스스로 찾기까지 해서, 만들 필요가 없다. 궁금함은 단지 타인의 과실을 드러내려는 마음이다. 더군다나 "변기 하나쯤 빼먹을 수도 있지" 나도 실수를 하며 사는데, 뭐 그리 잘못이라고 이토록 호들갑을 떨고 있는가. "누군지 궁금해 하지 않겠다. 나 혼자 조용히 이 일을 처리해야겠다"고 다짐한다. 

그제야 마음이 편안하다. 그 과정은 험난했지만, 마음만은 가뿐하게 막힌 변기를 뻥뻥 뚫고 도구를 씻으러 가다 훈련원 직원을 만났다. "변기 뚫는 기구 들고 어디가요? 어디 막혔어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입이 살짝 근질하더니 내 입에서 다다다닥 말이 튀어나온다! "아! 진짜. 지난번 여기 청소담당 누구였죠?" 앗! 허망하다. 말 해 버렸다. 말 안하고 혼자 처리하리라 결심했던 그 사람 어디 갔나. 그 결연한 결심은, 대체 어디로 사라졌느냐는 말이다! 내 말의 뉘앙스로 상대는 충분히 알아챘을 것이다. "내가 발견했다. 내가 청소했다. 그 사람 탓이다" 라고. 결심과 다르게 과실을 드러내고 싶어했다.

대산종사는 "비밀을 지켜 주기가 참으로 어렵나니 비밀을 책임지고 지켜 주는 것이 항마니라. 부득이 남의 잘못을 누군가에게 말해야 할 경우 열 번 이상 더 생각하고 영생을 책임진다는 생각으로 하라. 나는 한때 내 처소에 한 짐승이 조용히 다녀간 것을 보았으나 혹여 동네 사람에게 해를 당할까 염려하여 지금까지 비밀에 부쳤노라"고 법문했다. (〈대산종사법어〉 운심편 24장)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열 번 이상은 더 생각하란다. 그 사람을 책임진다는 마음일 때만 '남의 잘못'을 말하라고 당부한다. 그런데 나는 얼마나 쉽게 얼마나 가벼이 나의 입을 놀리나. 부끄러움이 한가득이다. 타인의 과실은 보는 즉시 밝혀내려 하고, 타인의 과실은 꼭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한 나. 허망하게 튀어나온 나의 말을 보며, 법문 앞에 고개를 푹 숙이고 나의 말을 반조한다. 

/중앙중도훈련원

[2018년 7월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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