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이지은 교무] 한국 회사에서도 어느 정도 그렇겠지만, 미국에서는 모든 일 처리가이메일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예고 없이 전화를 불쑥 하는 것은 예의 없이 느껴지고, 통화할 일이 있으면, 먼저 문자나 이메일로 '어떠한 용건으로 통화를 하고 싶은데, 오늘 중 가능한 시간에 전화 부탁한다'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필자 역시 또래 교무들과 통화할 일이 있을 때에도 그렇게 하는 편이다. 예고 없이 갑자기 울리는 전화 벨소리로 인해 상대방의 시간을 방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메일 에티켓과 관련해 필자가 잘못하고 있으며, 고쳐야 한다고 스스로도 생각되는 부분은 신속한 이메일 처리이다. 그나마 원다르마센터의 공적인 이메일 계정으로 온 것은 놓치지는 않지만, 개인 메일로 업무상 이메일이 오면, 스팸메일, 필요 없는 이메일 속에 섞여, 한참 지난 후 발견할 때가 종종 있다. 

이메일을 보내놓고 상대방으로부터 며칠이 지나도 답장이 없어서 답답해하던 것을 생각하면, 나의 답을 기다렸을 상대방에게 굉장히 미안하고 민망하다.

예전 '통신에 대한 법'에 보면 '편지를 받았을 때에는, 존장, 동료에게는 물론이요, 비록 수하사람에게라도 반드시 답장을 낼 것이요'라고 했다. 길지 않아도 된다. 때로는 그저 '잘 받았다'는 한 줄 답으로도 족하다. 그런데 몇 초면 되는 그조차도 잘 안될때가 있다. 이메일 에티켓의 기본은 보낸 사람에 대한 존중과 예의다. 이메일을 보낸 상대방의 뜻, 그 마음을 충분히 잘 알겠다는 것을 정중하게 알려줌으로써 이메일을 보낸 상대에게 예의를 갖추는 것이다. 

대종사는 편지를 받으면 언제나 직접 보고, 바로 답장을 보냈다. 그 시절은 타이핑 몇 번에 엔터키를 누르면 편지가 발송되던 시절도 아니었건만, 친필로 답을 했다. 그리고 보관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구분해, 보관할 것은 정갈하게 보관하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정결한 처소에서 태웠다. 요즘으로 치면, 이메일 받은 편지함을 바로바로 정리해 버릴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분류해 처리했던 것이다.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고, 굳이 태운 이유에 대해 '편지는 저 사람의 정성이 깃든 것이라, 함부로 두는 것은 예가 아니니라'라고 했다. 

시대가 바뀌어 편지는 이메일, SMS로 대부분 대치됐다고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 됐든 상대방의 정성이 깃든 것을 소중히 대하는 그 정신은 여전히 새겨야 할 부분이다. 

필자도 가끔 손으로 쓴 엽서, 편지 등을 모아뒀다가 처리해야 할 때는, 쓰레기통에 버리기는 죄송스럽고, 그렇다고 태우기도 어려우니, 대신 보낸 이의 마음을 다시한번 새기고, 서류 분쇄기에 넣어 처리한다. 그 정도면 보낸 이의 마음을 함부로 하는 것은 아니라 생각해 택한 나름의 절충안이다. 

소태산 대종사의 심량은 실로 대포무외 세입무내(大包無外 細入無內·크기로는 바깥이 없는 데까지 포함하고 가늘기로는 안이 없는 데까지 들어가다)해 편지 다루는 방식에서도 원만한 조행을 보여줬다. 

여러분의 받은 편지함에는 오늘 몇 통의 이메일이 여러분의 답을 기다리고 있는가? 

/미주총부법인

[2018년 8월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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